지난 22일 저녁 종로구 ‘상생상회’에서 열린 ‘막걸리, 취향의 발견’ 프로그램 진행 모습. ‘국가대표 전통주 소믈리에 경기대회’에서 우승한 조태경 전 전통주갤러리 부원장의 막걸리 강의를 들으면서 참발효어워즈 수상 막걸리들을 중심으로 시음을 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상생상회, 시음 행사인 ‘막걸리, 취향의 발견’ 열어
‘참발효어워즈’ 수상작 맛보면서 막걸리 지식 넓혀
“깔끔하고 아주 좋네요. 막걸리마다 자기의 향이 느껴지는 것 같아 독특하기도 하고요.”
지난 22일 저녁 종로구 ‘상생상회’에서 열린 ‘막걸리, 취향의 발견’ 프로그램에 참석한이혜인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의 식탁 위에는 시음을 마친 조그마한 막걸리 잔 6개가 놓여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학예연구원으로 일하는 이씨는 막걸리를 좋아하는 ‘막걸리 마니아’다. 좋은 막걸리를 파는 가게를 찾는 것은 물론이고, 막걸리 만드는 수업도 몇 차례 들었다. 이 연구원은 ‘상생상회’ 인스타그램에서 ‘취향의 발견’ 프로그램 소식을 보고 신청하게 됐다고한다.
안국역 근처에 자리잡은 상생상회는 2018년 11월3일, 서울시가 지역의 중·소농을 돕고 판로를 지원하기 위해 세운 매장이다. 현재 169개 지역 966개 업체에서 생산한 농수특산물과 가공식품 4355개가 입점해 있다. 생산자에게는 낮은 수수료를 적용하고 소비자에게는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일을 한다.
‘막걸리, 취향의 발견’은 이 상생상회가 지난 5일 시작해 오는 7월31일까지 진행하는 전시회 ‘삭히다, 익히다, 빚다–지역의 발효 이야기’의 부대 행사다. 전시 또한 상생상회의 주요한 업무다. 좋은 전시를 통해 지역의 자원을 직접 체험하게 하는 등 홍보 효과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각 지역에서 나는 건강한 먹거리로 ‘삭히고, 익히고, 빚어서’ 만든 발효식품 23개를 한자리에 모아 소개하고 있다. 간장(3개)·된장(5개)·고추장(2개)·치즈(6개)와 막걸리(7개)로 구성된 이들 제품은 모두 ‘2022 참발효어워즈’ 수상작품이다.
상생상회 1층에 놓인 전시물. 참발효어워즈 행사의 의의 등을 설명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우리의 전통 발효식품인 메주.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참발효어워즈’는 도시와 농촌의 협력적 식문화 콘텐츠를 기획하는 비영리민간단체인 슬로푸드문화원(원장 김현숙)이 올해로 3회째 진행하는 행사다. 슬로푸드문화원은 ‘참발효어워즈’에 대해 “맛과 품질, 지역 공동체와의 관련성은 물론이고 문화적 전통, 환경 등 여러 가치를 두루 살펴서 상을 수여한다”고 밝히고 있다. 올해는 125명의 시민맛 평가단과 24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관능평가위원단의 블라인드 평가를 거친 뒤 서류 심사와 현장 실사를 통해 ESG(환경·사회·소통) 가치도 평가했다고 한다. 지난 2월25일에 시상식을 한 뒤, 약 한 달 보름 만에 상생상회를 통해 대중에게 선보이게 된 것이다.
이날 시음 행사가 열린 상생상회의 지하전시장과 공유공간에는 이혜인 연구원 외에도 10명 정도가 행사에 참여했다. 남성 참석자 1명을 빼놓고는 이 연구원을 포함해 모두가 여성이었다.
유일한 남성 참가자인 이상만(57)씨도 부인 이구연(54)씨의 손에 이끌려서 온 경우다. 남편 이씨는 “저는 술 종류를 가리지 않는데 아내는 막걸리를 선호한다”며 “벌써 6~7년전부터 막걸리를 찾아 전국 곳곳을 여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인 이씨는 “값싼 아스파탐이 들어 있는 막걸리를 마시면 속이 안 좋은데 전통식으로 만든 좋은 막걸리는 맛도 있고 속을 편하게 한다”며 “오늘 아스파탐이 안 들어간 여러 막걸리를 접해볼 기회라 생각해 남편과 함께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4 2022 참발효어워즈 수상작인 막걸리들. 왼쪽부터 고향춘, 백년향, C막걸리, 소향, 이화주, 지란지교, 호심. 대부분 이날 시식에서 맛볼 수 있었다. 5 참발효어워즈 수상작인 간장·된장·고추장. 6 참발효어워즈에서 수상한 치즈류.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실제로 이날 참석자들이 시음한 6종의 막걸리 중 5종이 참발효어워드 수상작품이었다. 경기도 여주 쌀과 남한강 맑은 물 그리고 앉은뱅이 밀 누룩으로 만든 ‘백년향’(경기 여주), 농축 요구르트 같은 죽 형태로 돼 있어서 떠 먹는 술로 알려진 ‘양주골이가 이화주’ (경기 양주), 범벅 형태를 고집스럽게 지킨 밑술에다 주니퍼베리와 건포도의 유쾌한 산미가 보태진 ‘C막걸리 시그니처큐베’(서울강남), 전북 순창에서 생산된 쌀과 천연암반수를 사용해 100일간의 발효와 90일간의 숙성을 거쳐 만든 ‘지란지교’(전북 순창), 소나무 숲에서 해풍과 바람에 전통 방식으로 건조한 강릉 햅쌀로 만든 ‘소향’(강원 강릉) 등 맛과 품격을 갖춘 막걸리들이 차례로 나왔다. 여기에 경북 문경시 두술도가에서 생산한 ‘희양산 막걸리’가 보태졌다. 유미정 상생상회 홍보팀장은 “참발효어워즈 수상작 중단맛이 비슷한 제품을 빼고 맛의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 ‘희양산 막걸리’를 보탰다”며 “이렇게 맛이 다른 막걸리들을 시음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막걸리를 발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주류 규제 완화’와 ‘높아진 품질’, 쌍끌이로 막걸리 바람 일으켜
주류제조면허 2571개 중 탁주 961개
청년 창업 늘며 ‘재미난 실험’ 눈에 띄어
“도농상생 모델 ‘새롭게 모색’ 계기 될 것”
참석자들도 이에 따라 새로운 막걸리를 시음할 때마다 ‘막걸리 취향 발견 테이스팅 노트’라는 설문지를 정성스럽게 채워나갔다.
참가자들은 설문지에 단맛·신맛·감칠맛·바디감 등의 강도와 함께 막걸리에서 나는 식물향·곡물향·과일향 등도 꼼꼼히 체크한다. 이를 통해 어떤 막걸리가 자신에게 맞는지 살펴보면서 자신의 막걸리 취향을 ‘발견’해나갔다.
이날 프로그램은 전통주갤러리 부원장 출신인 조태경 전통주 소믈리에가 들려주는 막걸리 이야기를 통해 몰입감을 더욱 높일 수 있었다. 조 소믈리에는 와인 회사에 근무하다 전남 함평에서 생산하는 1세대 한국 전통주 ‘자희향’을 맛본 뒤 전통주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2016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 등이 주최하는 ‘국가대표 전통주 소믈리에 경기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조태경 전통주 소믈리에는 “창의성으로 무장한 청년 양조가의 등장으로 앞으로의 막걸리 시장은 지금과는 또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조 소믈리에는 현재 일고 있는 전통 막걸리 바람에 대해 “국세청의 주류 규제 완화 조처 등으로 막걸리 바람이 5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분위기 등에 힘입어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도 크게 늘었다. 조 소믈리에는 “<2020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주류제조면허수 총 2571개 중 막걸리에 해당하는 탁주 면허가 961개나 된다”고 말했다. 전체 주류제조면허수의 37%에 해당하는 수치다.
하지만 막걸리 사업의 발전은 이제 시작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왜냐하면 온라인 통신판매가 가능한 전통주(지역특산주 혹은 민속주)에 해당하는 막걸리 양조장 비율이 낮기 때문이다. 조 소믈리에는 “현재 지역특산주 1219개 중 탁주는 194개이며 민속주 54개 중 탁주는 9개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역특산주는 ‘지역 농민이 그 지역 농산물로 만든 술’이며, 민속주는 ‘국가가 지정한장인이나 식품 명인이 만든 술’을 가리킨다. 통신판매가 가능한 이 두 영역에서 막걸리의 비율이 작다는 것은 그만큼 막걸리의 상권이 아직은 협소하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조 소믈리에는 앞으로의 막걸리시장은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 소믈리에는 그 이유로 3가지를 꼽았다. 우선 창의성으로 무장한 MZ세대 청년 양조가의 등장이다. 스타트업 등에 익숙한 청년들이 호기심과 도전정신을 갖고 막걸리 양조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실험을 선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조 소믈리에는 대표적 사례로 성수동에 양조장을 차리고 ‘나루 막걸리’ 상표의 막걸리로 전국에 온라인 판매를하는 ‘한강주조’를 꼽았다. 이들은 서울에서 나는 경복궁쌀을 원료로 삼음으로써 지역특산주로 등록할 수 있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쌀로 만든 막걸리의 가공법이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부재료와 새로운 누룩을 사용함으로써 제품 고급화에도 성공하고 있다는 평가다. 조 소믈리에는 “참발효어워즈 수상작품이기도 한 ‘C막걸리’의 경우 부재료로 토마토와 바질, 수박이랑 페퍼민트 등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조합을 사용해 새로운 맛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세 번째 요인은 새로운 미식 문화의 형성이다. 값싼 막걸리가 아니라 품격 있는 고급 막걸리를 찾는 소비층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 홍보팀장은 “이번 ‘막걸리, 취향의 발견’ 프로그램에도 20~30대 젊은 여성이 크게 호응하는 것이 느껴졌다”며 “이들이 이미 홍대 등에서 판매하는 프리미엄급 막걸리의 주 고객층을 형성하는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유 팀장은 또 “앞으로 이들이 고품질 막걸리를 찾고 또 그로 인해 질이 높아진 막걸리가 새로운 소비층을 찾는 선순환이 일어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상생상회를 운영하는 서울시지역상생교류사업단의 김원일 단장은 “이번 프로그램은 막걸리를 비롯한 발효상품의 시장 변화를 보여주면서 도농 상생 모델도 새롭게 모색하는 계기로 삼고자 마련됐다”며 “막걸리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대표 발효식품인 간장·된장·고추장 등 장류와 치즈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