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장산 쪽동백숲, 봉제산 잣나무숲은
숲속에서 만나는 좀더 깊은 ‘숲속의 숲’
혼자 있어도 같이 있어도 그곳은 ‘쉼터’
소나무, 송홧가루 날려 길손 붙잡는다
숲속의 숲은 사람들 마음을 붙잡는다. 치현산 자락 서남환경공원 메타세쿼이아길을 찾아온 사람들은 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아무것도 안 하면서 편안한 얼굴이다. 우장산 쪽동백숲에서 노는 아이들의 몸짓과 목소리가 봄 숲을 울려 생동한다. 봉제산 잣나무숲에서 어른들이 책을 읽고, 소나무숲에 날리는 송홧가루에도 마음이 흔들렸다.
꿩고개, 치현정에서 보는 전망과 메타세쿼이아길
치현산 동쪽 자락 서남환경공원 메타세쿼이아길.
숲에 꿩이 많아 꿩 사냥을 많이 했다. 그 숲의 고개를 ‘꿩고개’라고 했다. 한자로 치현이라고 불렀다. 강서구 방화3동 치현산에 남아 있는 옛이야기다. 방화3동은 치현리와 정곡리를 묶어 만든 동네다. 정곡리는 ‘꿩고개’ 동쪽 끝에 있었다.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았으며, ‘꿩고개’를 휘돌아 흘렀다고 해서 돌정말 또는 돌샘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한자 이름이 정곡이다. 지금도 ‘꿩고개’ 동남쪽 정곡소공원과 돌샘공원, ‘꿩고개’ 북쪽 한강공원 정곡 나들목 등에서 옛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정곡 나들목 북쪽은 바로 한강이다.
치현산의 옛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방화근린공원 다목적광장에서 출발했다. 민속놀이마당 커다란 나무 몇 그루가 병풍처럼 서 있는 아래 철쭉꽃밭 긴 의자에 앉은 할아버지 한 분이 졸음에 겨워 고개를 자꾸 떨구다 이내 주무신다. ‘씽씽카’를 탄 아이들이 그 앞을 봄바람처럼 지난다. 배롱나무 돌담 장독대를 지나 좁은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만나 왼쪽으로 걷는다. 치현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강서둘레길을 알리는 안내판과 아치형 문이 있다. 치현산 숲으로 들어간다.
산이라고는 하지만 높이가 70m 정도니 언덕 숲이다. 맨발로 걷는 황톳길에 맨발로 걷는 사람이 없다. 아직은 황톳길보다 그 길의 소나무 몇 그루가 발길을 유혹한다. 오솔길에 우뚝 선 상수리나무 곁을 지나 치현정 이정표를 따른다.
치현산 치현정에서 본 풍경. 방화대교, 덕양산, 한강 둔치 강서습지생태공원이 보인다.
꿩고개에서 시원하게 전망이 트이는 곳은 이곳뿐이다. 올림픽대로와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가 어지럽게 얽힌 도로 아래 어디쯤 옛날에 ‘꿩고개’를 돌아 흐르던 돌샘의 물줄기가 있었을 것이다. 눈길은 한강에 놓인 방화대교 철골구조물의 육중한 부드러움에서 한강 건너편 행주산성이 있던 덕양산의 신록으로 옮겨진다.
‘강서둘레길(서남환경공원)’ 이정표를 따르다 보면 잠시 도로 때문에 숲이 끊어지지만 이내 길은 숲으로 들어간다. 서울물재생공원 생태연못을 지나 남쪽으로 걷다가 메타세쿼이아길로 접어든다. 세 줄로 늘어선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걷고 싶은 길을 만들고 있었다. 이 길을 찾은 사람들은 길의 끝에서 끝까지 몇 번이고 오간다. 나무아래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쪽동백숲의 아이들
치현산 남동쪽 약 4㎞ 거리에 있는 우장산도 해발고도 100m가 안 되는 낮은 산이다. 우장산로가 갈라놓은 북쪽 봉우리를 검덕산, 남쪽을 원당산이라고 했다. 우장산이라는 이름은 검덕산과 원당산에서 지내던 기우제와 관련 있다. 강서구청 자료에 따르면 옛날에 가뭄이 들면 두 산에서 기우제를 지냈는데, 세 번째 기우제날에는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 번째 기우제를 지내는 날이면 사람들이 우장(비를 맞지 않기 위해 비옷이나 비를 피할 도구 등을 갖추고 차려입음)을 하고 산을 올랐다고 해서 두 산을 합쳐 우장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우장산의 북쪽 봉우리를 먼저 찾았다. 한국가스공사 뒷길로 오르는데, 발치에서 제비꽃이 반긴다. 꽃가루가 눈송이처럼 날리는 숲길에 사람들이 꽤 많다. 점심시간이었고 목에 신분증을 건 회사원이 많았다. 잠깐이라도 숲을 거닐고 싶은 마음이 보였다.
도로처럼 넓은 길을 걸어서 새마을지도 자탑이 있는 곳까지 올랐다가 숲길로 내려섰다. 낮은 산이지만 제법 숲답다. 단풍나무가 퍼뜨린 넓은 가지에 매달린 잎들에 햇볕이 걸러들면서 낱낱의 잎들이 다 ‘초록별’이 됐다.
출발했던 곳에 도착해서 처음 걸었던 길로 다시 걷는다. 갈림길에서 아랫길로 걷다가 강서청소년회관으로 가는 길 안내판에서 숲으로 들어가는 계단으로 올라간다. 그 길을 따르면 우장산로가 갈라놓은 남쪽 봉우리, 원당산으로 넘어가는 생태다리가 나온다.
우장산 남쪽 봉우리 둘레에 난 넓은 도로 같은 길을 따라 정상까지 올랐다. 정상에서 숲으로 들어가면 꽃향기길, 소나무숲길, 쪽동백길이 이어지는데, 나무들 빼곡한 숲길이 다 걷기 좋다.
그중 자연발생적으로 생겼다는 약 1만㎡규모의 쪽동백 군락지는 숲속의 숲이다. 숲의 하늘을 덮은 쪽동백 나무의 초록 잎으로 숲 전체가 반짝인다. 그 숲에서 유치원아이들이 논다. 껍질을 뚫고 피어난 새잎 같은 아이들 몸짓과 숲에 퍼지는 아이들 목소리에 봄 숲이 생동한다.
잣나무숲 사람들
우장산 남동쪽 약 1㎞ 거리에 봉제산이있다. 봉제산은 높이가 117m 정도다. 산 정상에 백제시대 봉수대 터가 있다. 옛 역사보다 산 아랫마을 사람들이 많이 찾는 뒷동산의 모습이 더 정겹다.
강서02 마을버스 ‘봉제산정상’ 정류장 바로 앞이 숲 입구다. 입구에서 왼쪽으로 걷는다. 특별할 것 없는 숲길을 걷다가 화장실이있는 마당에서 철쭉동산을 가리키는 이정표 쪽으로 걷는다. 갈림길 앞에 안내판이 있다. 계단이 있는 왼쪽 길로 오른다. 계단에 다 올라서면 돌이 박힌 흙길이 나오는데, 그곳부터 이어지는 숲길 풍경에서 추억이 살아났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동네 뒷동산이 그랬다. 꾸밀 것도 없는 나무와 돌과 흙길 오솔길, 푸른 숲과 풀밭, 나뭇가지로 새총을 만들고 나무막대기로 칼을 삼아 숲에서 뛰어놀던 그 시절 생각이 봉제산 숲길에 스민다.
추억과 함께 걷는 사이에 철쭉동산에 도착했다. 소나무 숲이 철쭉동산을 감쌌다. 푸른 숲속 울긋불긋 ‘꽃대궐’이다. 철쭉 군락 사이에 난 오솔길을 걸었다. 어른 키보다 더 높이 자란 철쭉이 붉은빛, 분홍빛, 흰빛으로 꽃을 피웠다. 하늘이 파래서 꽃밭이 더 명징하다. 사람들이 철쭉꽃밭 좁은 오솔길에서 멈춰 사진을 찍는다. 오가는 사람들은 꽃처럼 기다려준다.
철쭉꽃밭에서 나와 정상으로 가는 길은 제멋대로 자란 소나무가 있는 숲길이다. 정상에는 ‘봉제산봉수대’라고 새겨진 비석이있다. 이곳에 백제시대부터 봉수대가 있었다고 한다.
봉수대터를 지나 잣나무숲에 도착했다. 숲에 놓인 의자들을 사람들이 차지했다. 더러는 의자에 누웠다. 일행이 있는 사람들은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혼자 앉은 사람들은 책을 읽는다. 무엇을 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잣나무숲은 쉼표다.
우장산 숲속의 숲이 쪽동백숲이라면, 봉제산 숲속의 숲은 잣나무숲이다. 숲속의 숲은 숲을 더 깊고 풍성하게 한다.
봉제산 둘레길이 이어지는 곳은 백석중학교와 등촌초등학교 뒷동산 숲이다. 숲속놀이터를 지나 법성사 쪽으로 걷는다. 숲길옆 법성사 울타리 위로 머리를 내민 부처님얼굴도 평온하다. 길지 않은 오르막길이 끝나고 능선길을 만나면 왼쪽으로 걷는다. 대일고등학교 이정표 방향으로 간다. 그 길목숲에서 만난 소나무숲, 바람이 소나무숲을 흔들고 송홧가루가 솔숲 전체에 퍼져 차분하게 내려앉는다. 우장산 숲길에서 보았던 나무판에 새겨진 박목월 시인의 시 ‘윤사월’이 떠올랐다.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한참 동안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