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이 간다

꼼꼼한 엄마 행정, 주택가 커뮤니티 공간 정책서 빛 발하다

조은희 서초구청장 “2018년까지 관내 어린이집 3곳 중 1곳 국공립화” 보육정책 최우선 밝혀

등록 : 2016-08-25 16:58 수정 : 2016-09-05 10:29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양재나들목(IC)부터 한남나들목까지 경부고속도로 6.4㎞ 구간 지하화를 구상하며, 거리의 전봇대 전선을 정리하는 것까지 살피고 있다. 16일 오후 구청장실을 반으로 줄여 만든 대화방인 ‘상상카페’에서 인터뷰하는 조 구청장. 장수선 인턴기자 grimlike@hani.co.kr

서울 25개 자치구 중 면적이 가장 큰 서초구는 1988년 강남구에서 갈라져 나온 구다. 줄곧 남성 구청장이 구정을 이끌다 2014년 조은희 구청장이 당선되며 여성 구청장 시대를 열었다. 첫 여성 구청장이니만큼 주변의 우려와 기대도 컸던 게 사실이다.

“여자가 똑똑하면 국회의원이나 하지 왜 구청장을 하느냐는 말도 들었어요.” 조은희(55) 구청장은 편견 섞인 우려는 잠재우고 기대에는 부응하기 위해, ‘신나는 변화’를 외치며 열심히 달려왔다. 조 구청장은 37년간 서초구의 숙제였던 정보사 터널 문제를 해결했다. 지금 공사하고 있는 터널은 2019년 완성된다. 강남과 서초의 거리를 좁힌 터널 공사 외에도 경부간선도로 지하화, ‘양재 R&D 혁신 클러스트’ 조성,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이전을 핵심으로 하는 서초구 종합장기공간계획 ‘나비플랜’을 가동 중이다.

조 구청장은 ‘여성스럽지’ 않은 굵직굵직한 사업 추진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정책 드라이브 구호는 의외로 ‘엄마 행정’이다. 구정을 엄마의 마음으로 돌보겠다는 다짐인 셈이다. 조 구청장을 지난 16일 구청장실을 반으로 줄여 만든 대화방인 ‘상상카페’에서 만났다.

반딧불센터로 주택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

 “나무도 보고 숲도 보자, 규모가 큰 정책이 숲이라면 보육문제, 교육문제가 나무인 셈이에요. 여성 구청장이라서 꼼꼼하게 챙긴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거리의 전봇대 전선을 정리하는 것까지 신경 쓰고 있거든요.” 서초구만의 독특한 주민 소통공간 ‘반딧불센터’는 조 구청장의 엄마 행정의 대표 사례로 꼽을 만하다. 반딧불센터는 주택 지역의 커뮤니티 공간이다. 마을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회의실, 공구 대여소, 육아 정보를 공유하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공동육아 공간이 있고, 무인택배서비스, 안심귀가서비스 등도 제공한다.

“아파트에서 살다 빌라로 이사했는데, 불편한 점이 많았어요. 우편물이나 택배 받기 힘들고 공구를 빌리는 일도 어려웠습니다. 주택에도 아파트 관리사무소 같은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2015년 3월 방배 반딧불센터 문을 연 서초구는 양재와 반포 다가구주택 밀집 지역에 추가로 반딧불센터를 열었다. 올해 하반기에는 서초1동, 방배1동, 방배4동에도 반딧불센터가 문을 열 예정이다. 특히 양재 반딧불센터에는 하루평균 48명의 주민이 방문할 정도로 이용률이 높다. 조 구청장이 만든 반딧불센터는 대한민국 지방자치발전 대상, 서울특별시 자치구 행정 우수사례 우수상 등을 받으며 성과를 인정받았다.


엄마들의 최대 관심사는 보육과 교육문제다. ‘워킹맘’이었던 조 구청장도 겪은 어려움이었다. “25개 자치구 가운데 보육수급률 꼴찌가 바로 서초구입니다. 임대료가 높다 보니 어린이집을 새로 짓고 운영하기 힘들기 때문이지요. 어린이집을 늘리기 위해 구가 나섰습니다.”

서초구는 2018년까지 관내 어린이집 3개 중 1개를 국공립으로 만들고, 어린이집 원아 2명 중 1명은 국공립 어린이집 원아가 되는 것을 목표로 어린이집 증설에 힘쓰고 있다. 민선6기 4년 동안 40여 개를 늘려 2018년까지 72개소의 어린이집을 열겠다는 게 조 구청장의 목표다. 지난 4월에 방배본동에 문을 연 ‘행복한어린이집’은 서초구 43번째 국공립 어린이집이자 조 구청장 취임 이후 12번째로 개원한 국공립 어린이집이다. 다음 달에도 국공립 어린이집 1곳이 또 문을 연다.

조 구청장은 보육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처우 개선에도 열심이다. 열악한 근무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교재연구비, 시간외수당, 영아반 담임교사 인센티브를 지급해왔다. 올 3월부터는 동일 시설에서 3년 이상 근무한 교사에게 달마다 최대 5만 원씩 근속수당을 주기 시작했다. 하반기부터는 경력이 10년 이상인 담임교사에게 장기재직 휴가도 줄 예정이다. 교사도 아이도 행복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어깨 처진 아버지들을 위한 센터 곧 개관

개관을 앞둔 서초구 ‘아버지센터’는 요즘 갈 곳이 없는 아버지 세대를 배려한 조 구청장의 아이디어이다. “아버지들이 어깨 처지는 일이 많은 요즘이잖아요. 이 땅의 아버지들 기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센터는 253.91㎡ 규모로 프로그램실, 회의실, 카페 등을 갖춰, 아버지들의 휴식과 힐링을 돕는 공간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이 밖에 서초구에는 서울시나 중앙정부가 나서야 해결될 수 있는 굵직한 현안들이 즐비하다.

“선거 공약 1호로 정보사 터널 개통을 내걸었는데, 주민들 반응은 ‘37년간 국회의원, 구청장 선거 때마다 속았다. 안 믿는다’였어요. 그때 다짐했어요. ‘두고봐라!’” 조 구청장은 취임 일주일 만에 정보사를 찾아갔다. 정보사령관을 만난 다음, 일주일 뒤에는 국방부 차관을 만났다. 조 구청장의 정면돌파 전략은 요지부동인 정보사를 움직였고, 서초구를 가르는 정보사 터널 공사는 지난해 10월 시작됐다.

조 구청장에게 비결을 물었다. “간단해요. 상대방에게도 필요한 것을 주면 돼요. 제로섬이 아니라 서로가 필요한 것을 얻으면 문제는 풀립니다.” 결국 ‘선 터널 착공, 후 부지 활용’이란 큰 틀에서 정보사 터에 서초구가 원하는 복합문화공간과 국방부가 원한 아파트 건설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30여 년을 넘게 끌어온 난제가 해결됐다.

경부고속도로 지하화에 대해서도 조 구청장은 확신에 차 있었다. “강남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에 득이 될 사업입니다. 상습 차량 정체는 물론이고 자동차 매연으로 생기는 환경문제, 지역발전 등 강남·북 모두를 위한 근본 해결책이기 때문입니다.”

서초구는 상습 정체로 몸살을 앓는 양재나들목(IC)부터 한남나들목까지 경부고속도로 6.4㎞ 구간을 지하도로를 만들고, 지상을 문화공간으로 만들자는 구상을 갖고 있다.

“도로를 지하화하면 지상에 20만 평 공간이 생겨요. 지하화는 기술의 문제라 비교적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핵심은 지상이에요. 창조의 문제거든요. 국제 아이디어 공모전을 활용하거나 아이티(IT) 기술을 결합해 국제도시 서울의 세계적인 랜드마크로 만들면 됩니다.” 지하도로 밑에는 침수 저장창고에 해당하는 ‘대심도 빗물터널’을 만들어 강남권의 고질적인 물난리도 해결해 보겠다는 게 조 구청장의 뜻이다.

조 구청장은 서울 사람이라면 한 번은 들어 봤을, 서울시 ‘여행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여행(여성 행복) 프로젝트는 서울시 여성정책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는 평가를 들으며, 조 구청장을 서울시 최초 여성 부시장으로 발탁하게 한 프로젝트다. 하이힐이 빠지지 않는 인도, 남녀 화장실 칸 개수 조정 등이 조 구청장이 여성의 관점에서 생각해낸 변화들이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하냐구요? 집이 지저분하면 엄마들은 대청소를 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구에 케케묵은 문제가 있으면 나서서 말끔히 치우고, 내 손이 닿지 않은 곳은 없는지 세심히 살펴보는 거지요. 저는 행정이 정말 재밌어요.” 큰 현안 때문에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생활밀착형 엄마 행정이 주목받지 못하는 게 서운하지는 않을까?

“제 모토가 행복한 2등이라니까요. 제가 잘하는 거, 굳이 나서서 잘하고 있다고 자랑하지 않아요. 대신 중앙정부나 서울시 협조가 필요한 현안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도와달라, 1등은 당신이 해라, 난 즐거운 2등을 하겠다, 그렇게 열심히 깃발을 흔드는 거지요.” 조 구청장이 유쾌하게 웃었다.

정고운 기자 nimok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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