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같지 않은 동네가 좋아’ 마을잡지 만든 청년들

등록 : 2016-08-25 17:24 수정 : 2016-08-29 10:50
지난 5월, 상도동 마을잡지 2호 가 나올 때까지 청년들은 마을 공간 ‘청춘캠프‘에서 자주 회의를 했다. 대륙서점 제공

“사람 사는 곳 같은 이 동네가 정말 좋아요. 정적이지 않고 움직이는 시장이 좋고, 골목들도 정말 좋아요.”

동작구 상도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박신혜(29) 씨가 말하는 상도동의 매력이다. 전통시장 성대시장이 있고 가파른 언덕길이 많고 주택이 빼곡하며 그 흔한 멀티플렉스 극장 하나 없는 상도동인데도, 어쩐 일인지 상도동 청년들은 여기서 평생을 살아도 좋겠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 같지 않은 이 동네를 고스란히 남기고 싶은 청년들이 모여 마을잡지를 만들었다.

<상도동 그 청년>은 상도동 청년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상도동 마을잡지 1호 이름이다. 잡지 기획을 맡은 5명 중 한 명인 곽사현(30) 씨는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먼저 지역 맵핑(지도 제작)을 해 보자는 제안이 왔어요. 지역 청년들이 생활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만들어 지역 내 연결망을 만들면 좋겠다는 마음에 우선 청년들을 모았지요.” 그렇게 길게는 평생을, 짧게는 1년 남짓 상도동에서 살고 있는 청년 9명이 모였다.

<상도동 그 청년>은 제목 그대로 청년 9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 집 베란다에는 양철 지붕이 있어서 비가 오면 튀김 소리가 나요.-청년 상진’

‘상도동에 기반과 관계들이 만들어지면서 문득, 평생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청년 승규’

그저 자기 나름대로 느낀 상도동의 매력을 쓴, 조금도 특별할 것 없는 이 글 속에는 상도동을 향한 청년들의 애정이 넘친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잡지로 만드는 데 석 달이 걸렸다. 디자인부터 편집 교열, 출판까지 모든 과정을 청년들끼리 하다 보니 부족하고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그런데도 <상도동 그 청년>의 마지막 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vol 2. 봄에는 어떤 주제로 만날 수 있을까요?’ 1호를 만든 청년들은 벌써 2호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7월5일, 내년 봄쯤 나올 거라는 예상을 깨고, 2호 마을잡지 <상도동 그 가게>가 나왔다. 페이지와 크기도 늘었다. 이번에는 상도동에 있는 가게가 주제다.

“1호를 만들었던 청년들이 대부분 2호 제작에도 참여했어요. 1호를 만들면서 너무 재밌었다는 소감과 함께요.” 곽 씨의 주도 아래 18명의 청년이 모였다. 이번에도 홍보는 ‘입소문’이 전부였다. 비용은 서울시 마을미디어 활성화 주민지원사업에 공모해 마련했다.

청년들은 상도동 가게를 하나씩 고르고 주인과 인터뷰를 해서 잡지에 실었다. 어떤 가게를 고를지는 청년들이 알아서 했다. 파는 옷이 예뻐서, 양념이 맛있어서, 우리 동네랑 안 어울리는 가게 같아서 등등 이유는 주관적이고 사소하다.

“상권 활성화를 위해 잡지를 발간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내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면 좋겠고, 내 또래 청년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알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잡지를 만들면서 그냥 지나치던 분식집 가게 아주머니 나이를 알게 되고, 옆집 할머니 손주는 어제 무슨 재롱을 부렸는지 그런 소소한 소통을 하며 관계망을 만들어나가는 게 목적입니다.”

그래서 곽 씨는 상도동이 명소가 되면 발생할 수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도 걱정이 없다고 한다. 잡지는 상도동 주민이라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변하지 않아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말하기 때문이다. 잡지 주요 독자도 지역 주민이다 보니 동네서점이 주요 배포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인터넷으로 주문을 받았다.

요즘도 상도동 청년들이 주기적으로 모여 알음알음 관계망을 넓히고 있다고 하니 3호 출간 계획도 궁금하다. “3호요? ‘상도동 그 어르신’이 될지, ‘상도동 그 아이’가 될지 아무도 몰라요. 주제는 자연스레 나올 거예요.” 그저 사람 냄새 나는 상도동이 좋다며 곽 씨가 웃었다.

정고운 기자 nimok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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