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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편지, 서로의 마음 잇고 행복과 평화의 씨앗 퍼뜨리다

등록 : 2022-06-16 15:31 수정 : 2022-06-16 17:05
전국 편지쓰기 공모전은 편지문학관 개관과 ‘가정의 달’을 기념해 도봉구 주최로 올해 처음 열렸다. 가정의 달과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평화 기원을 주제로 한 공모전에는 888통이 최종 접수됐다. 초등부부터 일반부까지 여러 세대가 함께한 이번 공모전 응모작은 진실과 감동을 담은 편지가 많았고 내용도 다양했다고 심사위원들은 평가했다. 지난 11일 도봉구청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경남 통영 등 전국에서 온 수상자와 가족들 80여 명이 참석했다. 3월14일 개관한 편지문학관의 전시 편지와 느린 우체통.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도봉구 편지문학관, 개관 및 가족의 달 맞아 전국 편지쓰기 공모전 열어

7일간 888점 응모, 4개 부문 47명 수상…진솔하게 마음 담은 편지 선정

“(중년이 된) 딸에게 옛날에 엄마로서 못해준 것 미안하고 잘 살아줘 고마운 마음 전하고 싶었다.”

지난 5월 열린 전국 편지쓰기 공모전 일반부에서 대상을 받은 양복희(79) 할머니는 상받은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공모전 시상식은 11일 오후 2시 도봉구청 선인봉홀에서 열렸다. 시상식에는 경남 거제 등 전국에서 모인 수상자와 가족들 80여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몸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시상식에 참여한 양복희 할머니는 “하고 싶었던 말을 편지로 전할 수 있어 속이 후련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3월14일 개관한 편지문학관의 전시 편지와 느린 우체통.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전국 편지쓰기 공모전은 편지문학관 개관과 ‘가정의 달’을 기념해 올해 처음 열렸다. 도봉구가 주최하고 도봉문화원·편지문학관이 주관했다. 서울시교육청과 한겨레신문, 주한 우크라이나대사관이 후원했다. 공모 주제는 가정의 달을 맞아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에 꼭 전하고 싶었던 마음을 담은 내용이다.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위로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내용도 특별히 더해졌다.

3월14일 개관한 편지문학관의 전시 편지와 느린 우체통.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일주일밖에 안 되는 짧은 접수 기간(5월16~23일)에도 1천여 통이 접수됐다. 1인 1편지 기준에 따라 중복을 빼고 최종 888통이 접수됐다. 중·고등부가 346점으로 가장 많았고 초등부 286점, 일반부 256점으로 뒤를이었다. 편지지 2장 안팎의 응모작들은 손글씨나 컴퓨터 워드로 작업해 우편이나 전자우편으로 제출됐다. 정철훈 편지문학관 관장은 “3통 중 1통이 우크라이나 평화 기원 주제 편지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며 “시민들이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초등 고학년부 수상자들이 이동진 도봉구청장에게서 상을 받고 있다. 도봉구 제공

올해 공모전에는 도봉구청장상 40명(초등·중고등부 대상·최우수상·우수상·장려상, 일반부 최우수상·우수상·장려상)을 포함해 모두 47명이 상을 받았다. 이 밖에 한겨레사장상 1명(일반부 대상), 서울시교육감상 3명(서울시 초중고생 특별상), 우크라이나 대사상 3명(초등, 중고등, 일반 평화기원상)이 상장과 상금을 받았다. 상금은 대상 50만원, 최우수상 30만원, 우수상 20만원, 장려상 10만원, 특별·평화기원상은 각 30만원이다.

양복희 할머니는 성장기 때 경제적 어려움으로 딸이 겪은 아픔을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것을 뒤늦게나마 사과하는 편지로 일반부대상을 받았다. 실버센터 복지사의 권유로 편지 공모전에 참가했다고 한다. 편지에서 “엄마를 용서해줘. 요즘은 너한테 잘못해준 것만 생각이 나네. 네가 섭섭했던 일을 나한테 다 퍼부어. 내가 다 들어줄게. 그래야 내가 변명이라도 좀 하지. 가슴에 돌덩어리가 올라앉은것같이 무거워. 내 돌 좀 내려줄래?”라며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용서를 구했다.

중고등부 대상을 받은 김민경(합천여중 3학년)양은 평소 부끄러워 못했던 속마음을 편지에 담아 아빠에게 전했다. 직장 문제로 10여 년 동안 부모가 주말부부로 살면서 가정에서 아빠의 자리가 점점 없어져가던 상황에서, 아빠와 다시 같이 살면서 불편하지만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적었다. 얼마 전 아빠가 다른 도시로 직장을 옮길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김양은 가족을 위해 가지 않은 결정을 한 아빠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다. 편지에서 김양은 “평소엔 표현을 잘 못했지만, 아빠 딸로 태어나서 너무 행복했다”며 “내 아빠가 되어줘서 정말로 고마워. 사랑해”라고 썼다.

시상식장에 이젤을 이용해 전시한 수상 편지들. 도봉구 제공

초등 저학년부 대상 수상자인 오윤채(동곡초 3학년)양은 2학년 담임이었던 한희숙선생님에게 감사 편지를 썼다. 마음이 여리고 내성적인 오양은 학교생활이 때론 버거웠다. 선생님이 친절하게 용기를 북돋워줘 큰 힘이 됐다. 오양은 편지에 “친구들이 괴롭혀도 제대로 말도 못했는데, 선생님이 관심을 갖고 봐주시고 때론 친구들을 따끔하게 야단도 쳐줘 견뎌낼 수 있었다”며 고마운 마음을 담았다.

이혜린(사천초 4학년)양은 육아휴직을 내고 집에 함께 있는 아빠에게 쓴 편지로 초등고학년부 대상을 받았다. 이양은 “아빠에게 처음으로 쓴 편지”라며 “편지로 아빠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편지에서 이양은 “아빠와 오래 있다 보니까 저를 정말 사랑하신다고 느꼈어요. (중략) 아빠와 가까워지니 아빠의 장점이 눈에 딱 들어와요. 커서 어른이 되면 제가 아빠를 행복하게 해드릴게요”라고 썼다.

부모·교사 등에게 감사 마음 전하고 ‘우크라이나 평화’ 기원

중년 딸에게 뒤늦게 용서 구한 노모

함께하며 아빠의 사랑 느낀 중학생

부문 대상 받고, “속마음 전해 기뻐”

수상작 일부, 편지문학관 전시 예정

편지문학관은 편지를 매개로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도봉구민회관 1층에 있는 편지문학관 전시실은 286.2㎡(87평) 규모로 14가지 주제로 꾸며졌다. 편지의 역사, 예술인·위인·문인 등의 편지 전시와 마음저장소(영상체험실), 음성편지 등 마음을 표현하는 체험 공간도 갖췄다. 정용일 선임기자

우크라이나 평화기원상을 받은 김민정(대구 다사초 5학년)양은 편지에 “대한민국의 초등학생인 저도 응원하듯이 전 세계인들이 지구 곳곳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크라이나를 응원하고 있다”고 썼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보낸 응원의 편지에서 김양은 “꼭 힘내고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마세요!”라고 했다. 김양은 편지지에 직접 경복궁정문 그림을 그려, 평화를 되찾으면 한국을 찾아주고 자신도 우크라이나를 여행하고싶은 바람을 덧붙였다.

평화기원상의 또 다른 수상자인 김서진씨는 30대로,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비슷한 나이의 우크라이나 여성인 나탈라야에게 위로와 응원의 편지를 썼다. 나탈라야는 외국 일간지와 인터뷰하며 자기 가족이 겪은 끔찍한 비극을 알렸다. 김씨는 편지에서 “엄마로서 강하게 버티고 있는 당신의 상황을 잊지 않을게요. 해바라기와 같이 강한 어머니인 당신의 삶을 응원한다”고 썼다.

서울시교육감의 특별상을 받은 이서준군은 올해 처음 학교에 간 초등 1학년생이다. 갑작스러운 배탈로 팬티에 살짝 실수했는데, 친구들이 알까봐 불안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해하다 담임 선생님께 귓속말로 얘기했다. 선생님이 조용히 숙직실로 데려가 닦아주고 다른 옷으로 갈아 입혀주고, 더럽혀진 옷은 씻어 비닐에 넣어줬다. 이군은 편지에서 “친구들이 제 실수를 모르는 것은 선생님 덕분입니다. (중략) ‘저희를 보살펴주셔 감사합니다’고 항상 마음으로 속삭입니다”라고 했다.

올해 공모전 심사는 5명의 위원이 했다. 심사위원들은 “전반적으로 진실과 감동을 담은 응모작이 많았고 내용도 다양해 좋았다”고 평가했다. 이상국 위원은 “초등부에서 부모나 주위의 도움을 받은 편지가 간혹 눈에 띄었다”며 “대필이나 인용, 모방 가능성이 의심되면 선정에서 제외했다”고 말했다. 권희경 위원은 “그림 편지와 예쁜 엽서 응모작이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시상식 참석자들의 단체 사진. 도봉구 제공

심사기준은 편지글 형식을 갖춰 주제와 부합되고 진실하게 작성했는지, 감동적으로 잘 표현했는지 등이었다. 손순자 위원은 “솔직하게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읽으며 행복했다”고 말했다. 문해 교실에서 한글을 배워 처음으로 딸에게 쓴 편지, 80대 노모가 태어나 처음 아들에게 쓰는 편지, 한 직장에서 40여 년 근무하고 퇴직 뒤 우울해하는 남편을 위로하는 편지,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밑에서 자란 손녀딸의 늦은 고백 편지, 부부의 날 하늘나라의 남편에게 보내는 가슴 먹먹한 편지까지…. 손 위원은 “편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시상식에서 김현대 한겨레신문 대표이사는 “편지는 마음을 잇는 소중한 도구다”라며 “편지쓰기 공모전이 평화와 행복의 바이러스를 멀리 퍼뜨리길 바란다”고 했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편지문학관을 소개하며 “편지의 힘이 얼마나 큰지, 편지 속 담긴 마음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볼 수 있는 곳이다”라며 “편지를 통한 따뜻한 마음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수상작 일부는 편지문학관의 누리집(letter.dobong.or.kr)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서 볼 수 있다. 하반기에 편지문학관 기획전시도 계획 중이다. 편지문학관은 3월14일 개관 뒤 마음을 전하며 감동을 주는 편지를 찾아 전시물을 꾸준히 늘려오고 있다. 이번 공모전 수상작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위인, 문인들의 편지는 물론 일반인들의 생활 속 편지도 꾸준히 모아 전시해 문학관을 찾는 이들이 친근하고 편안하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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