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이 간다

“강서구에서 미래를 설계하십시오”

노현송 강서구청장, 고도제한 완화·마곡지구 개발·의료특구 등으로 베드타운에서 서남권 관문도시로

등록 : 2016-09-01 14:08
화가 임옥상 씨가 제작한 겸재정선미술관 진입도로 설치물. 겸재가 그린 경치가 수려한 옛 강서와 노 구청장이 이끄는 강서구의 변화할 모습이 함께 새겨져 있다.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말이 있다. 강은 일만 번을 꺾여도 기어코 바다에 이른다는 말이다. 강원도 태백 검룡소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은 오대천에서 조양강으로, 다시 여강으로 이름을 바꾸며 흐르다 폭을 넓히고 소리를 죽여 비로소 한강이란 이름을 갖는다.

한강이 바다를 지척에 두고 강 이편과 저편에서 낮은 봉우리의 호위를 받는다. 강 저편의 행주산성을 바라보는 76m의 낮은 봉우리는 궁산이다. 역사는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지만, 의병들이 온 힘을 다해 싸워 권율 장군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나눴던 격전지다.

서쪽으로 개화산과 동쪽으로 탑산과 쥐산을 두르고 행주산 너머로 멀리 북한산 큰 자락을 조망할 수 있어,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나들이 장소로 사랑받던 곳이다.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은 강서구의 옛 행정구역인 양천현의 현감을 지내면서 한강과 궁산 일대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다.

서울에서 유일한, 향교를 보듬은 궁산 자락 가양동에는 겸재를 기리는 겸재정선미술관이 있다. 겸재가 남긴 <경교명승첩>과 <양천팔경첩>을 소장한 이곳에서 노현송(62) 강서구청장을 만났다.

“우리 강서구가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면 구청장으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이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긴 세월이 지나야 느낄 수 있지요.” 인터뷰 사진을 찍느라 미술관 진입도로에 있는 설치물 앞에 선 노 구청장의 시선이 마곡지구 쪽에서 멈췄다. 한창 개발 중인 그곳에서는 줄지어 선 타워 크레인이 바쁘게 건축 자재를 나르고 있었다. 노 구청장의 표정에는 강서구의 변화를 이끌어온 세월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14년간 재임, 강서구를 경쟁력 있는 도시로


노 구청장은 1998년 2기 민선 강서구청장을 역임한 뒤 17대 지역구 국회의원을 거쳐 다시 민선 5·6기 구청장에 연거푸 당선된 이력을 갖고 있다. 강서 지역을 대표하는 선출직으로 재임한 기간만 따져도 14년이 넘는다.

재임한 동안 느릿하게 흐르는 한강처럼 변화 속도가 느렸던 강서지역에 마곡지구 개발 사업과 의료특구 지정, 지역주민의 숙원이었던 고도제한 규제를 푸는 등 변화를 가져와, 강서구가 입체적 도시로 변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지난달 한국공공자치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민선 20년간 경쟁력지수 상승폭이 강서구가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두 번째예요. 전국으로 따져도 8번째라고 합니다. 20년 사이 많이 올랐지요.” 노 구청장은 강서구 경쟁력의 힘을 묻는 말에 망설임 없이 마곡지구를 꼽는다. 애초 마곡지구는 버려진 땅이었다. “처음 민선 2기 구청장으로 취임하고 나서 고민했어요. 강서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마곡지구 개발이 필요한데, 이미 도시계획이 끝난 뒤라 어찌할 수가 없었지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미래를 위해 계획이라도 세워둬야겠다는 생각으로 당시 고건 서울시장에게 미래 신성장 동력을 위한 도시계획을 제안했고, 서울연구원이 기초를 마련했는데 그게 현재 마곡지구의 밑그림이 되었습니다.”

인구 200만 명이 사는 서울 서남권의 관문이 마곡지구다. 366만㎡ 터에 서울시를 동북아 경제중심 도시로 발전시킨다는 비전 아래 주거단지와 산업단지, 공원을 한데 모은 서울의 마지막 대형 택지개발 지구다. 총 16개 단지가 들어서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현재까지 13개 단지 8521세대가 입주했거나 입주 중이다.

주거단지 입주가 일단락되는 2017년부터는 첨단 R&D(연구개발) 산업단지 입주도 본격화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엘지, 코오롱, 이랜드를 비롯해 95개 기업이 계약을 체결해 분양률은 63.5% 수준이다. 서울 최초의 생태공원인 ‘서울식물원’도 2018년 5월 개장을 목표로 작업 속도를 높이고 있다. 식물원이 개장되면 도심의 오아시스 몫을 하며 시민들의 여가 공간으로 사랑받게 될 것이다.

김포공항 주변 고도제한 완화는 강서구의 숙원 사업 중 하나였다. 1958년 김포공항이 문을 연 이래 강서구는 전체 면적의 97%가 고도제한에 묶여 지역경제 발전의 걸림돌이 되었다.

강서구는 양천구와 부천시 등 이웃 자치단체와 공동 용역을 추진해 2013년 전국 최초로 ‘공항 고도제한 완화 추진 지원 조례’를 제정했고, 그 결과 지난해에는 비행 안전과 관련 없는 과도한 고도제한을 완화하도록 하는 항공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노 구청장은 만족하지 않았다. “현재 법 규정은 사안별로 항공학적 검토를 해서 고도제한을 완화해 주겠다는 것인데, 강서구가 제대로 발전하려면 일괄적 완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규정에 따르면 공항 주변 4㎞ 이내의 건물은 높이 57.86m를 넘으면 안 됩니다. 15층을 넘길 수 없으니 마곡지구에는 랜드마크가 될 만한 건물을 지을 수가 없어요. 강서구처럼 비행 항로에서 벗어난 지역은 일괄적으로 고도제한을 완화해야 합니다.”

일괄적 완화는 국제민간항공기구 규정을 개정해야 하므로 시간이 걸리지만, 사안별 고도제한 완화는 현재 국토교통부에서 진행 중인 ‘항공학적 검토 세부기준 마련 용역’이 끝나는 대로 가능해진다. 강서구는 지난 6월 에스에이치(SH)공사와 ‘김포공항 주변 고도제한 완화 추진 업무 협약’을 맺었다. 강서구는 고도제한 완화 첫 사례가 마곡지구에서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외국 환자 유치해 지역경제 활성화

강서구는 또 하나의 장기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강서 미라클메디(Miracle-medi)’ 의료관광 특구 사업이다. 2013년 특구지정추진단을 꾸리며 준비를 본격화한 강서구는 지난해 연말 중소기업청의 공식 승인을 얻었다. 서울 중구에 이어 전국 두 번째로 지정된 의료관광 특구다.

“우리 지역에는 여성병원과 척추·관절병원이 많습니다. 이런 특화 병원들에 해외 환자들을 유치하자는 겁니다. 외국 환자들이 늘면 의료뿐 아니라 숙박, 외식, 관광, 쇼핑까지 연관 산업들도 활성화되기 마련이니까요.” 의료관광 특구로 지정된 강서로와 공항대로 일대 181만35㎡는 김포공항과도 가까워 외국 환자 유치에 유리하다는 것이 노 구청장의 생각이다.

실제로 2009년 207명에 불과하던 외국 환자 수는 지난해 2165명으로 10배 넘게 늘었다. 진료비 역시 3억4000여만 원에서 80억4000만 원으로 크게 늘었다.

강서구는 2018년 문을 열 이화의료원에 국제진료센터도 세운다. 외국 환자들이 안정을 느낄 수 있도록 자국어로 소통할 국제간병인도 양성한다. 노 구청장은 “강서구에 등록된 다문화 가정만 3400여 세대다. 결혼이주여성에게 간병인 교육을 하고 일자리로 연결시키면 의료관광 특구 활성화뿐 아니라 다문화 가정 살림살이에도 도움이 됩니다. 늘어나는 관광객이 가져다줄 경제적 효과까지 따지면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삼조인 셈이지요.”

내년이면 강서구가 영등포구에서 갈라져 나온 지 40주년이 된다. 인구는 계속 늘어 조만간 6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개발이 더뎠던 만큼 구청장이 해결해야 할 숙제가 아직 많다. 노 구청장은 “긴 세월 저를 믿고 선택해 준 구민들에게 감사하지요. 그 선택에 보답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늘 갖고 있습니다.” 어깨를 낮춘 노 구청장 어깨 너머로 한강이 소리 없이 흐른다.

글 윤지혜 기자 wisdom@hani.co.kr

사진 장수선 인턴기자 grimlik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