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푸드스캐닝 기술 기업 ‘누비랩’의 류제윤 최고기술책임자(CTO·왼쪽)와 박범진 리더가 지난 2일 강남구 역삼동 본사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공지능 푸드스캐너는 음식 종류와 양을 한 번에 측정해 사용자에게 식습관을 안내하고, 급식 운영자에게 정보를 제공해 식자재 주문이 효율적으로 조절될 수 있게 한다. 또 음식물쓰레기 절감 효과도 가져온다.
온실가스 배출량 10%가 음식물쓰레기
우리나라 ‘식품 폐기물 처리 비용’ 1조원
자율주행 연구하다 사회 문제에 눈떠
2018년 환경창업대전 수상 계기 독립
음식물 스캔만으로 종류·양 분석하고
이용자들의 선호 파악하여 식단 구성
적절한 발주량 예측…쓰레기 감소 효과
학교·관공서 등 50여곳에 서비스 제공
유엔환경계획(UNEP)이 발간한 <2021년 폐기물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전세계에서 버려진 음식물쓰레기는 9억3100만t에 이른다. 그리고 글로벌 온실가스 전체 배출량 중 8~10%를 차지한다.
음식물은 쉽게 부패하고 악취와 침출수가 발생하는 특징이 있어 처리에도 골치를 앓는다. 사회적 비용도 많이 들어서, 우리나라에서 식품 폐기물을 처리하는 데 연간 1조원 이상이 소요된다. 유통과 조리과정에서 나오는 쓰레기가 가장 많지만, 먹고 남겨서 버려지는 음식물도 30%에 달한다.
이처럼 음식물쓰레기는 개인 문제를 넘어선 전 지구적 과제이다. 이 문제를 개인의 실천에만 맡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공지능(AI) 기술로 식단을 분석해서 버려지는 음식물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고민한 기업이 있다. 바로 스타트업 누비랩의 출발점이었다.
AI 기술이 어떻게 환경 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하는지 AI 개발을 총괄하는 류제윤 최고기술책임자(CTO)와 운영 전반을 책임지는 박범진 리더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류 CTO는 김대훈 누비랩 대표와 함께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업을 결심했다고 한다. 같은 직장에서 뜻이 맞아 벤처 창업을 준비하다가 2018년 환경창업대전 대상 수상을 계기로 독립했다. 엔지니어로서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박람회인 시이에스(CES) 등 여러 국내외 행사와 경진대회에서 누비랩의 수상을 이끈 주역이다.
식품회사에서 근무하던 박 리더는 창업을 고민하다가 정부에서 지원하는 ‘청년 창업가 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거기에서 멘토로 만난 김 대표와 인연이 이어져 2020년 6월부터 누비랩에 합류했다.
지난 9일 노원구 공릉중학교 학생이 급식을 스캔하고 있다.
누비랩은 인공지능 푸드스캐너를 이용해 식단을 스캔하고, 그 정보를 활용하도록 한다. 식당 운영자가 이용자들이 선호하는 식단을 구성하고, 적절한 발주량을 예측해서 조리과정에서 음식물쓰레기를 줄이는 효과를 준다.
기존 방법과 가장 다른 특징은 음식물 스캔만으로 종류와 양을 분석한다는 점이다. 자동차 간 충돌을 막기 위해 연구하던 거리 계산 방법을 음식물 스캐닝에 도입한 것이다. 직접 음식 성분을 분석하거나 무게를 재는 기존 방식과 크게 다른 부분이다. 먹고 남기는 음식을 데이터화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지만, 아무나 풀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도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지금의 누비랩을 만들었다.
현재 학교, 관공서, 기업, 군대 등 50여곳 급식소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22년 5월 말 기준, 지금까지 AI 푸드스캐너 기술로 감축한 음식물쓰레기 양은 약 5145t이며 약 875만㎏-CO₂의 탄소를 절감했다. 이는 96만1093그루의 나무를 심은 효과와 맞먹는다.
식사 뒤 인공지능 푸드스캐너에서 자동으로 잔반량을 체크하는 모습.
지난해 11월부터 푸드스캐너를 도입한 노원구의 공릉중학교에서는 ‘잔반 제로 이벤트’를 진행해 하루 배출하는 잔반량이 45㎏이나 줄었다. 온실가스 배출량도 평균 대비 39.2%가 감소했다고 한다. 박 리더는 “음식물을 일부러 남기고 버리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푸드스캐너를 사용하면서 의식적으로 잔반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문제를 인지하고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데도 도움을 주는 것 같다”고 밝혔다.
학교 급식에 도입하다보니 환경만이 아니라 영양 측면에서도 활용이 가능하다. 학생들에게 식습관과 영양 섭취 현황을 분석한 리포트를 제공해 현장 담당 교원이 활용하고 있다. 잔반량에 따라 시범적으로 포인트를 주어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하는 곳도 있다. 앞으로는 헬스케어 분야에서도 활용하기 위해 병원이나 당뇨 관련 기업과 논의 중이다. 기술력을 의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높이는 것이 과제다.
푸드스캐너를 통한 식단 분석은 세계적으로도 새로운 접근방법이라 글로벌 기업의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마이크로소프트 혁신 서밋에 초청받아 식당에서 기술을 시연했다. 아직 해외 매출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글로벌 진출을 위해 세계 최대 급식 기업인 콤파스 그룹과 서비스 실증 검증 중이다.
같은 기술이라도 해외 식단에 적용이 어려울 것 같다는 질문에 “더 많은 데이터 수집이 필요하다. 사실 여러 재료를 비벼 먹거나 끓여서 조리하는 한식보다는 서양 식단이 한눈에 파악하기에는 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적용하기 전이라 새롭게 기술을 완성하는 것이 과제”라고 류제윤 CTO가 답했다.
또한 글로벌 진출에 주요한 비콥(B corp) 인증을 준비 중이다. 비콥은 제품과 서비스를 넘어 기업이 창출하는 긍정적인 사회적·환경적 성과를 전반적으로 측정하는 인증제도다. 이는 누비랩이 기업 내부적으로도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신경 쓰겠다는 이야기다.
다른 IT 기업과 마찬가지로 기술을 개발할 좋은 인력 확보에도 힘쓰고 있다. 류 CTO는 “우리가 풀고자 하는 기술을 같이 개발해줄 사람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렵다. 좋은 사람들을 찾기 위해 서비스하면서 수집한 데이터를 활용해서 마음껏 실험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AI 개발을 위한 리소스 부족으로 제약이 생기지 않게 개발 인프라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도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단체 급식에 주로 적용하지만, 환경이나 4차 산업 분야와 관련한 다양한 국가 지원사업을 활용하면 소규모 기관에서도 충분히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바우처 사업의 공급 기업으로도 선정돼 소기업들과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지원사업을 활용해서 초기 시스템의 허들을 낮추고, 누비랩 시스템을 통해 창출되는 수익으로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누비랩의 목표는 어린이집에서 요양시설까지 전 생애주기에 걸쳐 ‘푸드 디지털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모바일로도 서비스를 확장해서 모두가 식사를 데이터화하고 개인의 건강이나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박 리더는 “우리의 기술력 하나만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 비즈니스 분야가 국내외적으로 꼭 필요하다는 확신이 있다. 당장 내일 날씨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계절이 바뀐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듯, 우리의 계절이 다가온다는 생각으로 사용자 니즈에 맞도록 기술을 고도화하겠다”고 했다.
정화령 <라이프인> 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