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 여행 느낌 주는 건축 디자인 헤더윅 스튜디오

전시 오아시스

등록 : 2016-09-01 14:14
롤링 브리지 ⓒSteve Speller

런던의 디자인 스튜디오 ‘헤더윅’의 작품을 보여 주는 전시장에 실물이라곤 런던 2층버스의 앞머리, 성화봉, 러그와 테이블, 의자 등 작은 소품들이 전부다. 건축물은 사진과 영상, 모형으로 가늠해야 한다. 그러나 이 건축 도록 같은 전시회는 기대 이상으로 머릿속을 즐겁게 휘저어놓는다.

런던 패딩턴 유역에 ‘롤링 브리지’라는 이름의 다리는 동그랗게 말렸다 펴지는 모습이 다람쥐 쳇바퀴나 오동통한 애벌레의 몸짓 같다. 선박의 통행을 위해 육중하게 여닫히는 다리를 보며 느꼈던 산업적 이미지가 조금도 없다.

파터노스터 광장 한가운데 놓인 냉각 장치는 두 개의 트위스트 기둥이 쌍을 이루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양철 구조물인데 겉모습이 마치 설치 작품 같다. 중동의 사막 아부다비에 있는 공원은 지붕을 가뭄으로 갈라진 땅의 모양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갈라진 땅의 껍데기 아래서 쉬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볼 법한 장면!

헤더윅의 작업들을 둘러보면 동화 속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땅의 기억을 살리면서 건축물의 용도를 담아낸 건물들은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제지공장 자리에 지어진 주류회사 봄베이 사파이어의 증류소는 제지 공장의 흔적을 보존하면서 봄베이 사파이어가 생산하는 술에 들어가는 허브를 재배하는 온실을 건축해 정체성을 살렸다. 케이프타운에 있는 현대미술관은 곡물저장소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는데, 미술관 중앙에 곡식의 낱알 모양을 베어낸 형태를 넣어 독특한 체험 공간을 마련했다.

이들은 섬세하기도 하다. 런던의 2층버스 디자인 의뢰가 들어왔을 때 버스를 11m로 늘리면서 거대한 느낌을 덜어내기 위해 모서리를 곡선으로 굴렸다. 사선으로 절개선을 넣은 러그와 테이블은 사선이 촘촘히 붙었을 때와 틈이 벌어졌을 때의 크기가 달라져 필요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변화의 폭이 크다. 좁은 집이 떠올라서인지 무척 감탄스럽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 꽃잎 모양 성화봉을,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에는 끝자락에 씨앗을 담은 25만 개의 투명 막대 ‘씨앗 대성당’을 내놓았다. 마치 민들레 씨처럼 흩어질 것만 같은 모양, 딱딱한 플라스틱으로 저토록 감성을 자아내다니 어떤 것에도 감성을 담아낼 수 있을 것만 같다.

텍스타일 디자이너였던 토머스 헤더윅의 할머니는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고 한다. 그는 현실에서 그 말이 거의 쓰이지 않는 점이 의아했다. 헤더윅 스튜디오의 모험 같은 작업의 출발은 거기에 있었다. 전시장에서 가장 부러웠던 장면은, 2018년 템스 강에 세워질 보행자 전용 다리 ‘가든 브리지’였다. 마치 거대한 수반 같은 다리의 이름은 ‘A journey of wonder in the city’. 이 사진을 보며 조용히 서울역 고가를 기대해 보았다.


장소: 한남동 디뮤지엄

기간: 10월23일까지

글 이나래 생활칼럼리스트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