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의 교육 자치 모델 ‘송파쌤’은 구 내 흩어져 있는 인재, 교육 시설과 프로그램 등 인적·물적 교육 기반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교육 플랫폼(지원체계)’이다. 이 중에서 미래교육센터는 모두 15곳으로 4차 산업 관련 교육과 공간 거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송파구 신천동 미래교육 헤드센터에서 메타버스와 삼차원(3D) 프린팅 강사 양성 교육과정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이 16일 쉬는 시간을 이용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인물도서관·미래교육센터·악기도서관·교육포털 통해
영유아부터 노인까지…전국 최초로 ‘생애 교육체계’ 구축
“지난해 퇴사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초등학교 다니는 큰딸이 삼차원(3D)프린팅 같은 ‘미래교육’ 수업을 듣고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더라고요. 대충은 알겠는데 설명을 잘 못해줬죠.”
김윤정(37)씨는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아이 엄마다. 지난 5월22일부터 신천동에 있는 ‘송파구 미래교육 헤드센터’에서 3D 프린팅 강사 양성 교육과정을 수강하고 있다. 6월28일까지 총 33시간 교육받으면 ‘송파쌤’으로 활동하게 된다. 김씨는 16일 “궁금한 걸 물어보는 아이에게 제대로 설명해주고 싶어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3D 프린팅을 배우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내가 배워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교육을 신청하게 됐다”고 했다.
“뉴미디어 분야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있습니다. 저도 전공이 이쪽과 맞닿아 있어한번 해보고 싶었죠.”
메타버스 강사 양성 교육과정 수업 모습.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박정한(45) 한국빅데이터분석연구소 대표연구원은 빅데이터 분야에서 15년 동안 일하고 있다. 언론학 박사과정(뉴미디어 분야)을 마치고 대학에서 강의도 할 정도의 재원이다. 박 대표연구원도 ‘메타버스 송파쌤강사 양성 교육과정’을 마치면 김씨와 마찬가지로 송파쌤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전에는 이 정도 교육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데 점점 배우는 연령이 내려가요. 아이들에게 미약하나마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박 대표연구원은 “송파구에는 다른 자치구보다 앞서가는 프로그램이나 지원이 많아 나도 자주 이용한다”며 “애향심으로 하는 재능기부가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송파쌤 영상을 제작할 수 있는 스튜디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송파쌤은 송파구가 만든 독자적인 교육자치 모델이다. 지역 내 흩어져 있는 인재, 교육 시설과 프로그램 등 인적·물적 교육 기반을 한데 모아 만든 ‘교육 플랫폼(지원체계)’이다. 구는 배움을 원하는 사람과 배움을 나누고 싶은 사람을 지역 교육 기반으로 연결해 ‘세상에서 가장 큰 학교’를 만드는 게 목표다.
“송파구에는 교육열만큼이나 우수한 지역 인재가 많아요. 이를 활용하면 공교육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창의적이고 우수한 인재를 키워내는 산실이 될 겁니다.” 정유석 송파구 교육협력과 스마트평생교육팀장은 “영유아부터 노인까지 전 생애에 걸쳐 구민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한 것은 송파구가 전국 최초”라고 했다.
“교육은 국가의 경쟁력과 미래 가치를 결정합니다. 자치단체는 지역마다 다른 자원을 활용하고 조정해야 합니다. 송파쌤은 그 기반을 만든 거죠.” 정 팀장은 “송파쌤은 자치단체, 교육기관,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것으로 입시나 성적 위주가 아닌 창의적이고 특화된 교육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송파쌤의 핵심 기반은 인물도서관, 미래교육센터, 악기도서관, 송파쌤 교육포털 등 크게 4가지다.
2019년 10월 개관한 인물도서관은 ‘사람이 책'을 표어로 전문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멘토링 프로그램이다. 사회 저명인사, 전문가, 마을 인재, 기업인 등 700여 명이 활동하는 송파쌤의 대표 인재풀이다. 다양한 분야의 강연과 직업 멘토링 체험 등을 송파쌤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는 ‘라이브 인물도서’,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주제로 학교에서 강의하는 ‘학교로 찾아가는 인물도서관’ 등이 있다. 여기에는 외교관, 건축가, 교수, 심리학자, 스포츠 스타, 빅데이터 전문가, 드론 조종사, 시인, 판사, 변호사, 조각가, 동화작가, 한의사, 언론인, 제빵 명장 등 다양한 직업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삼차원(3D) 프린터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2019년 2곳이었던 미래교육센터는 올해 15곳으로 늘었다. 미래교육센터를 총괄하는 헤드센터가 있고 그 아래 허브센터와 지역·특화 센터가 있다. 미래세대에게 4차 산업과 관련된 첨단기술교육을 지원하는 거점 역할을 하는데 인공지능, 3D 프린팅, 코딩, 드론, 가상현실 등 첨단기술의 기초를 가르친다. 월평균 70여 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지금까지 3만 명 넘는 구민이 교육을 받았다.
2021년 5월 개관한 악기도서관은 악기를 대여하고 연주와 창작 공간을 제공하는 복합 음악 문화공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메타버스 강사 양성교육과정 수업 중에 박정환씨가 박선예 강사에게 질문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문화·예술 등 기본 소양에서 4차 산업까지 프로그램 다양
강사 양성과정 통해 주민이 강사 활동
“아이 가르쳐 보람과 소속감 함께 느껴”
이용자 32만 명, 프로그램 2만여회 이용
2021년 1월 개설한 송파쌤 교육포털은 인물도서관, 미래교육센터, 악기도서관 등 구 내교육시설과 프로그램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온·오프라인 네트워크의 중심이다. 이곳에서는 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 신청할 수 있고,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 개설을 신청하면 해당 프로그램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프로그램에 맞는 학습 공간도 찾아서 알려준다.
이 외에도 구 내 평생학습원, 주민자치회관, 정보화교실, 여성교실, 송파여성문화회관, 도서관, 송파생활문화대학 등 다양한 기관별 프로그램을 통합 운영해 효율성을 높였다. 정 팀장은 “앞으로 화상교육 솔루션을 도입해 온라인 송파쌤 캠퍼스를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했다.
구는 이를 기반으로 영유아를 위한 재능발굴, 아동·청소년을 위한 적성·진로탐색과 창의교육, 청년·중장년을 위한 일자리 창출교육, 노년을 위한 시니어 교육 등 전 생애에 걸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또한 문화, 역사, 예술, 건강·체육 등 기본 소양교육 프로그램도 있다.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교육 현장이 어려움을 겪었다. 교사들이 오프라인 수업과 온라인 수업을 동시에 진행해 업무 부담이 늘었다. 학생들의 기초 학력이 저하되고 교육 격차가 벌어졌다. 영유아돌봄 공백으로 부모들의 걱정도 늘었다.
송파쌤은 온라인 수업을 지원해 학교 교육에 큰 도움을 줬다. 2020년 6월부터 송파쌤 인물도서와 구 내 대학생, 교육활동가가 참여해 멘토링, 진로체험, 자기주도학습, 초등학교 저학년용 일반수업 등 영상 150여편을 만들어 ‘송파쌤 홈스쿨링’을 지원했다.
지난해 구 내 11개 초등학교에서 1만3천여명의 학생이 이용했다. 이뿐만 아니라 구는 2020년 8월부터 구 내 교육기관에 송파쌤 인물도서를 긴급돌봄교실 강사로 파견해 돌봄 공백도 메웠다.
삼차원(3D) 프린팅 강사 양성 교육과정 수업을 듣는 김윤정씨가 자신이 만든 프린터물을 들어보이고 있다. 빛에 비추면 인물의 모습이 입체적으로 보인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송파구는 미래교육센터를 통해 꾸준히 우수한 강사를 양성하고 있다. 송파쌤 강사양성과정을 마치고 활동하는 강사들은 더나은 교육을 위해 꾸준히 소규모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한다. 주기적으로 모여 정보 교환과 교육 프로그램 개발도 한다.
이지연씨는 2020년 강사 양성과정 교육을 마치고 지난해부터 송파쌤 코딩 강사가 됐다. 이날 송파쌤으로 활동하는 강사 2명과 함께 미래교육 헤드센터에서 스터디를 열었다. “초등학생, 중학생 등 대상이나 환경에따라 난이도가 달라지죠. 내용이 바뀌면 저희도 다시 교육받고 새로운 커리큘럼도 만들고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지 스터디를 합니다.” 프로그래머였던 이씨는 “결혼과 육아 때문에 원하지 않게 경력 단절이 생겼다”며 “송파쌤으로 활동하면서 나 자신에게 동기부여도 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보람도 느낀다”며 매우 뿌듯해했다. 이씨와 함께 온 김정이씨도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어 계속 열심히 하게 된다”며 “지역사회에 소속감을 느끼게 돼 굉장히 즐겁고 자부심을 가지게 됐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캘리그래피 강사 박찬미씨도 “지난해에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수업했는데 올해부터는 중학생도 가르친다”며 “일이 많아지니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했다.
송파구의 강사 양성과정을 마치고 송파쌤 강사로 활동하는 코딩 강사(왼쪽)와 캘리그래피 강사들이 16일 미래교육 헤드센터에 각각 모여 교육 프로그램 관련 회의를 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송파쌤이 만들어진 이후 전체 이용자는 꾸준히 증가해 올해 3월까지 32만여 명, 프로그램 누적 이용 2만2천 회를 넘었다. 인물도서는 14만여 명, 미래교육센터는 4만7천여 명, 교육포털은 13만여 명이 이용했다.
정 팀장은 “역설적으로 코로나19 덕분에 가장 ‘트렌디’한 송파쌤 교육 기반이 만들어졌다”며 “앞으로 여러 교육 기반의 연계를 더욱 강화하고 차별화된 교육 콘텐츠를 개발해 송파구의 교육 경쟁력을 높여가겠다”고 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