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 중에서도 가장 체구가 큰 고래상어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은 세계적인 생태 관광지가 된다. 고래상어는 성격도 매우 온순하고 호기심도 많다. 인간과 바다생물의 공존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아하는 작품이다. (2014년 몰디브)
다이빙 늦바람…10여년간 800번 시도
‘다이빙+사진 장비’ 체력 소모 극심해도
바다서 수많은 경이로운 생명 만나며
“지구 행성 진짜 모습은 여기·이것” 느껴
큰 바다생물 찍는 건 ‘용왕님 허락한 것’
꼬리 긴 환도상어, 10번 가도 못 만나다
6년 뒤 재방문 때 손 닿을 듯 가깝게 와
72시간 항해 뒤엔 ‘귀상어 떼’ 만나기도
‘바다는 모든 생명들의 고향’ 느끼면서
남획으로 ‘멸종되어가는 현실’에 아픔
“지구 행성의 모든 생물은 존엄한 존재
사진전에서 공감할 수 있는 기회 되길”
재단법인 숲과나눔(이하 숲과나눔)이 오는 10일까지 사진전문 갤러리 류가헌에서 사진전 ‘800번의 귀향’을 열고 있다. 재단 창립 4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장재연 재단 이사장이 10년 넘는 세월 동안 800여 번의 바다 다이빙을 하며 담은 사진 중 60점을 골라 전시한다. 장 이사장은 왜 그렇게 바다 다이빙에 열중하는 것일까? 800번의 다이빙을 통해 그가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그가 800번의 다이빙을 통해 본 ‘진실’을 살짝 훔쳐보고픈 마음에 장 이사장에게 원고를 청했다. 편집자
첫 다이빙의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 바다로 입수하는 순간의 두려움과 공포는 바다생물을 만나며 놀라움과 환희로 바뀌었다. “지구라는 행성의 진짜 모습이 이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벼락처럼 머리를 쳤다. 태어난 행성의 실체도 모른 채 생을 마감할 뻔했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늦바람처럼 다이빙에 빠져들었다. 다이빙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스포츠이지만, 바다생물이 주는 아름다움과 감동은 다이빙을 계속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800번의 다이빙’을 통해 바다에서 만난 수많은 생명체는 경이롭고 고귀한 존재였다. 평생 ‘환경운동’이 바로 곁에 있었지만, 식용 생선 몇 종류 이외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면서 외치는 “바다를 지켜야 한다”라는 구호가 허공의 메아리처럼 느껴졌다. 바다생물이 누구인지, 그들의 존재와 모습을 알리고 싶었다. ‘다이빙 기록을 위한 수중사진’이 ‘수중사진을 위한 다이빙’으로 전환되는 동기가 됐다.
수중사진 장비는 카메라 이외에도 높은 수압에서도 물이 침투하지 못하게 하는 하우징과 스트로보 등이 포함돼 무게가 상당하다. 수중에서는 부력으로 무게감 없이 다룰 수 있다. (2019년 발리
다이빙은 자체 장비만도 엄청난데 사진 장비까지 더해지면 그로 인한 체력 소모가 심해서 험하고 급변하는 바다 환경에서는 위험성이 급증한다. 피사체와 사진가 모두 계속 흔들리기 때문에 안정된 촬영 위치나 자세를 확보하기 어렵다. 머물 수 있는 시간도 한 시간 이내로 제한적이다. 물론 피사체가 포즈를 취해주지도 않는다. 숙련된 다이빙 기술이 필수다. 오랜 시간의 혹독한 훈련과 시험 과정을 거쳐 다이브 마스터와 강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유다.
바다생물의 크기는 1밀리미터에서 십수 미터까지 넓은 범위여서 그에 맞는 접사렌즈와 광각렌즈가 필요하다. 수중에서 렌즈 교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매번 어느 한쪽은 포기해야만 한다. 마음을 비우는 훈련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접근이 가능하고 구도를 잡을 수 있는 접사촬영과 달리 만나기 매우 힘든 덩치가 큰 바다생물이나 특별한 장면을 짧은 순간에 담아야 하는 광각 촬영의 경우는 ‘용왕님이 허락한 것’이라고 할 정도의 행운이 따라야 한다.
모든 바다생물 촬영을 사랑하지만 수십, 수백 심지어 수천 마리 군집의 모습을 촬영하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게 됐다. 행운이나 우연에 기대야 하는 한계가 있지만, 작고 힘없어 보이는 존재들이 뭉쳐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선과 신비한 형상이 큰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힘든 세상을 헤쳐 나가는 시민 또는 민중의 연대감이 연상되는 것도 좋았다.
성격이 온순하고 꼬리가 길어 샥스핀 어업의 집중 타깃이 돼서 멸종위기종이 된 환도상어. 지금은 생태 관광으로 섬 전체를 먹여 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어, 스트로보 사용 촬영도 금지되고 있다. (2015년 필리핀 말라파스쿠아 섬)
먼 곳까지 가서 수십 번 다이빙해도 원하는 바다생물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는 흔하다. 다시 가는 것 이외에 방법이 없다.
꼬리가 몸체만큼이나 길고 비단결 같은 몸과 순진한 눈동자의 환도상어는 꼭 만나보고 싶었던 바다생물이었다. 필리핀의 말라파스쿠아라는 섬에서 10번 이상 만남을 시도했지만 멀리 지나가는 모습을 단 한 번밖에 보지 못했었다. 6년 후 다시 방문했을 때 바로 손이 닿을 정도로 가깝게 지나는 기회를 포착해 새벽의 어렴풋한 자연광만으로도 선명하고 아름다운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곳, 버킷리스트 1번은 소설 <보물섬>의 배경인 코코스 섬이라는 작은 무인도였다. 3번의 비행기 환승과 72시간의 항해 끝에 도착했다. 거기서 수백 마리의 귀상어 떼를 만났다. 강력한 하강 조류로 일행이 뿔뿔이 흩어져 홀로 남겨지고, 깊은 수심으로 공기는 급속도로 고갈되는 위험 상황에서 그들을 발견하고 사진기 셔터를 눌렀다. 조난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 몸을 감쌌다.
갈라파고스에서의 다이빙도 잊을 수 없다. 거대한 고래상어와 여러 마리의 개복치, 그리고 귀상어와 바라쿠다 군집 등 희귀한 바다생물이 한꺼번에 총출동해서 주변을 맴돌고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광경은 눈으로 촬영하고 머리에 담아둘 수밖에 없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육상 여행 중에 현지에서 장비를 빌려서 한 다이빙이었다. 어쩌다 한 번 빈손이었던 날 생애 최고의 환상적인 다이빙을 경험했으니, 인생은 참으로 절묘하다.
생명이 바다에서 시작됐으니 바다생물이야말로 ‘생명의 고향’을 지킨 아이들이고, 인간과 같은 육지 생물은 ‘집 나간 아이들’일 것이다. 더구나 엄청난 고향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배설물만 돌려보내고, 먼 친척 바다생물을 멸종 위기에 처하게 했으니 인간은 배은망덕한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소수 미식가를 위한 무리한 어업, 실제 유효 성분도 없거나 효능이 불분명함에도 정력제, 한약재 심지어는 관상용으로까지 남획하면서 멸종 위기에 처하게 한 바다생물이 하나둘이 아니다.
유난히 진귀한 식재료나 약재를 탐하는 중국, 그리고 그 영향을 받았는지 희귀한 바다생물에 대한 탐닉이 강한 한국과 일본은 바다생물 남획의 주요 원인 제공 국가다. 국제적인 보호운동의 도도한 흐름도 모르고 샥스핀이라는 야만적인 음식을 여전히 판매하는 국내 몇몇 재벌 소유의 최고 특급호텔의 무지하고 몰염치한 영업은 통탄스러운 행위다.
수천 종의 다양한 종류가 확인됐지만 아직도 미확인 종이 계속 발견되고 있고, 형형색색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이버들을 유혹하는 갯민숭달팽이(누디브랜치). (2016년 인도네시아 렘베)
바다생물도 생존을 위해 잡아먹고 먹히면서 먹이사슬 생태계를 유지하고는 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바다생물의 멸종 위기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것이 아니고 단순 취향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살육이라 불러 마땅하다. 15년 동안 다양한 종류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상어를 만났지만 과장된 엉터리 영화 장면과 달리 단 한 번도 공격적인 상어를 만난 적이 없다. 반면에 인간은 매년 1억 마리의 상어를 살육하고 있다. 누가 위험한 바다의 악당인가?
모든 생물은 그의 생명과 삶의 관점에서 보면 각각 진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나침반 없이도 수백 킬로 떨어진 곳을 찾아가고, 유전자증폭(PCR) 검사 없이도 증상이 나타나기 훨씬 전에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을 알고 격리하는 능력을 가진 랍스터 종도 있다. 자신의 천적들이 무서워하는 동물의 형태로 다양하게 변신하는 높은 지능을 소유한 문어도 있다. 집단의 연속성을 보존하기 위한 암수 전환 능력, 그리고 임신, 출산과 양육의 완벽한 성평등 등은 바다생물에게는 드물지 않다. 자신의 생명을 바쳐가며 알을 보호하는 부성과 모성은 오히려 인간이 숙연함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바다생물 입장에서 인간은 바닷속에서 5분도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는, 가장 진화하지 못한 하등생물일 수 있다. ‘800번의 귀향’ 사진전을 통해 지구라는 행성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물은 아름답고 존엄한 존재로서 평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과 책임감을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사진 장재연 숲과나눔 이사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