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란기의 서울 골목길 탐방
3·1운동 첫 타전 붉은 벽돌집, 군용천막 덧씌워진 처연한 모습
서울 종로구 행촌동 딜쿠샤 언덕
등록 : 2016-09-02 00:28 수정 : 2016-09-02 17:04
종로구 행촌동의 '딜쿠샤'
종로구 교남동에 있었던 '행촌연립'
권율 장군 집터에서 400년을 산 은행나무 아래서 이들 부부가 행복한 한국 생활 시절의 모습을 남기고 있다. 뒤편에 보이는 집이 딜쿠샤다.
언젠가 몰래 들어가 기웃기웃하던 중 그 건물에는 열 가구가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어느 문에는 이름 대신 ‘뽕짝 아줌마 김XX 010-XXXX-XXXX’라는 매직으로 쓴 안내문이 붙어 있음도 보았다.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지 짐작은 했다. 우리말로 ‘이상향’, 힌디어로 ‘딜쿠샤(Dilkusha)’라는 이 건물이 세월의 풍우에 씻겨 쇄락한 모습으로 집 없는 사람들의 안식처가 된 것은 꽤나 오래전의 일인 것 같다. 그런 건물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2006년 2월28일 KBS의 3·1절 특집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나라’는 신예 장상일 감독이 제작한 프로그램이었다. 서울 행촌동 1번지 딜쿠샤의 주인 앨버트 W. 테일러(1875~1948)가 그의 부인 메리 테일러(1889~1982)와 31년을 함께 살면서 이 집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가는 프로그램이었다. 앨버트 테일러는 금광기술자, UPI통신·AP통신 서울특파원이었고, 영화 수입도 했다. 특히 3·1운동을 처음으로 전 세계에 타전했던 사람이다. 연극배우였던 메리 테일러는 일본에서 공연하던 중 앨버트 테일러(부르스라 부르기도 한다)를 만난다. 앨버트는 금광업자인 아버지 조지 테일러(1829~1908)의 뒤를 이어 운산금광을 운영할 2세였는데, 일본을 여행하면서 메리를 만났다. 그는 열 달 뒤 메리가 공연하고 있는 인도로 달려갔다. 청혼을 하고 수락을 얻어 인도에서 둘은 결혼한다. 그리고 메리는 31년을 함께 살 한국으로 앨버트를 따라온다. 메리는 한국에 살면서 자전적 글도 틈틈이 썼는데, 그 글을 모아 책을 냈다. 2014년 <호박 목걸이>란 제목으로 우리나라에도 번역돼 소개되었다. 메리가 한국의 전통 목걸이인 ‘호박 목걸이’를 사랑해 호박들을 줄에 꿰어가며 자기의 삶을 완성해갔다는 이야기이다. 그 호박들에는 티끌이 있는 것, 공기방울이 있는 것, 더러는 꽃의 파편이 들어 있는 것도 있다고 했다. 서울시와 문화재청 등 관련 기관에서는 이 건물을 보수하고 복원해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에 새로 개관할 예정이다. 사진 김란기, 국가기록원, 장상일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