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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그림책, 주민 위로하고 활력 되찾게 하는 ‘촉매’ 되다

강동구 도서관 동아리, 주민 사연 해결 ‘동심우체통’ 운영
주민들 사연과 고민 듣고 위로의 글과 함께 그림책 추천

등록 : 2022-07-07 15:04 수정 : 2022-07-08 15:08
강동구 도서관 동아리 동네북과 책꼬지 회원들이 1일 강동구 천호도서관에서 ‘동심우체통’ 내용을 엮어 펴낸 에세이집 <동심우체통>을 들고 밝게 웃고 있다. 두 동아리는 지난해 주민들이 올린 사연과 고민에 답글을 쓰고 그림책을 추천해주는 동심우체통을 운영해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주민들을 위로했다.

동네북·책꼬지 회원들 “주민 마음 아는 주민이 추천해 큰 공감”

주민 생활 속의 다양한 고민 풀어주고

사연 중 50편 묶어서 책으로도 펴내

“엄마들도 할 수 있다는 것 보여줘 뿌듯”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고, 답장을 쓰고, 도움이 되는 그림책을 추천하는 게 재밌을 것 같아 시작하게 됐죠. 머릿속 지식이 아니라 하나의 선물처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윤수혜(38) ‘동네북’ 대표는 1일 “답변하기위해 정말 책도 많이 보고 상의도 많이 했다”며 “사연 하나 답변하는 데 4시간씩 걸릴정도로 힘들었지만 그 과정이 무척 재밌었다”고 했다.

강동구 내 6개 구립도서관은 지난해 공동으로 ‘2021 강동북페스티벌’을 개최했다. ‘동심(아이 마음)으로 돌아가 동심(한마음)이 되어 동심(얼어붙은 마음)을 녹이자’를 표어로 내세워 코로나19로 힘겨워하는 지역 주민 100명의 고민에 답하는 그림책 해법 ‘동심우체통’을 온라인으로 운영했다. 10월1일부터 일주일 동안 사연을 모집하고 16일까지 해결책을 준비했다. 구 내 도서관 동아리 중 활동이 가장 활발한 천호도서관 동아리 동네북과 암사도서관 동아리 책꼬지가 함께 참여해 답변과 그림책 추천을 맡았다. 주민들이 고민을 이야기하면 위로의 글과 함께 그에 맞는 그림책을 추천했는데, 코로나19로 얼어붙은 지역 주민의 마음을 위로하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천호도서관 내부 모습.

천호도서관과 암사도서관은 사연과 고민을 올린 지역 주민에게 동아리 회원들이 추천한 그림책 중 1권을 집으로 배달했다. 정예림 강동문화재단 도서관팀 사서는 “형식적인 문제 해결이 아닌 실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림책과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했다”며 “고민으로 힘들어하고 코로나19로 얼어붙은 주민들 마음을 녹이는 기회가 됐다”고 했다.

동네북은 북페스티벌이 끝난 뒤 동심우체통에 올라온 사연 중 50편을 모아 지난 6월 마음 치유 에세이집 <동심우체통>을 펴냈다.

“주민들이 쓴 100통의 고민을 읽고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책으로 만들었죠.” 윤 대표는 “애초 책으로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결과물을 남기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고 했다. <동심우체통>은 기획과 편집, 출판까지 모두 동네북 동아리 회원들이 맡았다.

주민들은 동심우체통에 가족이나 주민 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 만나는 사연과 고민을 털어놨다. “우울하다, 힘들다, 시시콜콜한 얘기부터 환경 문제까지 얘기했죠.” 윤 대표는 “동생이 방 청소를 하지 않아 속상하다는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 학생에게는 ‘깨끗하게 청소하는 법을 배워보고 같이 해보라’는 내용의 답변과 함께 그림책 <쓰레기통 우정>을 추천했다.

한 엄마는 어릴 때 사이가 좋았던 14살 아들과 6살 딸이 자주 다퉈서 고민이라고 했다. “오빠는 동생을 툭하면 괴롭히고 약 올리고, 동생은 오빠에게 화내고 짜증 내고 무시해요.” 동아리 회원들은 오빠와 여동생이 티격태격 싸우는 이야기를 다룬 <터널>을 추천했다. 이 책은 밖에 나가서 사이좋게 놀다오라는 엄마 말을 듣고 터널을 발견하고 터널을 함께 지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빠를 바꿔주세요>와 <내 멋대로 동생 뽑기> 등도 함께 추천했다. <오빠를 바꿔주세요>에 나오는 내용처럼 동생이 아기였을 때 오빠가 얼마나 동생을 사랑했는지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답변도 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에게 소홀했던 한 엄마의 사연에는 여유가 없으면 만족감도 떨어질 수 있으니 잠시 멈춰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어른들 안에는 아이가 산대> <엄마도감> 등을 추천했다.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천호도서관 내부 모습.

집에서는 ‘귀여운 아빠 딸’이지만 밖에서는 ‘쎈 언니’ 행세를 하는 초등학교 고학년 딸 때문에 고민이라는 사연도 있다. 엄마에게도 상처가 되는 말을 툭툭 던져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이 사연의 주인공에게는 딸이 말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지 모른다며 ‘쎈 언니’가 나오는 초등학교 고학년용 동화책 <방과후 아나운서 클럽>을 ‘처방’했다. 소심한 사람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 <마음 조심>, 상황에 따라 적절한 말의 쓰임새를 알려주는 동화책 <말들이 사는 나라>도 함께 추천했다.

“엄마나 아이뿐만 아니라 아빠들도 꽤 많이 참여해 인상적이었습니다.” 암사도서관 책꼬지 회원 이홍은(44)씨는 아이에게 좋은 그림책을 읽어주고 싶어서 2018년부터 모임에 참여했다. 이씨는 아이와 함께 재밌게 볼 수 있는 책을 추천해달라는 한 아빠의 사연을 보고 “아빠가 아이랑 책을 통해 가까워질 수 있는 과학을 주제로 한 그림책을 추천해줬다”고 했다. 이씨는 “젊은 아빠들이 육아가 힘들지만 업무 분담이 아닌 인생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한국이 발전하고있구나 싶었다”며 웃었다.

동심우체통을 운영하면서 주민들 사연에 답글을 쓰고 그림책을 추천한 윤수혜 천호도서관 동아리 동네북 대표(왼쪽)와 장인혜 암사도서관 동아리 책꼬지 회원(가운데), 동심우체통을 기획한 이채영 강동문화재단 도서관팀 사서. 정용일 선임기자

책꼬지 회원 장인혜(48)씨는 아이를 키운 경험을 살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책을 추천할 수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동네북 회원 윤자영(42)씨도 “코로나 상황에서 우울하고 육아가 힘들다는 사연이 많았다”며 “힘을 얻을 수 있는 그림책을 많이 추천하고 우리도 많이 읽어 좋았다”고 했다.

“주민 마음은 주민이 더 잘 아니까 고민해결책도 주민이 내놓으면 더 공감할 수 있겠다 싶었죠.” 강동구는 2020년 북페스티벌때부터 도서관 사서가 직접 지역 주민의 사연과 고민을 듣고 책을 추천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채영(37) 강동문화재단 도서관팀 사서는 “2020년에는 사서들이 주민들 고민을 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으나 이듬해부터 주민이 주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바꿨다”고 했다. 이 사서는 “주민들 고민을 듣고 그림책을 처방해주는 것은 아마 우리가 처음일 것”이라며 “짜증 나고 어렵고 힘들었는데, 큰 위로를 받았다는 주민반응이 많다”고 했다.

독립출판사를 운영하는 강비조씨는 <동심우체통> 출판을 맡았다. 강씨는 “지역 주민이 도서관을 중심으로 동아리를 만들어 강사도 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게 놀랍다”며 “지역 주민이 힘을 합쳐 책을 내는 과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동아리 회원들이 다년간 그림책 스터디를 하며 키운 역량을 발휘해 그림책 추천과 해결책을 제시했죠.” 2017년 10월 공동육아특화 도서관으로 개관한 천호도서관은 공동육아와 독서 동아리 등 다양한 주민 활동이 활발한 곳이다.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천호도서관 내부 모습.

동네북은 천호도서관이 2019년 개설한 책놀이 지도사 육성 과정에 참가한 주민들이 교육 과정을 마치고 아이들을 위한 멘토 역할을 하면서 만든 동아리다. ‘그림책으로 행복한 동네를 만들자’를 모토로 다양한 지역 공동체와 아동을 위한 책놀이 강좌를 운영하고, 그림책과 책놀이 스터디 활동도 매주 한다.

윤 대표는 “공부만 하지 말고 실천도 하자는 생각으로 모임을 만들었다”며 “‘그림책 봉사’로 지역 주민과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시작할 때는 엄마가 좋은 그림책을 먼저 읽고 아이에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나를 위해서 그림책을 읽죠.” 윤대표는 “육아만 하던 평범한 주부들이 지역사회 도움으로 책까지 만들어 자신감을 얻은 만큼 앞으로도 계속 지역사회를 위해 도움되는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