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일하는 사람들인 임경훈 롤러코스터 대표(왼쪽)와 김회량 캠프커뮤니케이션즈 디자이너가 지난 6월28일 마포구 서교동의 카페에서 만나 회의하고 있다.
외주화는 ‘적은 비용’을 목표로 하지만
‘단계별 외주’ 발달한 출판계, “다른 모습”
경력 쌓이면 외부와 내부 큰 차이 없어
조직, 안락하지만 ‘성과’ 돌아오지 않고
조직 운영에 필요한 일에 매달리기도
독립 뒤 의사 결정 빨라진 점 경험하고
기술 발달로 혼자 일할 여건도 좋아져
그러나 ‘혼자 일하기’만 고집하진 않아
중요한 것은 ‘본래 하고자 했던 일’ 여부
이쯤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다르게 일하는 사람들’을 연재하고 있지만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공식 통계도 없고 추산하기도 어렵다. 주 5일, 전일제로 하나의 직장을 꾸준히 다녀야 ‘직장인’이라고 이해되는 사회에서는 그와 다르게 일하는 사람들은 있다 해도 독특한 영역에, 아주 소수만 존재할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다르게 일하는 사람들? 있다 해도 얼마나 되겠나?”라는 말을 들어도 답하기 어렵다.
그런데 내 주변에는 유독 프리랜서, 엔(N)잡러, 단기 근속자가 많다. 이런 주제로 연구해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 자신이 독립연구자(일in연구소는 ‘일’을 연구한다는 뜻과 ‘혼자’ 일한다는 뜻을 다 가진 이름이다)인 영향도 있을 것이다.
두사람 모두 평소에는 각각 상암동과 서교동의 개인 작업실에서 일하며 업무 파트너들과는 주로 온라인으로 소통한다.
책 출간을 위해 자주 연락하는 출판 편집자인 임경훈(43) 롤러코스터 대표도 혼자 일하는 사람이다. 예전에 두 권의 책 출간작업을 같이 했을 때는 중견 출판사에 소속돼 있었는데, 3년 전 독립해서 지금은 책이 나오기까지 전 과정의 일을 혼자 하고 있다. 그 두 권 책의 편집과 표지 디자인을 해준 김회량(49) 캠프커뮤니케이션즈 디자이너도 혼자 일하는 사람이다. 작가와 편집자, 디자이너로 곧 같이 일하게 될 세 사람이 만나서 ‘혼자 일하기’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지난 6월28일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들어보니 두 사람이 같이 작업한지는 11년이나 됐다고 한다. 설명은 자연스럽게 출판 디자인 작업이 외주 디자이너에게 맡겨지게 되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제가 출판사에 입사한 2000년대 중반에는 대부분의 출판사에 디자이너가 있었어요.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있었죠. 편집자들이 자신과 잘 맞는 디자이너에게 먼저 책 맡기려고 경쟁하고, 서로 비교하게 되는 등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있었어요. 좀 색다른 작업을 하고 싶어도 한계가 있었고요. 그러다 소개를 받아서 김 디자이너님과 일하게 됐는데, 훨씬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더라고요.”(임경훈)
두사람 모두 평소에는 각각 상암동과 서교동의 개인 작업실에서 일하며 업무 파트너들과는 주로 온라인으로 소통한다.
“그렇게 편집자들의 소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기도 하고 서점에서 제가 작업한 책을 보고 출판사를 통해서 연락을 해오기도 해요. 같이 일했던 편집자가 출판사를 옮기면서도 계속 일을 주기도 하고요. 임대표랑도 그렇게 계속 같이 일해온 거죠.” (김회량)
보통 ‘외주화’를 할 때는 내부 직원보다 적은 비용을 들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단계별로 외주화가 발달한 출판계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 편집, 교정, 디자인, 마케팅 등 작업도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외부에서 할 수 있고 내부에서 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김 디자이너는 20년 이상 외주 디자이너로 일하면서도 단점보다 장점을 더 누렸다고 여긴다.
“조직에서 일하는 안락함이 있기는 하죠. 저도 첫 직장은 광고회사였어요. 광고 시안으로 사내 피티(발표회)를 해서 제 것이 선정될 때의 짜릿함을 즐기기도 했어요. 일이 많은 것도 싫지 않았고요. 문제는 고생하고 성과를 내도 저에게 돌아오는 게 없다는 점이었어요. 사원인 제가 과장을 피티로 이겨도 월급은 과장이 많이 받으니까요.”
그때쯤 지인 소개로 아동 만화 채색이라는 제2의 직업을 갖게 됐다. 감각을 인정받은 뒤로는 밤을 새우며 해야 할 정도로 일이 들어왔다. 벌이도 괜찮아서 얼마 안 가 직장에서 받는 월급을 넘어섰다. 무엇보다도 일이 재미있었다. 내가 만든 결과물이 눈에 보이고 보상이 직접 오는 점이 좋았다. 그렇게 제2의 직업 시작 1년여 만에 본래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디자이너가 됐다.
하반기에 함께 작업할 외서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조직을 나와 독립한 이유는 임 대표도 비슷했다. 책을 만들고 싶어 출판사에 입사했는데 오래 다니다보니 조직이 돌아가는 데 필요한 일을 더 많이 하고 있었고, 정작 책 만드는 일에서는 발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조직이 구축해 놓은 체계가 좋은 책 만들기에 더 나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래도 조직에서는 의사 결정이 빠르지 않잖아요. 좋은 작가를 발견해서 빨리 계약하고 싶어도 회사에서 확정을 안 해주면 못 하는 거죠. 반대로 직책이 올라가면서 제가 후배 편집자들의 결정에 관여하게 됐는데 ‘제일 고민 많이 한 사람은 저 편집자인데 내가 의견을 내는 게 맞나’ 하는 회의가 들더라고요.”
독립한 뒤 임 대표는 좋은 작가를 만나 술을 마시다가 그 자리에서 책 두 권을 계약한 적이 있다. 그런 의사 결정을 즉석에서 할 수 있는 점이 혼자 일하기의 장점이라고.
그와 동시에, 바로 그 점이 단점이 되기도한다. “조직에 있을 때는 선후배 동료들과 늘 의논하고 의견을 주고받았는데 그 과정을 혼자 하기가 처음에는 많이 힘겨웠다”는 것이다.
다만 꼭 같은 조직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들과도 의견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제각기 다른 조직으로 옮겨갔거나 임대표처럼 독립하기도 한 출판계 동료들과 서로 의견을 나누는 일은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다.
그 밖에 혼자 일할 수 있는 여건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김 디자이너는 “컴퓨터디자인 도구들을 하나씩 사야 할 때는 부담이 컸는데, 요즘은 월 구독제로 사용할수 있어서 훨씬 낫다”고 했다. 디자인 결과물을 직접 전달하지 않고 대부분 온라인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된 것도 좋아진 점이다.
임 대표도 마찬가지다. 혼자 일하다 보니 출고 주문, 세금 업무, 마케팅, 영업 등을 직접 해야 하는데, 그 대부분이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 큰 무리는 없다. “예전처럼 전국 곳곳의 서점을 직접 다니면서 ‘저희 책 좋은 자리에 놔주세요’라고 영업해야 했다면 혼자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꼭 지금처럼 일하기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임 대표는 매출이 더 늘면 직원을 채용할 생각도 있다. 김디자이너는 영역을 넓히기 위해 영상 편집도 배우고 또 다른 디자인 영역도 공부하고있다. 일하는 방식보다 중요한 점은 본래 하고자 했던 일, 그 본질을 놓치지 않고서 일하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생각하니 “그렇게 일하는 사람은 적지 않으냐?”는 질문은 초점이 잘못됐다. 좀 다르게 일해도 불합리하게 낮은 대우를 받지 않는다면, 조직 안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차별받지 않는다면 다르게 일하는 사람은 지금보다 더 많아졌을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될 이유도 없다.
사회 전체로 보더라도 그런 다양성이 있는 편이 낫다. 그러니까 소수여서 안 중요하다고 치부하기보다는 소수에 불과하게 만든 이유를 되짚어봐야 할 때다.
글·사진 황세원 일인(in)연구소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