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이 간다

“문화예술산업의 중심 도봉을 기대하십시오”

이동진 도봉구청장 주민참여 높여 주민중심 도시재생 견인, “주민 자긍심 키우는 게 구청장 소임”

등록 : 2016-09-08 16:17
문화예술 창작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공사를 시작한 대전자 방호시설에 선 이동진 도봉구청장, 이 구청장은 베드타운 도봉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도봉구의 역사 문화 정체성 확립과 주민 자긍심 회복에 힘을 쏟고 있다.

이동진(56) 도봉구청장은 인권운동가이자 정치가였던 고 김근태(1947~2011) 의원 사람이다. 고대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1990년 민주화운동단체인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에서 김 의원을 만난 이 구청장은 20년 전 김 의원이 재야생활을 접고 현실 정치에 투신할 때 따라서 정치에 투신했다. 그 무렵 도봉구로 이사 왔으니 지금은 거의 ‘원주민’이나 진배없다. 구청장직을 무난히 재임한 것은 이런 정치적 배경에 그의 친화력과 능력이 더해진 결과다.

“고 김근태 선배가 1996년 도봉갑구에서 제15대 국회의원에 출마를 준비할 때 캠프에 합류하면서 인연이 시작됐지요. 벌써 20년이 흘렀네요.”

지난달 24일 서울의 끝자락 도봉동의 ‘대전차 방호시설’에서 시작한 인터뷰는 김근태에 대한 추억으로 시작해 도봉구의 여러 현안으로 자연스레 옮아갔다. 대전차 방호시설은 남북 대결의 상징이다. 인권과 민주화, 통일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응축된 곳에서 이 구청장은 역사와 문화, 미래를 역설했다.

군사시설에서 문화벙커로 변신해

도봉구 북단에 있는 대전차 방호시설은 김신조 무장공비 사건이 난 뒤인 1969년, 북한군 탱크의 남진을 막을 목적으로 동서로 270m 길이로 만든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방호시설의 군사적 용도가 다하자 구조물을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군인 가족 등을 위한 시민아파트를 지었다. 그러나 안전 문제가 생겨 2004년에 아파트는 철거되었고, 방호시설은 지금까지 도시 미관을 해치는 천덕꾸러기로 남아 있었다. 이 시멘트 덩어리를 문화벙커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이 구청장이 냈지만, 서울시도 국방부도 먼저 나서지 않았다. “결국 시민이 나섰습니다. 구민들 중심의 ‘시민추진단’을 꾸리고, 서울시에 정책 제안을 했어요. 주민 의견을 모으기 위해 40여 차례 현장 설명회와 전문가 워크숍, 유사 시설 탐방, 설문조사를 벌였습니다.”


시민추진단은 국방부를 설득하는 한편, 더 많은 시민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위해 현장 음악회를 열고, 공간 설계에도 참여했다. 그 결과 탱크를 막는 이 콘크리트 덩어리(연면적 2155㎡)는 내년 4월 문화예술창작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방공호 5개 동에는 교육장과 체험장, 전시판매장, 공방, 다목적홀과 국방부의 요청으로 전망대도 들어설 예정이다. “유사시 군사시설을 평시에는 시민과 예술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지역의 기존 시설을 재활용하는 좋은 도시재생 사례입니다. 이 놀라운 변화를 기념하기 위해 독일에서 ‘베를린 장벽’도 기증받아 설치 할 겁니다. 새로운 명소로 탈바꿈한 모습을 저도 설레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구청장은 2010년 민선 5기 구청장으로 취임하면서 ‘착한 변화’를 구정의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다. 먼저 주민참여를 통한 행정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서울시 도봉구 주민참여 기본 조례’를 제정했다.

“지방자치는 중앙정부로부터 분권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주민참여 자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기본 조례 제정은 주민을 참여 행정의 동반자로 삼는다는 선언 같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주민이나 공무원이 다 같이 낯설어하고 힘들어했지만, 지금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왔습니다.”

동북권 문화·예술 중심지로 거듭나

다음으로 주목한 것은 지역의 정체성 확립이다. 도봉구를 비롯한 서울의 강북지역은 공통의 역사성을 가진 지역인데, 서울이 팽창하면서 행정 편의에 따라 지역이 나뉘면서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이 구청장은 강북구와 노원구가 갈라져나가고 남은 도봉구의 정체성 확립과 계승을 위해 김수영문학관, 간송 전형필 가옥 복원, 함석헌기념관, 둘리뮤지엄 등을 세워 도봉구의 역사 문화적 정체성을 회복하고, 구민의 자긍심도 북돋고 있다.

“문화 중심의 도시재생은 베드타운에 머물러 있는 지역 이미지를 벗기 위한 발전 전략입니다. 서울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대규모 실내 공연장인 ‘서울아레나’가 들어서면 이런 전략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입니다.”

 서울시는 민·관 공동개발로 창동 일대를 신경제중심지로 만들고, 상업지역 개발을 병행해 주변 지역으로 확산할 계획이다.

창동 신경제중심지 조성 사업은 총 3단계로 나누어 진행한다. 먼저 지역 이미지를 바꾸고 창업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 사업으로 ‘플랫폼창동61’을 전면에 배치했다. 플랫폼창동61은 창동역 앞에 컨테이너로 공간을 구성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벌써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서울시와 도봉구는 2019년까지 창업센터 건립과 문화예술공방 조성 등을 완료하는 한편, 기반시설 개선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2만 석 규모의 서울아레나 공연장이 지역에 가져다줄 활력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1000개의 사업체와 8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 각종 공연이나 이벤트를 통한 방문객을 도봉구뿐만 아니라 동북 4구에서 어떻게 지역 발전으로 연결할지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2021년 서울아레나가 문을 열고 이어서 KTX 복합환승센터 등이 들어서면 도봉구 지역은 문화예술 산업은 물론 경기북부 교통의 요충지로서 새로운 경제 거점 지역으로 재탄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도봉구는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의 ‘서울형 혁신교육지구’로 선정돼 마을교육공동체 조성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3월 도봉혁신교육지구사업 공모를 통해 96개 사업을 최종 선정하고, 마을학교를 통해 아이들이 마을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학교에 마을교사를 파견하여, 방과 후 교육이 아닌 정규수업 시간에 문화예술 전문가가 협력교사로 수업을 돕는다.

“성악가 선생님께 음악 수업을 받는 겁니다. 한 학교에서는 모든 학급이 스스로 뮤지컬을 만들어 공연하는 수준까지 발전했습니다. 이런 수업에서는 소외되는 아이들이 없어요.” 장기적으로 지속하면 교육을 중심으로 마을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다는 이 구청장의 설명이다.

창동역 1번 출구 앞에 위치한 ‘플랫폼창동61’은 컨테이너 61개로 구성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지난 4월 문을 열고 다채로운 공연을 펼쳐 주목을 받고 있다.
동북 4구, 경쟁이 아닌 협력으로 모여

이 구청장은 2012년 서울 동북지역인 도봉구, 노원구, 강북구, 성북구가 협력해 지역 여건을 개선하자는 ‘동북4구 발전협의회’ 구성을 주도했다. 지난 4월에는 구청 협의체인 ‘동북4구 행정협의회’도 발족했다. 서울시도 지역의 균형 발전을 위해 전담국을 신설해 동북 4구의 협력 노력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서울아레나 공연장 건립을 비롯해 이 지역의 다양한 사업들은 박원순 시장의 의지에 크게 힘입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추동한 것은 지역 여건을 개선하려는 동북 4구의 열망이기도 합니다.”

이 구청장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도봉구 주민들이 구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구청장의 가장 큰 소임”이라며 앞으로 그런 주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구청장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글 박용태 기자 gangto@hani.co.kr

사진 장수선 인턴기자 grimlik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