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사랑한다면 너무 꽉 쥐지 마세요

짜증이 심해진 아내 둔 40대 초반 남성 “다정하던 아내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요”

등록 : 2016-09-08 16:48
 
Q. 40대 초반의 남성입니다. 얼마 전부터 아내가 자주 짜증을 냅니다. 저보다 세 살 아래인 제 아내는 웹디자인 일을 하는 맞벌이 부부입니다. 예전에는 주말이나 쉬는 날이면 같이 영화와 드라마도 보고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했는데, 요즘에는 제발 혼자 있게 해달라고 합니다. 부부 동반 모임도 가기 싫다고 원하면 혼자 다녀오라고 합니다. 아내도 나름 힘든 일이 있겠지만, 저 역시 직장에서 어려운 일이 자주 생겨 넋두리라도 하려고 하면 “제발 징징거리지 마! 당신은 내 고충은 알기나 해?”라며 톡 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아니면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이전에는 다정하던 아내가 도대체 왜 그렇게 바뀌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A. 계절병이 왔군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폭염이 끝나고 찬바람이 불어 가을이 왔듯이, 마흔이란 낯선 숫자가 부인의 눈앞에 다가온 겁니다.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40대가 되면서 눈에 띄게 호르몬이 변화하고 신체 기능이 떨어진다고 전문의들은 말합니다. 호르몬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인체 현상이지만, 한 개인에게는 충격을 줍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하고 쾌활한 사람이라 해도 그렇습니다. 부인은 지금 마흔을 앓고 있는 겁니다.

40대의 결혼생활은 젊은 시절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젊은 시절은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결혼이란 매우 특이한 경험이니까요. 내 목숨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지요. 여기에 자녀가 생긴다면 한 차원 다른 감정을 체험하게 됩니다. 나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지키고 싶고 헌신할 대상이 생겼으니까요. 실로 위대한 체험입니다.

하지만 이제 두 사람을 둘러싼 환경이 달라졌습니다. 자녀 교육, 내 집 마련, 직장생활 등으로 하루하루가 피곤합니다. 여기에 여성들은 서서히 내 전성기가 지나가고 있다는,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낍니다. 사연을 보내신 분은 ‘아내가 내 마음을 몰라줘서 서운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아마도 부인 쪽에서는 ‘내 남편과 너무도 대화가 통하지 않아’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누군가와 함께하길 원하는 사회적 동물이면서 동시에 나만의 시간과 독립된 공간이 있어야 하는 매우 특이한 동물입니다. 누구보다 창의성이 필요한 직업군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필수입니다. 영어로 ‘Me Time'(내 시간, 나만의 힐링 시간)이라고 하는 그런 시간과 혼자만의 공간을 의미합니다. 젊었을 때는 그저 함께하는 시간만으로도 좋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 속의 ‘나’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으니까요.

배우자라고 해서 모든 것을 함께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함께하다 보면 본인도 모르게 잔소리가 늘고,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선의라 해도 상대방에 관해 모든 것을 알려고 해서도 곤란합니다.

사랑하는 대상에게도 프라이버시는 존중해 줘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온 편지를 먼저 뜯어 봐서는 안 됩니다. 프라이버시 침해는 상대방을 난처하게 만들 뿐 아니라 관계에 균열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전화, 문자, 카톡 같은 것을 몰래 들여다보는 행위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유대인들은 자녀를 포함해 배우자의 사생활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 가르침을 어기고 몰래 자녀들의 편지나 전자우편, 문자들을 들여다보다가 결국 자녀들의 분노를 일으키는 부모들이 미국 사회에서도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요즘 한국의 젊은 커플들 사이에서는 휴대전화와 전자우편, 카톡의 비밀번호들을 공유하는 것이 유행입니다. 처음에는 좋아서 시작한 것이고 사랑과 신뢰의 확인이라지만, 결국 이것이 나중에는 족쇄가 됩니다.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자칫 지배 욕구에서 비롯된 속박이 아닌지 우려될 때도 적지 않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소유물의 일종으로 보기에 벌어지는 현상이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과잉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부부 관계든 자녀 관계든 혹은 친구 관계든 비슷합니다. 지나치면 상대방이 금방 질리게 됩니다. 손에 모래를 꽉 쥐면 대부분의 모래가 손에서 빠져나가지만, 느슨하게 쥐면 훨씬 많이 남는다는 인생의 지혜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오래 함께하려면 상대방을 너무 압박하지 마세요. 가끔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안전거리 유지’라고 적힌 교통표지판은 사람 사이에도 적용되는 듯싶습니다. 그래야 사고 없이 오래갈 수 있으니까요.

“왜 그래, 갑자기?”

남편은 이렇게 묻고 있지만, 갑자기가 아닐 겁니다. 오랫동안 참고 참아왔다가 이제야 터져나온 것일 뿐입니다. 비등점 직전의 상황인 것이지요.

의사소통 전문가들은 말에 앞서 몸으로 이미 뭔가 메시지와 신호를 전달하고 있다고 합니다. 1대1 소통에서는 말보다 몸과 표정으로 전달하는 ‘비언어적 표현’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메라비언 법칙’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미 배우자는 오래전부터 그 비언어적 표현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단지 남편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감지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여자 나이 마흔, 우주가 흔들리는 나이입니다. 공연히 자꾸 돌아보게 되고, 먼 길을 떠나고 싶은 계절입니다. 성숙한 남녀 관계는 조금씩 자유롭게 해 주는 겁니다. 사랑한다면 너무 꽉 쥐지 마세요. 그리고 이제부터는 안전거리를 유지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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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손관승 세한대학교 교수·전 대표이사·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