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구 도봉1동 청소년 마을식당은 지역의 (예비)청소년들이 월요일마다 편하게 와서 먹고 놀 수 있는 공간이다. 마을교육활동가, 주민자치회 위원, 학부모회원 등이 코로나19 장기화로 집에 방치되는 아이들을 위해 지난해 7월 혁신교육지구 마을교육공동체 구축사업으로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말 사업 종료 뒤 후원, 봉사, 기부 등으로 식당 운영을 이어오고 있다. 향후 네트워크를 구성해 안정적 운영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1 지난 1일 54번째로 열린 청소년 마을식당에서 아이들이 갓 만든 떡볶이와 치즈감자고로케를 맛있게 먹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으로 시작한 뒤 봉사·후원 이어져 지속
네트워크 꾸려 안정적 운영 모색
“편하게 먹고 쉬는 청소년 공간 되길”
방학2동 청소년 마을식당 6월 개소
도봉구 도봉1동에 있는 초록카페는 매주 월요일 오후 3~6시 3시간 동안 특별한 공간으로 바뀐다. 지역 (예비)청소년 누구나 와서 갓 만든 음식을 맘껏 먹고 편하게 놀 수 있는 ‘청소년 마을식당’이다. 혁신교육지구 마을교육활동가, 학부모회원, 주민자치회 위원 등 10여 명이 손품, 발품을 팔아 1년째 운영해오고 있다.
청소년 마을식당은 처음엔 혁신교육지구의 마을교육공동체 구축사업의 하나로 시작했다. 사업 참여자들은 마을 돌봄을 최우선 과제로 정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사하고 논의한 결과, 코로나19장기화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진 가운데 방치되는 청소년들이 적잖았기 때문이다.
김영애 (사)마을함께뜰 대표가 마을 돌봄으로 청소년 마을식당 운영을 제안했다. 김대표가 주축이 되어 자원봉사로 참여하는 운영진과 실무팀을 꾸렸다. ‘오늘의 공동체’ 박민수 대표가 공동체 청년들이 운영하는 초록카페를 쉬는 날에 이용할 수 있도록 흔쾌히 내줘 공간을 마련했다.
청소년 마을식당을 운영하도록 월요일마다 공간을 내준 초록카페의 주방에서 봉사자들이 고로케를 만들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지난 1일은 청소년 마을식당이 54번째 열리는 날이었다. 30도가 넘는 푹푹 찌는 더위에도 카페 주방에선 치즈감자고로케와 떡볶이 50인분을 만드느라 실무팀원·봉사자 4명의 손길이 분주하다. 앞치마엔 ‘청마(청소년 마을식당) 일꾼’이라 적힌 반짝이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요리 담당 김미정씨는 “이전에 일식집을 했던 곳이라 주방 공간이 넉넉해 먹거리 준비에 안성맞춤”이라며 “동네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서 아이들에게 속 편한 음식을 해주려 한다”고 했다. 가스레인지 위에선 멸치, 파, 양파, 다시마 등 7가지 천연재료를 넣은 육수가 끓고 있고, 그 옆에서 김씨가 웍을 흔들며 센 불에 채소를 볶았다.
요리 담당 김미정씨가 50인분의 고로케를 튀겨내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정혜영씨와 정은수씨, 대학생 봉사자 한수아씨는 감자 30개를 삶고 햄, 당근, 삶은계란 등과 함께 잘게 부숴 치즈와 버무렸다. 타원형으로 모양을 만들어 계란 옷을 입히고 빵가루를 씌워 쟁반 위에 올렸다. 정혜영씨가 “여럿이 먹으니까 집에선 하지 않는 것도 직접 만들게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정은수씨는 “아이들이 많이 와서 맛있게 먹고 즐겁게 지내다 가는 모습을 보면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했다.
15석 규모의 카페 홀엔 두 팀 5명이 한참 전부터 와서 놀고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정난희양과 이예은양, 5학년 남승연양은 보드게임 ‘도블’을 즐기고 있었다. 지난해 여름부터 거의 매주 왔다는 이들은 “편하게 먹고 놀 수 있어 좋다”며 “매주 월요일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정양은 “음식에 대해 설명도 해주고 보드게임 하면 관심도 가져주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도 좋다”고 했다. 정양과 이양은 “중학생이 되어서도 올 수 있게 이곳이 오래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했다.
3시가 되자 마을식당을 찾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키 큰 중학생 팀들도 눈에 띈다. 김 대표와 홀 담당 실무팀 윤혜정씨와 이연추씨가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맞았다. 아이들은 입구에 있는 방명록에 이름과 연락처를 쓴 뒤 손 소독을 하고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아이들이 직접 적은 방명록.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멘토 역할을 하는 윤혜정씨가 테이블마다 다가가 사과주스를 한 팩씩 나눠주면서 “(오늘 메뉴는) 떡볶이와 치즈감자고로케인데 먹을래?” 하고 물었다.
김 대표는 “아이들이 환대와 존중, 배려를 받는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음식은 쟁반에 담아 서빙하고, 귀 기울여 얘기도 들어주며 충분히 놀 수 있게 해주려 한다”고 했다. “어떤 아이는 꼭 레스토랑에서 대접받는 느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도봉1동 청소년 마을식당을 찾은 아이들의 입소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홍보로 꾸준히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7월19일 첫날 13명으로 시작해 한 달 만에 50~60명이 됐고, 70명이 넘을 때도 있다. 김대표는 “방학이나 휴일일수록 이런 공간이 더 필요한 아이들이 있기에 지난해 하반기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 속에서도 월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운영해왔다”고 했다. 운영진과 실무팀은 ‘누구든 환영하고 공휴일에도 열며, 아이들이 최대한 휴대폰을 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등의 원칙을 만들어 꾸려왔다.
그사이 아이들의 달라진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처음엔 쭈뼛거리던 아이들이 이젠 혼자서도 거리낌 없이 와서 먹고 간다. 묻지 않아도 어떻게 지내는지 먼저 얘기하는 아이들도 늘었다. 표정도 밝아졌다. 윤씨는 “아이들은 맛나게 먹을 때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의 문도 잘 연다”며 “먹거리는 신체적, 정서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했다. 김 대표는 “방과후 수업에선 욕하고 싸우는 중학생을 자주 봤는데, 신기하게도 마을식당에는 한 명도 없다”며 “배불리 먹고 쉬면서 생긴 마음의 여유가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했다.
관심과 나눔의 손길을 건네는 주민들도 생겨났다. 동네 토박이이자 샌드위치 가게를 꾸리는 주민은 “아이들에게 큰 건 아니어도 가끔 피자라도 구워주고 싶다”며 따뜻한 피자를 직접 만들어 보냈다. 초중생 아이들을 홀로 키우며 한부모 지원을 받는 한 아버지는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며 음료수를 보냈다. 텃밭을 가꾸는 동네 주민은 수확한 고구마와 대파를 가져다줬다. 식당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명절음식을 한 보따리 후원하기도 했다.
재능 기부와 노력 봉사도 큰 힘이 되었다. 한 봉사단체 주민들은 주방 실무팀이 쉬는 날에 마을식당에 와서 짜장면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실무팀 손이 빌 때 연락하면 한달음에 달려와 설거지, 서빙, 청소 등을 기꺼이 해준 마을활동가와 주민들도 있다. 김대표는 “여러 분들이 봉사에 후원, 재능 기부 등으로 함께해줬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청소년 마을식당에서 체스를 두는 아이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애초 청소년 마을식당은 지난해 11월로 끝나는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이었다. 아이들의 반응이 좋아 중단할 수 없어 도봉구사회복지협의회, 사랑의열매, 개인 등의 후원으로 어렵게 식재료비를 마련하며 이어오고있다. 현재 청소년 마을식당이 당면한 과제는 식재료비 예산 마련이다. 식재료비는 한회 평균 20만원가량 든다.
김 대표는 “다행스럽게도 최근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데 청신호가 켜졌다”고 했다. 지난달 열린 1주년 행사를 통해 민관학 네트워크 구성에 진전이 있었다. 청소년 정책에 관심이 많은 오언석 도봉구청장은 이날 행사에 참석해 운영진과 청소년들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오 구청장은 “청소년들에게 안전하고 건전한 먹거리, 쉴거리, 놀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청소년 교육에서 중요한 부분”이라며 “도봉구는 청소년들이 지역에서 건강하고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도봉구 방학2동 청소년 마을식당이 지난 6월 문을 열었다. 마을교육 관련 기관 13곳이 뜻을 모아 2년 동안 준비해 추진위원회를 꾸려 운영한다. 지역 (예비)청소년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오후 4~7시 저녁 한 끼를 먹고 자유롭게 놀 수 있다. 사진은 청소년들이 마을식당 입간판 옆에서 식당 쿠폰을 보여주는 모습. 방학2동 청소년 마을식당 추진위원회 제공
한편 지난 6월 방학2동에서도 청소년 마을식당이 문을 열었다. 협동조합(방아골사람들)이 운영하는 주민 커뮤니티 공간(꿈빚는 마을 방아골) 1층을 청소년 공간으로 활용한다. 매주 수요일마다 오후 4~7시 저녁한 끼(단품식, 기본반찬, 제철과일 등)를 제공하고 다른 날엔 청소년 대상 열린 공간으로 운영한다. 여름방학엔 청소년 무더위 쉼터 역할도 한다.
방학2동 청소년 마을식당은 도담마을사회적협동조합과 방아골사람들 두 단체가 2년 전 지역기관에 처음 제안했다. 13개 기관이 협의하고 준비해 추진위원회를 꾸려 실무단과 팀(조리, 교육기획, 후원 및 네트워크)을 갖췄다. 실무총괄자인 전정훈 사무국장(도담마을사회적협동조합)은 “도봉구에서 취약계층이 가장 많은 동으로, 지역사회의 힘으로 아이들을 함께 돌보자는 공감대가 만들어져 추진한 게 의미 있다”며 “먹거리를 매개로 청소년과 일상적 관계를 맺고 마을돌봄을 실천하며 청소년이 중심이 되는 공간으로 운영해나가려 한다”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