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때 숨진 여중생 무덤 앞, ‘작은 들꽃’이 외쳤다

서울의 작은 박물관 ㉗ 강북구 수유동 4·19혁명기념관ㅣ강북구 우이동 근현대사기념관

등록 : 2023-04-13 16:01 수정 : 2023-04-13 17:25

크게 작게

국립 4·19민주묘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과 4·19혁명까지

식민과 독재에 저항한 사연들 모여서

‘노예 되어 사느니 자유민으로 죽으리’

그 외침 다시 우리 가슴마다 살아난다

해마다 4월이면 국립 4·19민주묘지를 찾는다. 멀리서 온 사람들도 만나고 산책 나온 동네 사람들도 본다. 사람들 얼굴이 맑고 밝다. 평온하고 여유로운 휴식이 가득하다. 묘역 한쪽 4·19혁명기념관에 들러 그날을 증언하는 사진과 기록, 전시품을 보는 것도 거르지 않는다. 올해는 근현대사기념관까지 돌아보기로 했다. 국립 4·19민주묘지와 근현대사기념관을 잇는 북한산 숲길에는 독립투사 애국지사 선열이 잠들어 있다. 그 숲길도 걸었다.



국립 4·19민주묘지 사월학생혁명기념탑.

국립 4·19민주묘지와 4·19혁명기념관

자유·민주·정의의 4·19혁명정신이 깃든 국립 4·19민주묘지, 이곳에 뿌리박고 하늘로 솟은 ‘사월학생혁명기념탑’ 앞에 섰다. 기념탑 광장 양쪽 옆 12편의 시가 새겨진 시의 벽은 4·19혁명 때 희생된 사람들의 혼과 넋을 기리고 있었다. 4·19혁명기념관으로 들어섰다. 4·19혁명으로 자유 민주의 새 세상을 함께 열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곳이다.

기념관에 전시된 글과 사진을 본다. 야당 부통령 후보 장면의 대구 유세 날이 1960년 2월28일 일요일이었지만 선거유세에 학생들이 몰리는 걸 막기 위해 갖은 수단을 써서 학생들을 학교에 나오게 했다. 학생들은 일어섰다. 2월28일 대구, 3월10일 수원, 3월14일 부산, 3월15일 마산의 학생들이 거리로 나섰다. 광주에서는 ‘민주주의 장례행진’을 진행했다.

자유당은 투표함 바꿔치기, 대리투표, 야당 참관인 축출 등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부정선거 규탄 시위 때 실종됐던 김주열 학생이 눈에 최루탄이 박혀 사망한 채 마산 중앙부두에서 발견된 건 4월11일이었다. 마산의 학생과 시민 1만여 명이 거리로 쏟아졌다. 시위는 매일 전국에서 계속됐다. 4월18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던 고려대 학생들이 정치깡패에게 습격당해 40여 명이 부상했다. 4월19일 서울 시내에 모인 학생과 시민이 10만 명이 넘었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총을 쐈다. 학교 친구를 잃은 수송초등학교 아이들은 부모 형제에게 총을 쏘지 말라며 거리로 나섰다. 어머니들은 자식들의 죽음을 무엇으로 갚을 것이냐며 소리 높여 외쳤다. 이날 전국에서 115명이 사망하고 727명이 다쳤다고 자료는 밝히고 있다.

계엄령 아래 대학교수 300여 명이 모여 시국선언문을 채택하고 국회의사당 앞으로 걸었다. 3·15부정선거 무효, 이승만 정권 퇴진, 발포 명령자와 하수인 처단, 학생들 신분 보장 구제안 명시 등을 외쳤다. 거리를 메운 시민들은 성난 파도 같았다.

당시를 기록한 신문 기사를 잘라 붙이고 그 옆에 자신의 마음을 적은 스크랩북을 기증한 사람은 스크랩북 표지에 ‘4월혁명의 기록, 아! 그날! -피로 찾은 삶의 서광-’이라고 적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그날 그 거리에 있었던 그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그 스크랩북 주변에 전시된 소총과 권총은 4·19혁명 당시 실제 사용됐던 것이라 한다. 총 옆에는 당시 발사된 총알 두 개가 놓여 있었다.

4월26일 오전 10시30분, 이승만 대통령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하야를 발표했다. 전시된 이승만 대통령의 사임서를 보고 밖으로 나왔다. 걸음이 향한 곳은 전시관에서 보았던 사연의 주인공이 묻힌 무덤이었다.

1960년 4월19일 한 여중생이 총탄에 맞아 숨졌다. 시위에 나서기 전 그는 유서를 남겼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그의 무덤 앞에 피어난 작은 들꽃을 오래보았다.


북한산 숲에 있는 김창숙 선생의 묘.

북한산 숲속의 독립투사 애국지사들

국립 4·19민주묘지와 근현대사기념관을 잇는 숲길에는 독립투사 애국지사가 잠들어 있다. 이 길은 북한산둘레길 중 순례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길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는 대한민국의 광복을 위해, 해방 뒤에는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생을 바친 사람들이 묻힌 북한산 숲은 하늘과 땅으로 열린 추모의 공간이자 그들의 뜻을 기리는 기념의 공간이기도 하다.

처음 만난 사람은 심산 김창숙 선생이었다.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였던 그는 을사늑약 반대와 을사5적 처형을 주장한 ‘청참오적소’를 올리고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만주 몽골 접경지역에 한인 동포 집단 거주지를 만들고 독립기지를 개척했다. 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광복 뒤에는 이승만 독재에 항거하고 부정선거 규탄에도 앞장섰다. 성균관대를 창립하고 초대학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의 무덤을 감싼 숲의 연둣빛 신록과 산벚꽃의 흰빛이 상서롭게 반짝였다.

일제강점기에 국권 회복을 위한 비밀결사 대동청년단을 조직하고 독립운동을 펼쳤던 서상일 선생은 광복 뒤 제헌국회 헌법기초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의 무덤가엔 붉은 진달래가 피어 있었다.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하고 임시정부 법무·재무총장을 지냈던 이시영 선생의 무덤으로 가는 길에서는, 광복군합동묘소 터가 먼저 반긴다. 일제에 선전포고했던 대한민국 광복군, 그들 중 17명이 함께 묻혀 있던 곳이다. 합동묘소는 지난해 8월 대전현충원으로 이장했다. 이시영 선생의 무덤 앞에 섰다. 광복 뒤 초대 부통령에 당선된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통치에 반대해 사직했다.

북한산 숲길에서 만난 마지막 이야기의 주인공은 신익희 선생이었다. 광복 이후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벌였으며, 초대 국회부의장에 이어 국회의장도 지냈다. 민주당을 만들고 대통령 후보에 출마하기도 했다. 한강 백사장 유세 때 40만 인파가 모이는 등 그를 지지하는 목소리에 이승만의 자유당은 긴장을 멈출 수 없었다. 5월5일 전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사인이 뇌일혈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처음부터 참여했으며 임시헌장의 기초를 세운 사람 중 한 명이었다. 1919년 3·1독립만세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근현대사기념관 전시실.

근현대사기념관

숲 밖으로 나와 근현대사기념관으로 들어섰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제목 아래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모든 영역에서 기회를 균등히 하고…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단기 4281년 7월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라는 내용의 글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제국주의 열강의 조선 침탈 역사로 기념관 전시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람은 하늘이고 백성은 국가의 근본이며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동학의 이념을 적은 글에 조금 전에 사람들을 맞이했던 글이 겹쳐진다.

명성황후 살해 이후 을사늑약, 정미7조약 등을 강제로 맺으면서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삼으려는 일제의 만행에 맞선 의병의 활약상과 애국계몽운동 이야기를 읽으며 북한산 숲에 묻힌 독립투사 애국지사들을 떠올렸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차라리 자유민으로 죽으리라.’ 의병들의 결연한 마음은 전시된 사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한 고종황제의 신임장 앞에서 걸음이 멈춰졌다.

재일조선인 유학생들이 선포한 2·8독립선언서, 3·1독립선언서,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하다’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헌장의 글귀, 일제의 갖은 수탈과 만행에 고통받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사진과 기록, 3·1 만세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 사진과 자료들이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증언하고 있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