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행렬의 대장관 “내일 정조 능행차 보러갈까?”

23~24일 정조대왕 능행차 ‘을묘원행’ 공동재현 행사

등록 : 2017-09-2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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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거리 59.2㎞ 4391명 시민 참여

23일 창경궁~시흥행궁 서울 행사

24일 수원, 화성 구간서도 열려

한강~노들섬 배다리 설치 눈길

2016년 노들섬 ‘배다리 시도식’

이달 23~24일 서울시와 수원시, 화성시가 함께 주최하는 ‘2017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행사가 열린다.

정조대왕 능행차는 1795년 창덕궁에서 융릉까지 이어진 8일간의 행차 ‘을묘원행’을 재현한다. 을묘원행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어머니 헌경왕후(혜경궁 홍씨)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에 참배하러 가기 위해 이룬 대규모 왕실 행렬로, 오가며 백성들의 형편을 살펴 억울함을 해결해주었던 정조의 애민 정신이 빛난 행차였다.


올해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행사는 총거리 59.2㎞에 4391여명이 참여한다. 서울 구간에만 참여 인원 1100명에 말 140여필이 동원된다. 정조대왕, 헌경왕후(혜경궁 홍씨), 군주(공주) 등 주요 배역은 지난 8월부터 원서 접수를 시작해 ‘대국민 오디션’을 벌여 시민들 가운데서 선발했다. 행렬단의 공식 길이는 약 800m지만, 지난해 경찰 집계에 따르면 서울 강북 구간 행렬단 길이만 총 1.5㎞나 되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관전 포인트는 ‘배다리’ 구간

서울 구간 행렬단은 종로구 창덕궁에서 길을 나서 중구, 용산구, 동작구, 영등포구, 구로구를 거쳐 금천구 시흥행궁까지 걷는다. 이에 맞춰 거점별 주요 프로그램도 공개됐다. 창덕궁, 서울역광장, 서울로 7017, 배다리, 노들섬, 경희궁, 노들나루공원, 시흥행궁에서 이틀간 차례로 시민참여 행사가 열린다.

특히 23일 오전 10시부터 서울역 광장에서 펼쳐질 검술 행사는 정조와 장용영 군사들이 왕의 위엄과 힘을 보이는 무대로, 화려한 군무를 시연할 예정이다.

2016년 강북 구간 행렬단

같은 시각 배다리 부근에서 시작하는 ‘배다리 시도식(새로 다리를 놓고 처음 건너는 의식)’도 볼거리다. 원형 고증에 따라 축조한 약 300m의 배다리가 축제 기간 동안 한강이촌지구에서 노들섬 사이를 임시로 연결하며, 1천여명의 행렬단과 말 100여필이 조선 시대 당시의 행렬을 그대로 구현한다. 을묘원행 때도 ‘임금님 얼굴 한번 보고 싶다’고 백성들이 몰려들었다는 지점이다. 정조대왕의 행차가 배다리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배다리 전령 퍼포먼스’가 끝나면 23일과 24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시민들이 직접 배다리를 건너볼 수도 있다. 노들섬에서는 대형 화선지에 직접 ‘능행차 반차도’를 그리는 조선 시대 화가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2016년 노들나루공원 행렬단

2017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행사는 23일 토요일 오전 8시30분~오후 6시 서울 구간에서 행사가 진행되고, 24일 일요일에는 오전 8시50분~오후 6시40분 수원 구간에서, 오전 11시~오후 4시 화성 구간에서 행사가 이어진다. 구간별 자세한 행사 안내는 공식 누리집(kingjeongjo-parade.kr)에서 볼 수 있다.

미리 만난 정조대왕·혜경궁 홍씨

지난주 금요일 오후, 종로구청 민방위훈련장에서 주요 시민배역들과 시민행렬단의 오리엔테이션이 열렸다. 창덕궁에서 첫발을 내딛는 강북 구간의 주요 배역들이 먼저 대사 연습을 시작했다. 입을 꾹 다물고 지켜보던 무대감독은 “기대보다 더 잘하셨다”며 비로소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올해 서울시에서는 정조대왕을 비롯한 혜경궁 홍씨, 군주 등 총 8명의 주요 배역을 ‘대국민 오디션’을 통해 시민들 중에서 선발했다. 지난 8월부터 시작한 오디션은 평균 8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9세부터 67세까지 다양한 사연을 가진 원서가 접수됐다. 운영사무국에서는 공정한 심사를 위해 블라인드 채점 방식을 선택했다.

대학교직원으로 일하던 중 공고를 보고 오디션을 봤다는 정종구(58)씨가 강북 구간 정조대왕으로 최종 확정됐다. 온화한 인상의 정씨는 “평소에도 사극과 악극, 정조의 시대에 관심이 깊었다. 그 시대를 재현하는 행사에 참여하게 된 것에 더 없이 행복하고 영광이다”라며 들뜬 소감을 말했다.

2016년 헌경왕후(혜경궁 홍씨) 재현 모습.

지하철 광고판에서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했다가 덜컥 혜경궁 홍씨로 낙점된 정영미(54)씨는 “혜경궁 홍씨의 화려한 겉모습 안에, 아픔과 한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남은 기간에도 그분에 대한 글을 더 찾아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겠다”며 배역에 대한 의지를 다잡았다. 군주 역의 한희지(21)씨는 대학교에서 강의를 듣다가 쉬는 시간에 합격 문자를 받고 환호성을 질렀다고 했다. 한씨는 “평소에 창덕궁에서 궁궐 길라잡이(해설사)로 자원봉사를 해왔을 만큼 우리 문화에 관심이 많다. 이번 기회가 경험의 폭을 더 넓혀주리라 기대한다”며 기뻐했다.

정조대왕 역의 정종구씨는 남은 일정 동안 3~4쪽 분량의 빽빽한 대사는 물론, 승마 훈련과 거리 동선 등을 익혀야 한다. 행차 도중 고을현감 역을 맡은 각 시장으로부터 시정보고를 받고, 위엄 있게 다스리기도 한다. 연습량이 부담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에 ‘영광’이라며 거듭 웃었다. 정씨는 “당시 정조대왕은 능행차를 통해 백성들과 가깝게 만나는 자리를 만들려고 하셨다. 그 소통과 공감의 의미까지 세계적으로 알려지면, 정조대왕 능행차 재현 행사도 다른 나라의 유명 축제 못지않게 훌륭한 축제로 자리 잡을 것 같다. 시민들도 주말에 집에서 나와 다 함께 행복해지는 기분을 느끼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사진 정조대왕 능행차 운영사무국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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