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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과 창경궁 야간개장은
예매 시작과 동시에 입장권 매진
가을밤 정취 맛보기에 안성맞춤
외국인에게도 인기 투어 코스
9월 셋째 주 금요일 밤에 경복궁을 찾은 시민들. 경복궁 야간 특별관람 행사는 지난 9월 30일 막을 내렸다. 경복궁 야간특별관람 입장권은 하루 4000장씩, 행사 2주 전부터 인터넷 예매로만 팔았는데 판매 몇 시간 만에 모두 매진되었다.
궁이 언제부터 이토록 ‘힙’한(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개성이 강한 것) 장소가 되었는가. 서울의 궁궐이 야간개방 때마다 시민들의 사랑을 온몸으로 받고 있다. 한복 입고 ‘인증샷’ 찍는 젊은이들과 가족나들이객이 줄을 잇는다. 지난 9월 막을 내린 경복궁과 창경궁 야간개방은 예매를 시작하자마자 입장권이 빠르게 매진되며, 때마다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를 차지하곤 했다.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맞은 덕수궁
덕수궁은 평일에도 밤 9시까지 문을 연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과 덕수궁관리소가 공동주최하는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빛·소리·풍경>전이 한창이다. 올해 대한제국 선포(1897년) 120주년을 맞아 9명의 예술가와 공간을 재해석했다. 전각마다 미술과 음악 분야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이 사진·드로잉·설치영상·사운드 등 현대미술작품을 설치해 소개한다. 석어당에서 상영하는 권민호 작가의 ‘시작점의 풍경’은 고종 황제 즉위 후 대한제국의 중심이 된 덕수궁 일대를 다뤘다. 도시를 그려나가는 연필 선이 덕수궁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한다. 덕홍전에 설치된 임수식 사진작가의 ‘책가도389’는 고종 황제의 책장을 보여준다. 이는 고종 황제의 집무실을 상상한 작가의 구상에서 시작했다. 모든 전각 앞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의 해설사들이 작품을 깊이 있게 설명한다. “저녁의 조명은 연필 자국을 새롭게 바꿔줘요.” 해설사들의 설명에 관람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부 권혜숙(56)씨는 평소에 아이들을 위한 문화해설사로 활동할 정도로 우리 유산에 관심이 많은데, 그중 덕수궁을 가장 많이 찾는다고 했다. 권씨는 “고종이 여기서 얼마나 절치부심하고 회한의 시간을 보내야 했을지 짐작하면 공간이 아프게 다가온다. 덕수궁에 오면 과거는 오늘의 뿌리이자 거울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지난 연휴 기간 가족들과 덕수궁을 찾았던 박진언(45)씨는 “서울에 살면서도 어릴 때 이후로 고궁에 올 일이 없었는데, 그사이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 같다. 방 안에서는 가상현실(VR)체험을 해보고, 마당에서는 팽이를 돌리고 제기를 찼다. 이렇게 전통놀이와 현대 기술을 동시에 체험하니 아이들이 재밌어했다. 좋은 추억을 만들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궁의 가을밤에 취하다 ‘창덕궁 달빛기행’ 해마다 11월 중순까지 진행하는 ‘창덕궁 달빛기행’ 프로그램도 꾸준히 인기다. 입장권이 1000~3000원 남짓인 다른 고궁과 달리 창덕궁 입장권은 3만원인데, ‘티켓값 한다’는 호평이 높다. 예매를 통해 일주일에 네번, 하루에 100명만 들어갈 수 있다. 참가자들은 스무명씩 다섯조로 나뉘어 창덕궁에서 주는 청사초롱을 들고 2~3시간가량 호젓한 궁궐을 걷는다. 지난 일요일, 외국인 관광객 스무명과 함께 창덕궁을 걸었다. 담장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대금과 가야금 연주자들이 손님을 맞았다. 때마다 여기저기서 숨죽인 탄성이 터져나왔다. 야간개장 때, 창덕궁은 다른 궁궐보다 조도가 낮은 편이다. 그러니 귀와 코와 살갗이 예민해졌다. 감나무 잎사귀의 부석거림과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10여년 가까이 창덕궁을 다니며 사계절 풍경을 담아온 사진가 배병우는 ‘여기 혼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창덕궁 달빛기행을 다녀왔다는 30대 인도 관광객 부부는 “아름다운 것을 보면 시간이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한국의 옛 왕족들과 사람들이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았다”고 감상을 전했다. 오로지 궁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 올해는 유독 여행객을 끌어안는 궁의 시도가 돋보였다. ‘무료 개방’ 혜택을 넘어 궁궐마다 특성을 활용한 다양한 야간 행사를 마련해 시민과 접점을 늘이고 있다. 친구와 창경궁 야간개방을 다녀왔다는 여승목(30)씨는 “저녁에 궁에서 열린 퓨전음악회의 음률이 한옥과 잘 어울렸다. 뉴욕 같은 대도시의 야경을 보면 고층건물이 멋지지 않던가. 고궁의 야경과 음악이 어우러진 경험이 그만큼 더 좋았다”며 궁에서 열린 행사를 높게 평가했다. 경복궁 야간개방 행사에 두번 이상 방문했다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대전에서 당일치기로 왔다는 박아무개(36)씨는 “올해는 꼭 여자친구와 다시 오고 싶었다. 예매 시작하는 날 회사에서 10초 안에 결제했다”며 웃었다.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덕수궁은 평일에도 밤 9시까지 문을 연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과 덕수궁관리소가 공동주최하는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빛·소리·풍경>전이 한창이다. 올해 대한제국 선포(1897년) 120주년을 맞아 9명의 예술가와 공간을 재해석했다. 전각마다 미술과 음악 분야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이 사진·드로잉·설치영상·사운드 등 현대미술작품을 설치해 소개한다. 석어당에서 상영하는 권민호 작가의 ‘시작점의 풍경’은 고종 황제 즉위 후 대한제국의 중심이 된 덕수궁 일대를 다뤘다. 도시를 그려나가는 연필 선이 덕수궁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한다. 덕홍전에 설치된 임수식 사진작가의 ‘책가도389’는 고종 황제의 책장을 보여준다. 이는 고종 황제의 집무실을 상상한 작가의 구상에서 시작했다. 모든 전각 앞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의 해설사들이 작품을 깊이 있게 설명한다. “저녁의 조명은 연필 자국을 새롭게 바꿔줘요.” 해설사들의 설명에 관람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부 권혜숙(56)씨는 평소에 아이들을 위한 문화해설사로 활동할 정도로 우리 유산에 관심이 많은데, 그중 덕수궁을 가장 많이 찾는다고 했다. 권씨는 “고종이 여기서 얼마나 절치부심하고 회한의 시간을 보내야 했을지 짐작하면 공간이 아프게 다가온다. 덕수궁에 오면 과거는 오늘의 뿌리이자 거울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지난 연휴 기간 가족들과 덕수궁을 찾았던 박진언(45)씨는 “서울에 살면서도 어릴 때 이후로 고궁에 올 일이 없었는데, 그사이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 같다. 방 안에서는 가상현실(VR)체험을 해보고, 마당에서는 팽이를 돌리고 제기를 찼다. 이렇게 전통놀이와 현대 기술을 동시에 체험하니 아이들이 재밌어했다. 좋은 추억을 만들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궁의 가을밤에 취하다 ‘창덕궁 달빛기행’ 해마다 11월 중순까지 진행하는 ‘창덕궁 달빛기행’ 프로그램도 꾸준히 인기다. 입장권이 1000~3000원 남짓인 다른 고궁과 달리 창덕궁 입장권은 3만원인데, ‘티켓값 한다’는 호평이 높다. 예매를 통해 일주일에 네번, 하루에 100명만 들어갈 수 있다. 참가자들은 스무명씩 다섯조로 나뉘어 창덕궁에서 주는 청사초롱을 들고 2~3시간가량 호젓한 궁궐을 걷는다. 지난 일요일, 외국인 관광객 스무명과 함께 창덕궁을 걸었다. 담장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대금과 가야금 연주자들이 손님을 맞았다. 때마다 여기저기서 숨죽인 탄성이 터져나왔다. 야간개장 때, 창덕궁은 다른 궁궐보다 조도가 낮은 편이다. 그러니 귀와 코와 살갗이 예민해졌다. 감나무 잎사귀의 부석거림과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10여년 가까이 창덕궁을 다니며 사계절 풍경을 담아온 사진가 배병우는 ‘여기 혼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창덕궁 달빛기행을 다녀왔다는 30대 인도 관광객 부부는 “아름다운 것을 보면 시간이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한국의 옛 왕족들과 사람들이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았다”고 감상을 전했다. 오로지 궁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 올해는 유독 여행객을 끌어안는 궁의 시도가 돋보였다. ‘무료 개방’ 혜택을 넘어 궁궐마다 특성을 활용한 다양한 야간 행사를 마련해 시민과 접점을 늘이고 있다. 친구와 창경궁 야간개방을 다녀왔다는 여승목(30)씨는 “저녁에 궁에서 열린 퓨전음악회의 음률이 한옥과 잘 어울렸다. 뉴욕 같은 대도시의 야경을 보면 고층건물이 멋지지 않던가. 고궁의 야경과 음악이 어우러진 경험이 그만큼 더 좋았다”며 궁에서 열린 행사를 높게 평가했다. 경복궁 야간개방 행사에 두번 이상 방문했다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대전에서 당일치기로 왔다는 박아무개(36)씨는 “올해는 꼭 여자친구와 다시 오고 싶었다. 예매 시작하는 날 회사에서 10초 안에 결제했다”며 웃었다.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