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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디자인 대가 “금천구 재활용 정거장 큰 감명”

금천구, 이탈리아 사회혁신디자인 석학 에치오 만치니 초청 골목 대담

등록 : 2016-10-27 15:35 수정 : 2016-10-2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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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동의 좁은 골목에서 다시 아이들이 뛰어놀고 이웃끼리 보살피는 미래를 시작한다. 윤기윤 할아버지가 에치오 만치니 교수(사진 가운데)를 비롯한 하승창 서울시 정무부시장(사진 맨 왼쪽) 등 골목동행에 참여한 이들에게 ‘재활용 정거장’을 설명하고 있다.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지난 17일 금천구 독산동의 좁은 골목. 여든을 넘긴 윤기윤 할아버지는 이탈리아에서 온 노신사에게 서툰 영어로 재활용 정거장을 소개했다. “페이퍼, 플라스틱, 비니루.”

윤 할아버지는 이곳 재활용 정거장을 관리하는 ‘도시 광부’다. 단독주택이 많은 독산4동에서는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골목 50곳에 재활용 정거장을 두고 ‘도시 광부’라 하는 자원관리사들이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윤 할아버지의 설명을 흥미롭게 듣던 노신사는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 분야의 세계적 석학 에치오 만치니 명예교수(밀라노 공대)다. ‘미래혁신포럼’에 참석차 방한한 만치니 교수는 다양한 골목 혁신사업이 펼쳐지고 있는 독산4동을 찾았다.

“골목길 차량통행 속도 10㎞로 제한” 제안

좁은 골목을 거닐며 ‘재활용 정거장’ ‘행복주차 골목’ ‘뜬구름다방’ 등을 살펴본 만치니 교수는 소망상상 어린이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 아이들로 북적이던 공원에는 해외 석학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마을주민들이 자리를 채웠다. ‘골목에서 미래를 열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만치니 교수와의 대담에는 하승창 서울시 정무부시장, 차성수 금천구청장이 함께했다.

사회혁신디자인 분야의 대가는 서울 골목길의 변화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을까. 만치니 교수는 가장 인상 깊은 프로젝트로 ‘재활용 정거장’을 꼽았다. “이탈리아에도 재활용 쓰레기를 처리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는데,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는 장소에서 사람이 도와주는 방식은 이곳에서 처음 봤다. 도시 광부들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

반면 이제 막 실험을 시작한 ‘행복주차 골목 만들기’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비교적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행복주차 골목 만들기’는 주택가의 골칫거리인 주차 문제를 공동체를 통해 해결하려는 실험으로, 지난 8월 말 서울시 리빙랩 사회혁신 프로젝트로 선정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행복주차주민위원회 정상민 씨는 “그동안 주민들이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했던 거주자우선주차구역을 공유의 공간으로 바꿔보려 한다. 골목 내 주차 문제가 해결되면 아이들도 골목에서 안전하게 놀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만치니 교수는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고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골목길에 차량 통행 자체를 금지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좀 더 적극적인 혁신안을 제시했다. 그는 “주민을 설득하는 것보다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사회혁신에서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골목 밖에 별도의 주차 공간을 마련해주거나, 골목길 통행속도를 10㎞ 수준으로 제한하면 통행 차량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치니 교수의 제안에 골목길 차량 통행에 관한 다양한 의견들이 오갔다. 차성수 금천구청장은 “골목은 주차뿐 아니라 통행로 역할도 하고 있어서 아예 차 없는 공간으로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다만 유럽처럼 골목에 거주민의 주차는 허용하되 차량 통행을 제한하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승창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재활용 정거장’이나 ‘행복주차 골목’ 등은 매우 흥미로운 실험이다. 더구나 이를 주민 스스로 기획하고 운영한다는 점에서 이들 실험이 끝나면 동네에 어떤 변화들이 올지 기대된다”며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높이 샀다.


서울시 사회혁신 수준 높이 사

만치니 교수 역시 “세계 곳곳에서 사회혁신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지만 잘되고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서울시의 사회혁신 수준은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앞으로 다른 도시를 가게 된다면 서울의 사례를 많이 들 것 같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혁신들이 잘 유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마음껏 놀 수 있는 놀이터가 필요해요.” 대담이 끝날 무렵 객석에 앉아 있던 유고은(독산초 1) 어린이가 자신의 바람을 수줍게 전했다. 백발에 흰 수염, 산타클로스를 닮은 에치오 만치니 교수는 “미 투”(나도 그래)라고 공감하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간은 나이 든 어른들도 좋아하기 마련”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윤지혜 기자 wisdom@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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