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해방촌 신흥시장엔 젠트리피케이션 없다”

소유주·임차인, 6년간 임차인 권리 인정 합의…물가상승분만 반영키로

등록 : 2016-11-24 14:46 수정 : 2016-11-2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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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 해방촌 신흥시장의 상생협약에 힘을 모은 시장 안 가죽공방 대표 박기동, 주민협의체 대표 손행조, 임대 상인 이충경, 용산구 도시계획과 주무관 김지훈(왼쪽부터)씨가 21일 밤 시장에서 그동안의 진행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용산구 해방촌 신흥시장 임차인들은 앞으로 6년 동안은 급격한 임대료 인상 걱정 없이 지낼 수 있게 됐다. 신흥시장 내 건물·토지 소유주 44명과 임차인 46명 전원이 만장일치로 임차인의 권리를 6년간 인정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저녁 7시 용산2가동 주민센터에 모인 80여 명의 주민 앞에서 소유주 대표와 임차인 대표, 서울시와 용산구 관계자가 ‘신흥시장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상생협약’ 체결식까지 마쳤다.

임대차보호법보다 강화된 신흥시장 상생협약

합의 내용의 핵심은 현재 임대차 계약일로부터 6년간 임차인의 권리를 인정하고, 임대료 인상도 물가상승분 안에서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정한 임차권리 보장 기간 5년, 4억원 이하 보증금 인상률 최대 9%보다 임차인 보호가 한층 강화된 수준이다. 물가상승분을 반영해 임대료를 올리지만, 치솟고 있는 주변 시세를 고려한다면 사실상 동결에 가깝다.

해방촌도시재생센터에 파견 근무하고 있는 김지훈 용산구 도시계획과 주무관은 신흥시장이 상생협약 대상지가 된 까닭을 이렇게 설명한다. “신흥시장은 해방촌의 가장 중심가인 ‘해방촌 오거리’에 인접해 있습니다. ‘해방촌 도시재생’ 사업의 변화와 혜택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이지요. 신흥시장의 변화는 주민들이 더 적극적으로 도시재생에 나서게 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김 주무관은 신흥시장의 협약 체결이 내년에는 ‘HBC 거리’(외국인들이 ‘해방촌’ 발음이 어려워 그 이니셜을 따 이르기 시작한 데서 유래함)에서 두 번째 상생협약을 추진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를 비추기도 했다.

해방촌은 남산 아래 자리한 용산2가동 일대를 말한다. 한국전쟁 이후 실향민들이 모여 살면서 이루어진 마을이다. 해방촌은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1960~1970년대 일명 ‘요꼬’라 했던 니트산업이 크게 번성했던 곳이다. 1990년대부터 중국산 저가 제품에 밀려 지역의 핵심 산업이던 니트산업이 몰락하면서 신흥시장도 함께 쇠퇴했다.

“사람들이 시장을 찾지 않으니 장사가 안되고, 세를 얻는 사람도 줄었지. 그래서 점포를 살림집으로 만들어 세를 주는 경우도 많아요. 시장이 다시 번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모두 같지.” 신흥시장 점포 소유주 모임인 상인회 대표를 10년째 맡고 있는 박일영(74)씨는 44명의 이번 합의가 무엇보다 시장이 다시 번성하기를 소유주 모두가 바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상생협약 보완 대책? 점포 소유주들이 신흥시장의 번성과 몰락을 모두 경험한 터라, 당장 큰돈보다 시장이 활성화되고 오래가기를 바라니까 문제없을 거야”라며 “우리가 뭉치면 뭐든지 한다”는 결속력 강한 상인회가 버티는 한 상생협약이 유지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강한 결속력이 해방촌 도시재생의 힘


해방촌에는 신흥시장 상인회뿐 아니라 두 달 전 문을 연 토박이모임, 향우회 등 50여 개가 넘는 친목 단체가 있다. 박씨에 따르면 시장 내 횟집 등 식당이 잘되는 이유도 이들 단체가 자주 찾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씨는 “내년 3월 열릴 상인회 총회부터 소유주뿐 아니라 임차인까지 상인회와 함께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며 시장 발전을 위하는 길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해방촌 일대는 최근 뜨는 동네다. 젊은 예술가와 상인들이 모여 해방촌 문화와 접목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촌에서 가죽공방 ‘크래프츠’를 열고 있는 박기동(30)씨는 “상생협약이 법적 구속력은 없다고는 하지만, 결속력이 강한 지역의 모임이 큰 버팀목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젊은 예술가들과 상인들을 모아 어르신들처럼 활발한 활동을 하는 모임을 만들고 싶다”며 해방촌만의 독특한 브랜드를 만드는 데 젊은 세대 역시 힘을 모아주기를 기대했다.

주민 김형철(57)씨는 “시장이 번성했을 땐 명목급여가 250만원이 넘는 일자리가 넘쳤다. 젊은 친구들이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 예전처럼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겼으면 한다”며 상생협약이 가져올 변화를 기대했다.

손행조 해방촌도시재생 2기 주민협의체대표는 “해방촌은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마을이다. 상생협약이 주민들의 역량을 모아 신흥시장을 다시 활성화시키고, 성공적인 해방촌 도시재생 사업의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며 지역사회 역시 상생협약에 힘을 보탤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신흥시장 환경개선 사업은 올해 연말부터 시작된다. 자세한 내용은 해방촌도시재생센터(02-2199-7397)로 문의하면 된다.

김정엽 기자 pkjy@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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