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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나이 74살, ‘영등포 늘푸름학교’ 제1회 졸업식

등록 : 2016-12-29 15:46 수정 : 2016-12-29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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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장 곳곳에 걸려 있는 어르신들의 시에는 배움의 기쁨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영등포구청 제공

21일 오전 영등포구청 제2평생학습센터에서는 특별한 졸업식이 열렸다. 평균 나이 74살, 35명의 만학도가 평생의 한이었던 초등학교 졸업장을 품에 안았다. 모두 ‘영등포 늘푸름학교’가 배출한 1회 졸업생들이다.

영등포 늘푸름학교는 배움의 때를 놓친 어르신들이 검정고시를 치지 않고도 초등학교 5~6학년 수준의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초등학교 학력을 인정받도록 한 성인문해 교육기관이다. 영등포구는 지난해 서울 자치구 중 최초로 서울시교육청의 승인을 얻어 올 2월, 초등학교 문해교육 프로그램 운영기관으로 늘푸름학교의 문을 열었다.

늦게 시작한 공부에 재미를 붙인 늦깎이 학생들은 주 3일, 3시간씩 수업을 들으며 글자 깨우치기를 넘어 이제 자신의 마음을 시로도 옮길 수 있게 되었다.

‘벚꽃나무 꽃 피고 지는데 내 마음에 맺힌 공부하고 싶은 마음 피우지 못했네/ 늘그막에 공부 배우니 세상이 환해지고 내 마음에 맺힌 꽃이 피네’ ‘글을 몰랐을 때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친구야 눈에 뭐가 들어가서 글씨가 안 보여 노래 좀 찾아달라고 했다/지금은 공부를 하고 보니 자신이 있어서 두렵지가 않다’ 이날 졸업식장 곳곳에 걸려 있는 어르신들의 시에는 배움의 기쁨이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늘푸름학교 초대 교장인 조길형 영등포구청장은 “늦게나마 배운 글로 손자에게 한글 공부를 시킨다는 어르신의 손편지를 받고 감동했다. 졸업이 어르신들 학업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되길 바란다”며 졸업생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예순이 넘어 받은 졸업장에 감회가 새로운지 어르신들은 자신의 졸업장을 연신 손으로 쓰다듬으며 읽고 또 읽었다.

이문선(68) 할머니는 “남들은 인생을 정리할 나이에 초등학생이 되었다. 평생 졸업식의 주인공이 되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데 너무나 행복한 1년이었다”며 졸업 소감을 전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정규교육을 포기했던 임태기(69) 할아버지도 “어린 시절 친구들이 졸업장을 받은 날에 펑펑 울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수십 년 가슴에 맺힌 한을 푼 오늘이 생애 제일 행복한 날”이라며 환히 웃었다.

졸업식을 지켜보던 임효순(55)씨는 “그동안 자식들 뒷바라지만 해온 엄마가 여든 넘어 본인이 원하던 공부를 해낸 것을 보니 눈물이 날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1년간 늦깎이 학생들을 지도해온 이미애(55) 선생님은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쉽지 않았을 텐데, 정말 열심히 다녔다.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35명 전원이 졸업하게 되었고, 개근만 해도 35명 중 10명에 이른다”며 흐뭇해했다. “성인문해 교실은 단순히 글자를 깨우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학생 중에는 홀몸노인들이 많았는데, 노인우울증이나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졸업장을 받은 어르신 35명은 초등학교 심화 과정과 중학교 과정으로 나눠 학업을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영등포구 교육지원과 이선희 주무관은 “올해 5~6학년 과정을 지도했던 늘푸름학교는 1~4학년 과정을 추가해 내년 1월부터 수강생을 모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지혜 기자 wisdom@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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