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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 5대 종지기 신철민 주무관이 보신각종을 껴안고 울림을 확인한 23일 오전, 종님이라고 부를 만큼 귀하게 대하는 종 옆에 서 있다.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종로구 관철동 보신각. 오전 열 시면 한 사람이 누각에 오른다. 두 손 모아 인사를 올린 뒤,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하게 종을 울린다. 두 번, 세 번…. 그는 종을 껴안고 가만히 울림을 듣는다.
5대 보신각 종지기 신철민(43) 서울시 역사문화재과 주무관의 아침 일과다. “좋은 울림은 제 몸을 기분 좋게 만들어요. 나쁜 울림은 바늘처럼 따끔따끔하고요. 종소리를 몸으로 들으란 말씀은 제 스승이 남긴 유언이자 당부입니다.”
신 주무관은 보신각종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추위에 언 종을 해동시켜 소리를 받는 것은 서울의 종지기들이 지난 180여 년 동안 대물림해온 일이다.
보신각 타종행사 기획하다 종지기와 인연
지난 23일 보신각에서 신 주무관을 만났다. 그의 스승이었던 4대 보신각 종지기 조진호씨가 병환으로 숨진 날로부터 꼭 10년 된 날이었다. 신 주무관은 다니던 회사에서 ‘보신각 상설 타종 행사’를 기획하다가 조진호씨와 연이 닿았다고 했다.
“스승님은 당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시는 듯했어요. 저를 지켜보시다가 종지기가 되면 어떻겠느냐 권하셨어요. 44년간 종지기로 일했지만 후계자가 없어 걱정하셨던 거예요.”
6개월 동안 혹독한 견습 과정을 거친 서른셋의 청년은 이제 마흔셋의 중년이 되었다. 신 주무관은 스승의 유해를 보신각 주변에 뿌렸다며 싸락눈이 내리는 정원을 가리켰다.
옛 서울은 보신각 종소리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던 도시였다. 보신각 옆 두 평 공간에서 먹고 잤던 종지기들은 전쟁이 나도 피난을 못 가고 종을 지켰다. 종로2가 102번지. 종지기가 자식을 낳으면 거기서 다시 종지기가 되었다. 조씨 집안에서 4대를 이어왔는데 5대에게 물려줄 시점에 사람이 없었다. 조진호씨의 아들은 사업으로 대를 잇기 어려웠고, 손자는 어렸다. 신 주무관은 스승과 손자 사이에서 다리 구실을 하고자 했다. 일 년에 한 번 치는 종인데 왜 관리가 필요하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그때마다 신 주무관은 ‘제야의 종 행사는 보신각 일상의 연장일 뿐’이라 답한다. 종지기의 사계절은 바쁘다.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0호’인 보신각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일은 종지기의 당연한 일상이다. 그 밖에 3·1절, 광복절, 제야의 종, 개천절, 어린이날, 수능 100일 전 합격 기원 행사 등 여섯 번의 공식 타종 행사와 월요일을 제외한 정오마다 상설 타종 행사를 한다. 보신각을 관리하는 일도 종지기의 몫이다. 현판과 처마의 단청에 쌓이는 새들의 배설물 닦기, 마룻바닥에 기름칠하기, 전기 시설물 점검, 보안과 경비, 유실수 관리 등은 손은 가는데 티는 나지 않는 일이다. 취객을 막느라 금요일마다 밤도 샌다. 동틀 녘까지 감시카메라를 보고 있다가 적외선 감지기에 불청객이 포착되면, 호루라기를 불며 뛰쳐나가기를 10년째 하고 있다. 종지기 뿌리를 찾아 기록하고 자료 수집 신 주무관이 부임해 마련한 ‘상설 타종 행사’는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10년 동안 내외국인 통틀어 약 2만2120명이 보신각종을 쳤다. 보신각을 일부러 찾아 구경한 관광객은 올해만 10만5900명에 이른다. 닫혔던 누각을 열고 시민과 관광객을 맞는 일은 신 주무관의 보람이다. 1985년 국민 성금을 모아 만든 지금 종의 정식 이름은 ‘보신각 새 종’이다. 1965년 보물 2호로 지정된 기존의 종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신 주무관은 보신각종을 ‘종님’이라 한다. ‘주무관’보다 ‘종지기’라는 비공식 직함을 더 아낀다. 국민의 뜻이 서려 있는 종을 허투루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문화재 사랑과 실천’을 주제로 청소년을 위한 보신각 체험 교육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종지기의 뿌리’를 찾아 기록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일도 시작했다. 이 업이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새해로 넘어가는 오는 31일 자정에도 신 주무관이 종망치의 끝을 잡는다. 33번 타종하면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온몸이 푹 젖는다 했다. 종지기의 새해 소망을 물었다. “첫날부터 한결같아요. 대한민국이 좀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를, 그리고 6대 종지기에게 이 업을 잘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옛 서울은 보신각 종소리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던 도시였다. 보신각 옆 두 평 공간에서 먹고 잤던 종지기들은 전쟁이 나도 피난을 못 가고 종을 지켰다. 종로2가 102번지. 종지기가 자식을 낳으면 거기서 다시 종지기가 되었다. 조씨 집안에서 4대를 이어왔는데 5대에게 물려줄 시점에 사람이 없었다. 조진호씨의 아들은 사업으로 대를 잇기 어려웠고, 손자는 어렸다. 신 주무관은 스승과 손자 사이에서 다리 구실을 하고자 했다. 일 년에 한 번 치는 종인데 왜 관리가 필요하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그때마다 신 주무관은 ‘제야의 종 행사는 보신각 일상의 연장일 뿐’이라 답한다. 종지기의 사계절은 바쁘다.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0호’인 보신각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일은 종지기의 당연한 일상이다. 그 밖에 3·1절, 광복절, 제야의 종, 개천절, 어린이날, 수능 100일 전 합격 기원 행사 등 여섯 번의 공식 타종 행사와 월요일을 제외한 정오마다 상설 타종 행사를 한다. 보신각을 관리하는 일도 종지기의 몫이다. 현판과 처마의 단청에 쌓이는 새들의 배설물 닦기, 마룻바닥에 기름칠하기, 전기 시설물 점검, 보안과 경비, 유실수 관리 등은 손은 가는데 티는 나지 않는 일이다. 취객을 막느라 금요일마다 밤도 샌다. 동틀 녘까지 감시카메라를 보고 있다가 적외선 감지기에 불청객이 포착되면, 호루라기를 불며 뛰쳐나가기를 10년째 하고 있다. 종지기 뿌리를 찾아 기록하고 자료 수집 신 주무관이 부임해 마련한 ‘상설 타종 행사’는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10년 동안 내외국인 통틀어 약 2만2120명이 보신각종을 쳤다. 보신각을 일부러 찾아 구경한 관광객은 올해만 10만5900명에 이른다. 닫혔던 누각을 열고 시민과 관광객을 맞는 일은 신 주무관의 보람이다. 1985년 국민 성금을 모아 만든 지금 종의 정식 이름은 ‘보신각 새 종’이다. 1965년 보물 2호로 지정된 기존의 종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신 주무관은 보신각종을 ‘종님’이라 한다. ‘주무관’보다 ‘종지기’라는 비공식 직함을 더 아낀다. 국민의 뜻이 서려 있는 종을 허투루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문화재 사랑과 실천’을 주제로 청소년을 위한 보신각 체험 교육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종지기의 뿌리’를 찾아 기록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일도 시작했다. 이 업이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새해로 넘어가는 오는 31일 자정에도 신 주무관이 종망치의 끝을 잡는다. 33번 타종하면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온몸이 푹 젖는다 했다. 종지기의 새해 소망을 물었다. “첫날부터 한결같아요. 대한민국이 좀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를, 그리고 6대 종지기에게 이 업을 잘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