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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동에 ‘행복 반딧불이’가 살아요

반딧불센터 아파트 관리사무소 역할, 택배 받고 공구 대여, 동네 사랑방 몫

등록 : 2017-01-06 11:39 수정 : 2017-01-0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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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 방배반딧불센터는 주택가 주민들에게 공동육아방과 무인택배함, 공구은행, 커뮤니티 공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주택도 생각보다 살기 편해요. 반딧불센터 생기고 나서부터요.” 서초구 방배3동 주민 김가영(37)씨는 처음 주택가로 이사와 불편함이 많았다고 했다. “맞벌이다 보니 낮에는 사람이 없어 택배를 현관문 앞에 두고 가요. 가끔 누군가 말없이 집어가 속상하기도 했어요. 이제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요. 공구은행에서 드릴도 빌려봤는데, 간단한 집수리는 뚝딱 하겠더라고요.” 김씨의 하루가 한층 더 편해진 데에는 ‘반딧불센터’의 힘이 크다.

무인택배함을 이용하는 지역주민.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김씨가 사는 방배동 주택가는 지하철 2호선 방배역에서 구름다리를 건너고 언덕배기를 올라야 다다를 수 있다. 촘촘하고 비좁은 골목이 일반주택과 빌라 사이로 길을 연결하고 있어 초행길이라면 여기저기를 헤매기 십상이다.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이면 걸음을 재촉하게 되던 이 전형적인 주택가를 반딧불센터가 바꿔놓았다.

서초구가 만든 반딧불센터는 순찰, 택배, 집수리, 공동 공간 등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담당한다. 아파트 거주민들이 누리는 편리함을 주택가에 사는 주민들에게도 제공하는, 주택가 관리사무소인 셈이다.

지난달 28일, 6시가 가까워 어두워진 시간에도 반딧불센터 공동육아방은 아이들로 시끌벅적했다. 공동육아방에는 2000권이 넘는 동화책과 인형의 집, 로봇, 공룡 인형 같은 장난감으로 가득했다. “어린이집이 방학이에요. 이 동네에는 도서관도, 키즈카페도 없어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늘 고민이었어요. 이제는 동네에 이런 공간이 있어서 너무 좋아요.” 5살 아들 지원이와 놀며 남창식(46), 전미경(43) 부부의 표정에는 만족감이 가득했다.

방배반딧불센터는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지하 1층은 커뮤니티 공간, 1층은 경로당, 2층은 공구은행과 공동육아 공간을 두고 있다. 센터 문 오른편 벽에는 무인택배함이 자리 잡고 연중무휴로 서비스한다. 주변을 지키는 감시카메라(CCTV)도 실내에 3개, 실외에 1개를 설치했다.

커뮤니티 공간은 지하지만 널찍하고 깨끗해 주민들이 자주 이용한다. 반상회는 물론이고 동네 어린이집 체험 활동 장소로도 인기다. 센터 자체 프로그램이 진행되기도 하고 동네 아이들을 위한 멘토링 활동 등 공적인 활동이라면 주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센터가 문을 연 뒤 동네 안전도 한층 강화됐다. 자율방범대가 야간 순찰을 하는 거점 공간인데다가 24시간 가동되는 감시카메라(CCTV), 서울시 안심귀가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서초구는 현재 총 4개의 반딧불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2015년 3월 방배3동 국민주택단지를 첫 시범 사업지로 선정해 방배반딧불센터 1호를 열었고, 같은 해 8월 양재2동에 양재반딧불센터, 12월 반포1동에 반포반딧불센터, 지난해 10월에는 방배4동반딧불센터를 열었다.


자원봉사자가 공구은행의 공구를 꺼내 주민에게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센터 시설이나 크기 등은 조금 차이가 있지만 반딧불센터 4곳 모두 주민이 스스로 운영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처음에는 건물만 딱 지어놓고 우리한테 운영하라고 하니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옥상에 텃밭 만들고 프로그램 기획하고 장난감 소독하고…. 우리한테 필요한 걸 우리가 찾아서 한다는 게 얼마나 신나는지 몰라요.” 방배반딧불센터장을 맡고 있는 강영미(60)씨는 센터에서 7분 거리에 사는 방배3동 주민이다. 총 18명의 주민들이 하루 4시간씩 교대로 봉사하며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도로가 파였다, 반상회 하자, 택배 맡아달라. 이러면서 동네 사람들이 반딧불센터로 모이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센터 운영에 참여하겠다는 주민들도 늘어서 봉사활동도 대기까지 받고 있지요.”

서초구는 반딧불센터 운영을 주민에게 맡겨두고 있다. 동네의 불편함은 동네에 살고 있는 주민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다만, 주민들의 자치력을 키우는 데까지 필요한 인큐베이팅에는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반딧불센터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장점을 본따 주택가에 적용함으로써 주택가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어려움을 해소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반딧불센터가 생긴 뒤로 아파트 못지않게 편리하다는 방배3동 주민들이 늘고 있다.

해가 유난히 짧았던 지난해 마지막 날, 오후 5시가 돼 골목에 땅거미가 내려앉자 서초동 반딧불센터 간판에 환하게 불이 켜졌다.

지난달 28일에 반딧불센터 커뮤니티 공간에서 주민들이 동네 아이들을 위한 멘토링을 하고 있다.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정고운 기자 nimok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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