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홀로 사는 80대 할머니, 안방 공연에 "꿈만 같다"

등록 : 2017-01-1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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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우면동 주공아파트에 홀로 사는 이아무개(81) 어르신 앞에서 전통 북 공연을 하는 아리모 봉사단 학생 단원들. 이날 봉사단은 총 12가구에서 한 사람을 위한 공연을 펼쳤다.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

지난 6일 서초구 우면동 주공아파트의 한 안방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퍼졌다. 영구임대아파트에서 홀로 살고 있는 김아무개(82) 할머니만을 위한 연주였다. 할머니의 눈시울은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붉어졌고, 할머니 댁을 찾은 다른 사람들의 눈가도 촉촉해졌다. “내 평생 오늘 같은 날이 없었습니다. 꿈꾸고 있는 것 같아.” 자신만을 위한 공연을 감상한 할머니는 내내 감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할머니 댁을 찾은 이들은 서초구 가족자원봉사모임 아리모(아름다운 리더들의 모임) 봉사단이다.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 재능나눔 공연을 펼치는 아리모 봉사단은 2008년 고등학교 교사였던 국혜숙(65)씨가 학생들에게 나눔과 사랑의 의미를 알려주고자 만든 봉사단이다. 국씨의 제자들과 그 가족이 중심이 돼 29명으로 꾸려진 봉사단은 10년이 지난 올해 47명으로 단원이 늘어났다. 이들의 봉사활동은 2013년 자원봉사의 날에 서울시장상을 받았고, 2016년 서초 ‘V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6일 봉사자 21명은 3개 모둠으로 나뉘어 우면동 주공아파트에 홀로 사는 12명 어르신의 집을 찾아가 공연을 펼쳤다. 문화생활이 어려운 어르신들의 집에 방문해, 어르신 단 한 분만을 위한 연주를 해드리는 것이다. 첫 번째 연주자로 나선 정연아(9) 양은 첼리스트로 활동을 함께하는 엄마 이소영(44)씨의 딸로 최연소 단원이다. 이씨의 첼로 연주와 중학생 2명의 바이올린 합주도 이어졌다. 직접 쓴 편지 낭독과 시 낭송, 노래까지, 작지만 풍성한 공연은 단원들이 돈을 모아 마련한 극세사 이불을 전달하며 마무리가 됐다. “너무 외로워 주로 노인정을 찾는데, 그래도 늘 혼자인 기분이었어. 그런데 이렇게 집에 찾아와서 연주도 해주고 대화도 나눠주니 이보다 즐거울 수가 없네”라며 김 할머니는 봉사단원들의 손을 일일이 잡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날 공연에 앞서 아리모 봉사단원들은 1시간 전 우면종합사회복지관에 모여 준비를 시작했다. 직접 그려서 만든 카드에 어르신들에게 드릴 손편지를 쓰고, 낭송할 시와 부를 노래를 맞춰보기도 했다. “오늘 공연은 우리의 재능을 자랑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사랑과 봉사의 마음을 담아 연주해주세요. 또 어르신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산만하게 움직이지 말고 목소리는 크게 해주세요.” 국혜숙 아리모 회장이 10년 넘은 봉사 경험에서 우러나온 주의사항을 전했다. 단원들 역시 한두 번 맞춰본 호흡이 아니어서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며 준비를 마쳤다.

연파란색 한복을 맞춰 입고 북을 두드리는 중학생 넷도 눈에 띄었다. 전통 북 공연을 3년째 이어오고 있는 이들은 정준호, 김창하, 김재하, 이동현 군으로 15살 동갑내기 친구들이다. “어르신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하시는 것만 봐도 보람을 느껴요. 봉사 준비를 하며 친구들과 북 연습하는 것도 재밌고요.” 김창하 군은 방학 중에는 평일에, 학기 중에는 주말에 친구들과 봉사를 다닐 정도로 아리모 봉사단의 맹렬 단원이다. 이들은 북 연주를 봉사가 아니라 일종의 놀이, 기쁨이라고 입을 모았다.

오케스트라 단원, 시인, 대학교수, 성악가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진 서초구민들이 수준 높은 재능을 기부한다는 점이 아리모 봉사단의 특징이다. 가족 중 한 사람의 봉사가 가족 전체에게 퍼져 함께 활동하게 되는 점은 아리모 봉사단의 매력이다. “자기에게 여유가 있든 없든 배려하고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는 걸, 그런 사회를 아이들이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아들 연태를 시작으로 자신이, 이제는 막내딸까지 봉사를 다니는 이소영씨가 말했다.

이날 봉사단 연주의 주인공이었던 김 할머니는 예정된 공연이 끝나도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기어코 현관문까지 나와 배웅하시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 여기 와주신 분들, 모두가 저에게 천사입니다.”


정고운 기자 nimok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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