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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자! 같이! 다르게! PLAY@방학

도봉구 방학동 학교폭력 예방에 소셜 디자인 도입, 소통·신뢰 쑥쑥

등록 : 2017-02-23 15:29 수정 : 2017-02-23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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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 방학’ 프로젝트가 만들어낸 도봉구 방학동의 그림과 공간들. 방학중학교 담에 그려진 벽화는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방학초등학교 상담사 권영미씨가 아이들에게 보드게임을 알려주고 있다. grimlike@hani.co.kr
‘우린 서로 달라요. 얼굴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하고 싶은 일도 다르고. 그래서 가끔 서로가 멀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다름’을 이해하고 나니 서로가 특별해졌어요. 우린 이렇게 다양하고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예요’. 도봉구 방학중학교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에 적혀 있는 글귀다.

벽화를 그린 이가 자폐성 장애를 가진 화가 김정우라고 밝혀둔 명판에는 ‘우리는 모두 다양한 재능과 특별함을 가지고 있습니다.…편견 없이 주변을 바라보면 우리 모두의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라는 글귀가 함께 적혀 있다. 다름을 특별함으로 인정하자는 벽화는 학교폭력 문제를 서비스 디자인으로 해결해보자는 뜻을 담고 있다.

‘놀자! 같이! 다르게! PLAY@방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방학동의 학교폭력 예방 디자인 해법이 적용된 건 지난해 5월부터, 프로젝트는 서울시 학교폭력 예방 디자인 시범사업에 선정된 2014년에 시작됐다.

‘PLAY@ 방학’ 프로젝트가 만들어낸 도봉구 방학동의 그림과 공간들. 신체놀이를 돕는 점프 공간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방학중학교가 있는 방학동 일대는 빌라와 연립주택으로 이뤄진 오래된 동네다. 골목이 많은데다 연립주택의 주차장은 어둡고 사람의 왕래까지 뜸해 청소년의 일탈 장소로 쓰이곤 했다. 방학중학교를 비롯해 초·중학교 4개가 있는 방학동은 도봉구가 실시한 <지리정보체계를 활용한 시범학교 통학 안전지도>에서 위협을 많이 느끼는 통학로로 조사될 만큼 환경이 열악했다. 북부교육지원청의 조사에서도 관내 40개 중학교 중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이 가장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학교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 개인 간의 문제로 보이지만, ‘획일화’와 ‘경쟁’이 구조화된 사회 체계가 배경이다. 이를 또래간 소통강화와 신뢰 회복으로 풀기 위해 ‘PLAY@방학’ 프로젝트는 그 방법을 디자인에서 찾았다. 학교폭력을 일방적인 지도, 신고 체계 구축 등의 전통적인 방법이 아니라 수요자 중심에서 찾아보자는 것이다.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방학동의 학생과 교사, 주민 등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와 인터뷰, 워크숍을 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문제는 친구끼리 의심 틀어진 관계 회복에 대한 어려움 다양성 인정 부족 개성 표현 어려움 등으로 요약됐다. 지역에는 아이들이 함께할 문화공간과 놀이시설이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여가 대부분을 인터넷게임이나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 이용으로 보내는 편이었다.

해법은 ‘놀이’에서 발견했다. 놀이는 또래 관계를 강화할 뿐 아니라 긍정적 에너지를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 놀이로 강화된 친밀감과 공감대는 공동체의식을 강화해, 괴롭힘당하는 아이의 괴로움을 함께 느끼게 해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될 확률을 줄일 뿐 아니라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돕는 관계를 만들게 된다.

‘PLAY@방학’은 하드웨어로서 아이들이 함께 놀 수 있는 공간, 소프트웨어로서 함께할 수 있는 놀이, 아이들을 놀이 공간으로 유도할 수 있는 장치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지역사회가 아이들의 놀이를 지지하고 이끄는 역할을 담당한다. 시설 대부분은 방학중학교를 중심으로 5분 이내 거리에 마련됐다. 방학중학교 담벼락 외에 으슥한 공간에도 벽화가 마련됐다. 대상 지역은 경찰관서의 도움을 받아 선정했다.


아이들의 흡연 장소로 골머리를 썩였던 한 빌라의 주차장에 그려진 벽화에는, ‘도깨비공원에 가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제목 아래 영화감상, 취미 배우기, 손가락 축구 등 또래가 함께 할 수 있는 놀이와 도깨비공원을 안내하는 지도가 그려져 있다.

또 다른 빌라 어귀에는 ‘여기서 뭐 해? 우리 같이 놀자!’라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반사판 위에 그려진 밝게 웃는 얼굴은 아이들이 자신을 비추어볼 수 있게 한다. 각각의 얼굴에는 방아골 복지관과 대안학습 공간인 LOE(놀이터, Learning(배움), Opportunity(기회), Experience(경험)) 문구가 함께 적혀 있다.

지도는 방학동 도깨비시장 바로 옆 도깨비공원을 안내한다. 지하에 공영주차장을 둔 공원은 지역의 어르신들과 인근 어린이들만 이용할 정도로 사용빈도가 낮은 곳이었다. 청소년기 아이들이 거의 찾지 않는 공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신체활동 강화, 공동체의식을 키우는 단체놀이,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는 인지 놀이가 기획됐다.

‘PLAY@ 방학’ 프로젝트가 만들어낸 도봉구 방학동의 그림과 공간들. 놀이로 또래끼리 관계를 개선할 수 있도록 도깨비공원 입구 마을카페 ‘도깨비방’의 놀이물품 대여소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아이들의 의견을 듣고 20여 가지 놀이를 준비했다. 공원 옆 마을카페 ‘도깨비방’에 놀이가 이뤄지는 ‘PLAY@테이블’이 만들어지고,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PLAY@아트월’도 들어섰다. 아이들이 영화를 감상하고 책도 읽으며 또래끼리 관계를 형성하는 커뮤니케이션 공간인 ‘PLAY@박스’ 안에는 그동안 아이들이 함께한 사진들이 빼곡하다. 짧은 시간에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아이들의 놀이를 지도하는 지역의 사회단체와 주민들의 협조의 힘이 컸다고 한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저희 마을은 지역 주민이 힘을 모아 디자인으로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방학동 주민 김미영(46)씨의 말은 ‘PLAY@ 방학’의 실험에 지역이 큰 기대를 걸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을카페인 도깨비방에서 공간지기로 자원활동을 하는 김미영(44)씨도 역시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요”라는 말로 “놀이 도구 대여와 관리가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답을 대신했다. 도봉구는 올해 ‘PLAY@방학’과 담 하나 사이인 주택에서도 아이들 노는 소리에 민원이 있을 법하지만, 아직 단 한 건의 민원도 접수되지 않았다 한다.

서울시의 학교폭력 예방 디자인 시범사업은 2014년 은평구 충암중학교를 시작으로, 2015년 도봉구 방학중학교, 2016년 성북구 장곡초등학교와 송파구 배명중학교까지 이어졌고, 올해는 광진구 용마초, 동작구 영화초, 영등포구 영등포중·고등학교에서 시행된다.

김정엽 기자 pkjy@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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