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협업을 향한 새로운 시민단체를 꿈꾼다

기고 | 이미경 은평아동청소년네트워크 공동대표

등록 : 2017-03-23 16:15 수정 : 2017-03-23 23:30

크게 작게

“변화된 지역에 걸맞은 시민사회 재구조화를 기약하며 발전적 해체를 결정합니다.” 지난 16일 은평지역사회네트워크(은지네) 총회의 결정이다. 2006년 은평구 지역사회의 현안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15개 단체가 연대한 게 은지네의 시작이었으니 12년 만이다.

꿈나무도서관 자원활동가 모임인 ‘꿈지기’들이 은지네에 참여한 까닭은 절실함 때문이었다. 살기 좋은 은평을 위한 자원활동은 우리가 ‘을’임를 확인하게만 했다. 자원활동가는 관리 대상이었고 민원인이었다. 주민들의 제안은 업무 증가의 원인으로 취급당했고, 민관은 서로를 불편하게 하는 관계일 뿐이었다.

은지네는 어린이날 축제와 벼룩시장을 개최한 경험을 갖고 모였다. ‘문화로 꿈꾸는 아름다운 은평 만들기’의 시작인 ‘은평어린이 잔치한마당’을 통해 협력이란 업무 분담이 아니라 함께 만들고 즐기며 공동의 가치를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걸 알았다. 협력을 경험하며 교류와 연대가 서로의 성장을 지원한다는 것도 알았다.

은지네에 참여한 ‘꿈지기’들이 도서관을 운영하는 주체로 성장했다. 은지네의 등장으로 행정도 시민사회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 후 꿈나무도서관은 주민자치센터박람회 최우수상과 은평대상을 받는 영예를 얻었다. 수상보다 더 기쁜 건 관에서 일회성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협력하게 됐다는 점이다.

은지네 활동은 각 분야에서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되었다. 은지네의 참여로 살림의료협동조합이 자리 잡고, ‘은’씨네 남매도 태어났다. 은평지역아동센터연합(은지연), 은평학부모네트워크(은학네), 은평도시농업네트워크(은도네). 은평협동조합협의회(은동협), 장애인이 살기좋은 은평을 만드는 사람들(장은사), 은평아동청소년네트워크(은아청), 은평작은도서관협의회(은작도협), 은평도서관마을협동조합(은도협),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 은평시민신문협동조합 등 은씨 남매는 미디어, 환경, 교육 등 다양한 영역으로 세분화하면서 전문화되어갔다.

2010년 정치 지형이 바뀌면서 행정과 협력하는 것도 본격화됐다. 주민자치의 꽃이라는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서울시 자치구에서 최초로 실현되면서 참여의 문이 열렸다. ‘골목상상축제’는 은평구민 전체의 축제인 ‘누리축제’로 발전했다. 주민자치센터 내 작은 도서관은 ‘은평도서관마을’이라는 구립도서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주민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은평구 마을공동체지원센터가 생기고, 시민활동가들은 정책 생산에서 실행까지 함께하는 파트너로 위상이 바뀌었다. 지역의 혁신과 활성화를 도모해온 은지네의 경험은 은평 구정뿐아니라 서울 시정의 주요 시민 파트너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은평구는 지역의 모든 복지관과 각 분야의 복지담당자들이 모인 보장협의체와 함께 복지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교육경비 지원은 2012년부터 학교와 마을이 함께 교육하는 교육 콘텐츠 사업으로 발전했다. 청소년들의 다양한 욕구를 맞춤형으로 지원하기 위해 출범한 은평아동청소년네트워크는 민간 주도의 혁신교육지구 사업을 하고 있다. 누리축제는 일상생활이 문화가 되는 마을 문화활동 지원을 위해 문화재단 설립의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은평구의 이러한 변화는 민관이 참여와 협의를 했기에 가능했다. 은평구의 민관 협치는 어느 구보다 앞서 있다고 자부할 만큼 성숙해 있다. 사람들의 생활 단위인 지역은 조화로운 삶의 공동체가 살아 숨쉬는 마을이어야 한다. 지역사회는 민주주의 운영 원리가 살아 있고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마을활동가를 배출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크고 작은 풀뿌리 공동체들이 성장해야 한다.

은지네의 발전적 해체는 민관의 협력이 보장되는 새로운 은평을 만들기 위한 시도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