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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제품마다 멀티탭 달거나
스마트그리드로 가족 동참 늘어
강동구 ‘건강계단’ 집계서 1위 독주
서울시 “자립마을 100곳으로 확대”
지난 17일 오전 서울시 ‘에너지 자립마을’인 강동구 성내동 코오롱2차아파트 주민대표 이은숙(왼쪽부터)씨와 주민 한영주·이경희씨가 스마트폰의 스마트그리드 앱으로 전력량을 확인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 17일 오전 강동구 성내동 코오롱2차아파트 이은숙(55) 주민대표의 집에 들어서자 전기제품마다 달린 멀티탭이 눈에 띄었다. 텔레비전, 에어컨, 전기밥솥, 비데 등을 쓰지 않을 때는 멀티탭의 개별 스위치를 끄는 게 이 집안의 규칙이다.
그러나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아들은 고장 난다고 컴퓨터 전원은 절대 못 만지게 했다. 이 대표는 잔소리 대신 침대에서 보이게 멀티탭을 컴퓨터에 연결했다. 그러자 아들은 멀티탭 스위치의 빨간 램프가 신경 쓰인다며 컴퓨터를 쓰지 않을 때는 전원을 끄는 버릇이 생겼다. 게다가 에코마일리지(전기, 도시가스, 수도, 지역난방의 사용량을 줄이면 서울시가 인센티브 제공) 혜택으로 반년마다 5만원짜리 온누리상품권을 받더니 수도·도시가스까지 줄이는 데 열심이다.
같은 아파트 주민 한영주(50)씨 집은 한달 전기료가 평균 1만원 정도 나온다. 지난 2월 ‘에너지절약 서울시장상’을 받은 뒤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올여름 아무리 무더워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 손님이 올 때만 한두번 켰더니 남편이 “무용지물인 에어컨을 갖다버려라. 상을 받은 뒤 더 난리”라고 화를 낸 것이다. 딸도 엄마를 똑 닮았다. 대학생일 때는 이 아파트의 ‘건강계단’ 순위에서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건강계단이란 층마다 근거리무선통신(NFC)칩을 달아 휴대전화를 대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면 소비한 칼로리를 계산해서 보여주는 앱으로, 강동구청이 보급하고 있다. 이 아파트는 강동구 안 다른 아파트·기업을 제치고 건강계단 1위를 줄곧 독주하고 있다.
주민 이경희(47)씨는 스마트그리드(전력 공급자와 소비자가 실시간 에너지 사용량 정보를 주고받으며 전기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하는 기술) 기술을 이용해 전기 사용을 줄이고 있다. 2015년 11월 두꺼비집(분전함)에 작은 장비(에너지미터)를 설치한 뒤 스마트폰 앱으로 실시간 전력량과 기기별 전력 사용 현황, 누진 단계 변경 알람을 확인하고 있다. 진공청소기의 세기를 ‘강’에서 ‘약’으로 바꾸면 전력량이 4분의 1로 줄어드는 걸 눈으로 확인한 가족들의 동참이 늘어난 게 가장 큰 효과다. 이 아파트 전체 78세대 가운데 48%가 스마트그리드 시범사업에 가입했다. 누구보다 이씨는 전력 소모가 많은 시간대에 절감 목표가 뜨는 ‘미션’ 달성을 열심히 하고 있다. 밤 9~10시에 미션이 뜨면 고등학생 아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더 하고 10시가 넘어 귀가한다. 그래도 미션 달성이 쉽지 않으면 김치냉장고 코드를 뽑아버린다. 미션을 달성한다고 해서 자신에게 이익은 없다. 대신 위안부 할머니 등 어려운 분들을 돕는 데 기부된다. 이 대표는 “미션 한번의 기부액은 몇십원 수준이지만, 1000만 서울시민이 10원씩만 기부해도 1억원 아니냐? 전기료 아끼자고 하면 시큰둥한 주민들도 어려운 분들 돕는 데 쓰인다고 하면 더 호의적”이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가 에너지 절약에 나서기 시작한 때는 이 대표가 주민대표가 된 2011년이다. 78세대 작은 주상복합아파트의 연간 공동 전기요금이 8200만원이나 됐다. “에너지 절약하자고 하면 누가 말을 듣겠어요. 처음에는 혼자 돌아다니면서 스위치를 끄고, 코드를 뽑았어요. 필요 없는데도 공동 전기라고 켜둔 게 정말 많더라고요. 그렇게 1년 동안 코드 뽑는 것만으로 400만원 가까이 전기료를 줄였어요. 우리같이 작은 아파트에서 이만큼 줄였는데 대규모 단지라면 대기전력만 잡아도 어마어마하게 아낄 수 있겠죠.” 그 뒤로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로 지하주차장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교체, 전 세대 서울시 에코마일리지 가입, 35세대 서울시 미니태양광 설치 등을 이어갔다. 자발적인 노력에 감탄한 강동구청이 2015년 이 대표에게 서울시 ‘에너지 자립마을’ 신청을 권했다. “서울시에 에너지 자립마을 제도가 있는 걸 뒤늦게 알고 잠이 안 왔어요. 우리는 그야말로 맨땅에 박치기하면서 몇년을 해왔는데, 이걸 몰랐다는 게 정말 억울했어요. 그래도 다행히 에너지를 아낀 실적을 인정받아 바로 2단계 에너지 자립마을로 선정됐어요.” ‘에너지 자립마을’은 주민이 자발적으로 에너지 절약·생산·나눔에 동참해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마을로, 서울시가 2012년부터 선정하고 있다. 2015년 에너지 자립마을 30곳의 전력소비량을 분석한 결과, 2012년과 견줘 평균 12%를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에너지 자립마을에 선정된 동작구 성대골 주민들은 올 초 ‘도시지역 미니태양광 리빙랩’을 구성해 기업·연구소와 함께 미니태양광 디아이와이(DIY) 제품 개발에 나서 최근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리빙랩은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곧 연구실’이라는 인식에 따라 마을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직접 연구자가 되어 연구활동을 하는 것이다. 김연지 서울시 에너지시민협력과장은 “에너지 자립마을 현장에서 주민의 절약 노력이 혁신기술과 만나 발전하고 있다. 서울시는 ‘에너지 살림도시, 서울’ 사업으로 내년에는 에너지 자립마을을 100곳까지 늘리겠다”고 말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주민 이경희(47)씨는 스마트그리드(전력 공급자와 소비자가 실시간 에너지 사용량 정보를 주고받으며 전기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하는 기술) 기술을 이용해 전기 사용을 줄이고 있다. 2015년 11월 두꺼비집(분전함)에 작은 장비(에너지미터)를 설치한 뒤 스마트폰 앱으로 실시간 전력량과 기기별 전력 사용 현황, 누진 단계 변경 알람을 확인하고 있다. 진공청소기의 세기를 ‘강’에서 ‘약’으로 바꾸면 전력량이 4분의 1로 줄어드는 걸 눈으로 확인한 가족들의 동참이 늘어난 게 가장 큰 효과다. 이 아파트 전체 78세대 가운데 48%가 스마트그리드 시범사업에 가입했다. 누구보다 이씨는 전력 소모가 많은 시간대에 절감 목표가 뜨는 ‘미션’ 달성을 열심히 하고 있다. 밤 9~10시에 미션이 뜨면 고등학생 아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더 하고 10시가 넘어 귀가한다. 그래도 미션 달성이 쉽지 않으면 김치냉장고 코드를 뽑아버린다. 미션을 달성한다고 해서 자신에게 이익은 없다. 대신 위안부 할머니 등 어려운 분들을 돕는 데 기부된다. 이 대표는 “미션 한번의 기부액은 몇십원 수준이지만, 1000만 서울시민이 10원씩만 기부해도 1억원 아니냐? 전기료 아끼자고 하면 시큰둥한 주민들도 어려운 분들 돕는 데 쓰인다고 하면 더 호의적”이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가 에너지 절약에 나서기 시작한 때는 이 대표가 주민대표가 된 2011년이다. 78세대 작은 주상복합아파트의 연간 공동 전기요금이 8200만원이나 됐다. “에너지 절약하자고 하면 누가 말을 듣겠어요. 처음에는 혼자 돌아다니면서 스위치를 끄고, 코드를 뽑았어요. 필요 없는데도 공동 전기라고 켜둔 게 정말 많더라고요. 그렇게 1년 동안 코드 뽑는 것만으로 400만원 가까이 전기료를 줄였어요. 우리같이 작은 아파트에서 이만큼 줄였는데 대규모 단지라면 대기전력만 잡아도 어마어마하게 아낄 수 있겠죠.” 그 뒤로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로 지하주차장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교체, 전 세대 서울시 에코마일리지 가입, 35세대 서울시 미니태양광 설치 등을 이어갔다. 자발적인 노력에 감탄한 강동구청이 2015년 이 대표에게 서울시 ‘에너지 자립마을’ 신청을 권했다. “서울시에 에너지 자립마을 제도가 있는 걸 뒤늦게 알고 잠이 안 왔어요. 우리는 그야말로 맨땅에 박치기하면서 몇년을 해왔는데, 이걸 몰랐다는 게 정말 억울했어요. 그래도 다행히 에너지를 아낀 실적을 인정받아 바로 2단계 에너지 자립마을로 선정됐어요.” ‘에너지 자립마을’은 주민이 자발적으로 에너지 절약·생산·나눔에 동참해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마을로, 서울시가 2012년부터 선정하고 있다. 2015년 에너지 자립마을 30곳의 전력소비량을 분석한 결과, 2012년과 견줘 평균 12%를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에너지 자립마을에 선정된 동작구 성대골 주민들은 올 초 ‘도시지역 미니태양광 리빙랩’을 구성해 기업·연구소와 함께 미니태양광 디아이와이(DIY) 제품 개발에 나서 최근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리빙랩은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곧 연구실’이라는 인식에 따라 마을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직접 연구자가 되어 연구활동을 하는 것이다. 김연지 서울시 에너지시민협력과장은 “에너지 자립마을 현장에서 주민의 절약 노력이 혁신기술과 만나 발전하고 있다. 서울시는 ‘에너지 살림도시, 서울’ 사업으로 내년에는 에너지 자립마을을 100곳까지 늘리겠다”고 말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