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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발파의 흔적 보여주기
거칠더라도 그 느낌 그대로
지열을 활용해 냉난방 해결
서대문구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의 전시·공연 공간인 6개의 탱크(T1~T6)는 모두 닮은 듯 다른 모습이다(사진 왼쪽부터). 그 닮은꼴이 1970년대 산업시대와 냉전시대를 상징하는 알록달록한 위장 도색 철판에서 온다면, 조금씩 달라진 모습은 개성 강한 문화시대를 상징한다. 서울시 제공
“재생사업의 큰 의미를 살려, 탱크들을 해체하고 없애기보다는 최소한의 재구축을 통해 낯설게 느껴지는 경관과 공간을 활용했습니다.”
설계회사 ‘RoA 건축사사무소’(이하 ‘RoA’)가 설명하는 문화비축기지의 핵심 설계 개념이다. ‘RoA’는 ‘땅(石)으로부터 읽어낸 시간’이라는 설계안으로 서울시가 2014년 연 ‘마포 석유비축기지 국제현상설계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땅(石)으로부터 읽어낸 시간’에 대해 “1970년대 5개의 석유탱크가 언덕에 들어서는 과정과 오랜 세월 버려져 있는 현재 상태의 간격을 새롭게 채우고 있다”고 평했다. ‘RoA’는 그 채움의 비결로 ‘구축 당시로의 환원’을 통한 재생을 꼽는다.
석유비축탱크들은 1970년대 구축 당시 탱크가 들어설 위치를 선정하고 시설 공사를 위한 입구를 확보한 뒤 발파 등으로 탱크가 묻힐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RoA’는 탱크를 무조건 해체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항공사진 등을 이용해 제일 먼저 시설 공사를 위한 입구를 찾았다고 한다. ‘RoA’는 이를 통해 “①구축 당시 발파의 흔적인 암반 절개지와 ②석유탱크의 방호 목적으로 구축된 콘크리트 구조물, 그리고 ③그 안에 자리잡은 석유탱크 순으로 켜켜이 보여지는 구축 과정의 흔적을 보여주려 노력했다”고 한다. 거칠더라도 원래의 느낌을 보여주려 했다는 것이다. ‘RoA’가 이런 과정을 통해 각각의 탱크를 어떻게 재생했는지 들어봤다.
‘문화비축기지’의 석유탱크3(T3) 위쪽에서 바라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석유탱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함으로써 ‘석유시대’를 상징하는 T3에서 ‘문화체육 시설’인 월드컵경기장을 바라보면 41년 세월의 변화가 한순간 다가오는 듯하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T1(유리파빌리온, 554㎡): 터널형 입구를 지나면 뉴욕의 애플 하우스 같은 유리파빌리온이 나온다. 기존 탱크를 전부 해체하고 똑같은 크기의 유리파빌리온을 만든 것이다. 투명한 유리파빌리온은 ‘탱크는 없어졌지만 오히려 그것의 정확한 형태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유리 너머에는 1970년대 발파 작업으로 절개됐을 암반들의 절개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공연·전시·제작워크숍용. T2(공연장·야외무대, 2579㎡): 원래 있던 탱크를 해체하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던 콘크리트 방호 구조물을 두드러져 보이게 했다. 진입로에서 부터 탱크를 향해 천천히 오를 수 있는 경사진 슬라브를 설치했다. 그 슬라브를 따라가다 보면 방호 콘크리트의 중간 부분과 만나게 된다. 슬라브가 방호 콘크리트를 두층으로 나눈 셈인데, 슬라브의 상단은 야외 공연장(1226㎡)이 되고 슬라브의 하단은 방호 콘크리트와 함께 실내 공연장(608㎡)을 형성한다. 강연회, 대담회, 음악 공연, 페스티벌, 야외 파티용. T3(탱크 원형, 753㎡): 석유비축탱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함으로써 석유비축탱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 있게 했다.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에 대한 요구는 달라질 수 있다는 측면을 고려해, 후대 건축가 중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문화비축기지를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도록 여지를 둔 곳이다. 공간 투어와 건축 투어용.
T4(복합문화공간, 984㎡): 탱크와 그것을 감싼 콘크리트 방호구조물을 모두 살렸다. 자연 암석과 콘크리트 방호구조물 사이, 콘크리트 방호구조물과 탱크 사이의 1~2m 간격을 그대로 볼 수 있다. 탱크로 석유를 넣던 주입구를 그대로 두어 탱크 상단에서 햇볕이 들어오도록 했다. 내부에 영상·음향 설비가 설치돼 미디어전시 같은 다목적 전시도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된다.
T5(이야기관, 890㎡): 역시 콘크리트 방호구조물과 탱크를 모두 살렸다. 하지만 T4와 반대로 관객들의 주된 시선이 바깥의 신설된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탱크 쪽을 바라보도록 설계됐다. 또 탱크 내부에는 벽면을 따라 설치된 12개 영사기가 360도 영상을 쏟아낸다. 마포 석유비축기지 41년 역사를 볼 수 있는 이야기관으로 운영된다.
T6(커뮤니티센터, 2948㎡): 해체된 T1과 T2의 철판을 이용해 만들었다. T2의 철판은 그대로 T6의 외벽 자재로 활용됐다. T2와 T6의 물리적인 지름이 똑같다는 말이다. T1의 철판은 내부에 있는 원형 대회의실의 내부자재로 재활용됐다. 원형 회의실, 카페, 문화아카이브, 강의실, 운영 사무실용.
‘RoA’는 문화비축기지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열쇳말로 ‘친환경'을 꼽았다. 기지의 모든 건축물은 지열을 활용한 신재생에너지로 냉난방을 해결하며, 화장실 대소변기와 조경 용수는 각각 중수처리시설(30톤)과 빗물저류조(300톤)를 통해 생활하수와 빗물을 재활용한 것이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