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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강박 할머니, 7시간 정리 봉사에 “대만족”

‘콩알봉사단’ 정리수납 봉사 현장 안 버린다던 할머니 “고생 많았다”

등록 : 2017-11-16 14:33 수정 : 2017-11-1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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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수납 전문가들의 봉사단 ‘콩알’ 회원 16명이 지난달 26일 방배동의 한 어르신 집 정리정돈 봉사에 나섰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콩알봉사단은 한국정리수납협회의 전문가 자격증을 딴 회원들이 모여 2013년에 만든 봉사단체다. 주거환경 개선과 무료급식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현재 회원은 700명쯤 된다. 이 가운데 200여명이 정기적으로 봉사에 참여한다. 매달 5000원의 회비를 모아 모임비로 쓰거나 봉사활동에 필요한 수납용품을 사기도 한다.

지난 10월26일 정리수납 봉사단 ‘콩알’ 회원 16명이 오전 10시 방배동의 한 집을 찾았다. 81살의 노모와 50대 장애가 있는 아들이 사는 집이다. 문을 열자 현관 앞에 옷이 잔뜩 걸린 행어(옷걸이)가 가로막고 서 있다. 거실엔 냉장고, 식탁, 행어로 발 디딜 틈이 거의 없다. 큰방엔 이부자리 공간을 빼고는 방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책상에도 옷들이 걸쳐 있고 잡동사니들이 뒤섞여 있다. 부엌 한편에는 즉석밥, 라면, 카레 등 후원물품과 식료품이 든 상자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2평 공간을 채우고도 넘치는 물건이 이 집의 주인처럼 보였다.

검은색 앞치마형 조끼를 입은 봉사단원들은 능숙한 솜씨로 정리정돈에 나섰다. 이날 활동을 총괄하는 봉사반장 이해경씨가 “식구들 물건이 섞이지 않게 하고, 버릴 것은 식구들 의사를 꼭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봉사자들은 실내외로 반씩 나뉘고, 실내는 발코니와 큰방 4명, 작은방 2명, 부엌과 거실 2~3명이 배치됐다. 구역마다 경험 많은 봉사자가 팀장을 맡아 일을 처리한다. 이 반장은 “물건 하나하나 식구들 의사를 물어보고 처리해야 하기에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고 한다.

큰 물건과 옷들을 집에서 빼내는 일이 시작됐다. 봉사자들은 릴레이 방식으로 물건 빼내기를 한다. 옷과 가방, 이불, 운동용품 등은 주로 발코니 창문에 널빤지를 아래로 걸친 뒤 그 위로 얹어 내려보낸다. 집 뒤 공터에 비닐을 깔아 집에서 나온 물건들을 구역별로 모아둔다.

1시간 남짓 물건을 빼고 나니 그제야 방과 거실의 바닥이 보인다. 꺼내놓은 물건들을 사용할 것, 버릴 것, 보관할 것 등 세 가지로 나누는 작업이 시작됐다. 공터에 내놓은 옷이 얼추 300점은 넘어 보인다. 웬만한 동네 벼룩시장 규모다. 스카프나 모자 등 소품도 많다.

봉사자들이 할머니에게 “안 입을 것 같은 옷들을 말씀해주세요”라며 하나하나 보여준다. 할머니의 표정을 살피며 “얼룩진 옷들은 이참에 정리하면 좋겠네요”라고 조심스레 덧붙이기도 한다. 할머니가 마음을 좀체 내지 않자 봉사자들의 질문이 꼬리를 문다. 할머니는 이것도 저것도 못 버리겠다고 말한다. “안 버려. 아들이 찾는 옷 없으면 신경질 내, 내가 감당 못 해.”


이때 지난해까지 콩알 회장이었고 지금은 고문이며 100회 넘게 봉사한 베테랑 이정민 팀장이 나서서 정리한다. “할머니 말씀대로 해요. 철 지난 것은 수납박스에 넣어서 정리하고 서랍에는 지금 입을 걸 넣어주고요.” 봉사자들이 다시 부지런히 움직인다.

점심 뒤 오후엔 수납작업이 이뤄졌다. 큰방 봉사자들은 이불을 4단으로 접어 공간을 덜 차지하게 해서 계절별, 색깔별로 이불장에 넣었다. 포장도 뜯지 않고 ‘모셔둔’ 새 이불은 꺼내 쓰게 정리해준다.

부엌에서는 자주 쓰는 양념통, 접시 등은 찬장 아래 둬 키가 작은 할머니가 편리하게 쓸 수 있게 정리했다. 간장 등 액상 조미료, 집에서 담근 포도주 등은 작은 페트병으로 옮겨 담았다. 뚜껑에 이름을 적거나 병에 이름표를 붙여 사용 뒤에도 제자리에 정돈할 수 있게 했다. 다니는 직장에 휴가를 내고 참가한 황정순씨는 “작게 나눠 담아야 덜 상하고, 공간도 덜 차지한다”고 말한다.

오후 5시 집 정리가 끝났다. 봉사원들의 손길에 집안이 말끔하게 변신했다. 재활용 봉투 100ℓ 7개, 20ℓ 5개에 담긴 잡동사니, 의자, 자전거 운동기구 등이 차지했던 집에 이제는 여러 사람이 앉아도 될 만한 바닥이 생겼다. 할머니가 “고생 많았어”라며 봉사자들 손을 잡는다. 취재를 마다하던 할머니가 마지막엔 “대만족이라고 써주세요”라고 부탁한다. 봉사자들은 “할머니, 쓰고 난 뒤에는 그대로 그 자리에 두세요”라고 신신당부하며 집을 나섰다.

정리수납 자원봉사자를 길러내 저장강박증을 앓고 있는 주민들의 정리수납을 돕고 있는 자치구도 늘어나고 있다.

13일 오전 10시께 동작구 사당동의 한 연립주택 1층. 정리수납 전문교육을 받은 동작구자원봉사센터 봉사원 7명이 집 문을 열자 아이들 옷가지 등이 담긴 대형 비닐봉지 꾸러미 수십여개가 눈앞에 펼쳐졌다. 집주인 김수경(38·가명)씨가 원래 문간방이던 곳을 창고처럼 사용한 탓이다.

12살, 11살, 9살 등 세 아이와 병든 아버지를 부양하며 살고 있는 김씨는 다음 달이면 넷째 아이를 낳는다. 배우자도 없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김씨는 14.5평 크기의 작은 집에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습관 때문에 2014년에도 정리수납 봉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작은 집에서 7식구가 함께 살기도 했는데, 올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원치 않는 임신까지 해 우울증을 앓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작구 복지정책과 희망복지지원팀에서 일하고 있는 송인란 통합사례관리사는 “다음 달에 출산 예정이지만 지금 김씨 집안 상태로는 어린 아기를 키울 환경이 도저히 안 된다고 판단해서 자원봉사자들에게 정리정돈 도움을 받길 권했다”고 했다. 김씨는 “언니가 정리수납을 도와줄 것”이라고 몇 차례 송 관리사의 제안을 거부하다 뒤늦게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날 집안 대청소는 ‘버리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중간중간 흐름이 끊기곤 했다. 김씨는 자원봉사자들이 버려야 할 것으로 분류한 비닐봉지를 일일이 열어보곤 “이 물건은 아직 쓸 수 있다”며 아이들이 쓰던 방수요와 털모자 등을 도로 챙겼다.

송 관리사는 “버려야 정리수납이 진척되는데 버리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며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정리하는 것은 마음의 상처가 되기 때문에 지금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를 꼼꼼히 확인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김씨는 자원봉사자들이 원활하게 정리수납할 수 있도록 일단 ‘버리는 물건’으로 분류된 봉투에는 별로 간섭하지 않았다.

김씨는 정리수납 봉사에 “한때는 어머니와 남동생 등 7식구가 좁은 집에서 살았다”며 “이렇게 정리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고 했다.

이현숙·김도형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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