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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의 1/10, 블랙박스 300만원
아차산 등산로에서 강도 사건 발생
전기 공급 문제로 CCTV 설치 어려워
‘용틀임 소나무’ 절도 사건 해결 한몫
산속에 맞는 태양광 방식도 계획 중
지난 7일 광진구 아차산 등산로에서 공원녹지과 김철곤 주무관이 등산객에게 방범용 블랙박스와 비상벨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광진구 제공
지난해 5월 서울 북쪽 끝자락에 있는 수락산을 오르던 60대 주부 한명이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그다음 달에는 경기도 의정부 사패산을 등산하던 50대 여성이 살해됐다. 등산로 안전 우려가 커질 때 아차산에서도 강도 사건이 발생해 광진구 공원녹지과가 발칵 뒤집혔다.
지난해 8월11일 대낮에 아차산을 오르던 여성이 칼을 들이대는 남성에게 목걸이를 빼앗겼다. 경찰은 아차산공원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녹화된 영상을 확인했지만, 등산로 주변에는 시시티브이가 없어 용의자의 동선을 확인할 수 없었다.
공원녹지과는 바로 등산로에 방범용 시시티브이를 설치하기 위해 조사에 나섰다. 24시간 영상을 녹화하는 시시티브이에 전력이 계속 공급돼야 하지만 등산로에는 상시 전력망이 없었다. 대학에서 전기를 전공한 김철곤 주무관은 “등산로 주변 공원등(가로등)에 들어오는 전기가 있지만 낮에는 자동으로 차단돼 쓸 수 없었다”며 “전기·통신선로 등을 새롭게 까는 공사 비용을 합치면 시시티브이 1대 설치에 최소 3000만원 이상 필요했다”고 말했다. 많은 예산뿐 아니라 비탈진 등산로라 공사 자체가 쉽지 않아 설치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공원녹지과는 대안을 찾기 위해 회의에 들어갔다. 모형 시시티브이나 비상벨을 설치하자는 제안이 나왔지만 주민의 불안을 잠재우는 데 충분한 대안이 되지 못했다. 고민에 빠진 김 주무관은 수사에 나선 경찰이 공원 주변에 주차된 차들의 블랙박스 영상을 수소문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자동차에는 배터리가 있어 블랙박스가 24시간 녹화할 수 있거든요. 등산로 주변에 블랙박스가 설치된 차량을 둔다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데, 산속에 차량을 갖다놓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고민하다가 밤에 전기가 들어오는 공원등이 떠올랐어요.” 대용량 배터리라면 밤에만 충전해도 24시간 녹화가 가능하다는 계산이 섰다. 블랙박스의 저장장치는 주기적으로 포맷(초기화)을 해야 하므로 자동 포맷 기능도 필요했는데, 순찰차에 설치된 블랙박스가 자동 포맷 기능과 대용량 저장장치를 갖고 있었다. 밤에 충전하면 24시간 문제없는 80Ah짜리 대용량 배터리, 자동 포맷 기능을 가진 블랙박스, 한 달치 영상을 저장할 수 있는 500GB짜리 대용량 저장장치, 거기에 112상황실로 위치를 전송하는 무선통신 비상벨까지 모든 게 맞아떨어지자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시중 제품들을 조합했기 때문에 불과 두달 만에 16곳의 공원등에 블랙박스와 비상벨을 달 수 있었다. 1대당 설치 비용은 약 300만원으로 시시티브이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블랙박스마다 내장된 카메라 2대는 산책로 양쪽을 비추고, 야간에도 현장을 선명하게 촬영한다. 성능과 화소에서 시시티브이와 차이가 없어 범죄가 일어나면 결정적 증거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런데 설치 뒤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인적이 드문 곳에 설치된 비상벨을 실수나 장난으로 누르는 경우가 잦았다. 심지어 비상벨로 신고가 들어온 여자 화장실에 급히 출동한 경찰에게 휴지가 없어 비상벨을 눌렀다는 등산객도 있었다. 불필요한 경찰 출동이 잦아지자 김 주무관은 유심(USIM)을 넣어 112상황실과 통화가 가능한 스마트 비상벨로 바꿨다. 이 비상벨을 누르면 경광등과 사이렌이 작동하며 ‘긴급상황 발생. 112경찰서 상황실로 전화가 연결되며 경찰관이 출동했습니다’라는 음성 안내가 나온다. 새 비상벨로 교체한 뒤 허위 신고가 줄었고, 경찰의 요청으로 김 주무관은 업체와 함께 스마트 비상벨 시연을 하기도 했다. 아차산에 블랙박스가 설치된 뒤 강력 범죄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의외의 사건에서 블랙박스가 결정적 몫을 했다. 지난 4월 아차산 명물 ‘용틀임 소나무’가 갑자기 사라졌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이 적송은 높이 60~70㎝로 크지 않지만, 줄기가 용틀임하듯 꼬여 있어 주민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경찰은 블랙박스와 시시티브이 영상을 분석하고 탐문 수사 끝에 지난 6월 일당 4명을 검거하고 소나무도 되찾을 수 있었다. 광진구는 올해 들어 아차산 등산로, 쉼터, 도시 텃밭에도 블랙박스를 설치했고 학교 1곳에도 설치할 예정이다. 김 주무관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공원등이 없는 산속에도 설치할 수 있는 태양광 충전형 블랙박스를 구상하고 있다. “현재 블랙박스에 100만~200만원만 더 들여 태양광 패널(전지판)과 인버터(변환기) 정도 추가하면 전기가 아예 공급되지 않는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산만 확보되면 내년에 설치할 계획입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공원녹지과는 바로 등산로에 방범용 시시티브이를 설치하기 위해 조사에 나섰다. 24시간 영상을 녹화하는 시시티브이에 전력이 계속 공급돼야 하지만 등산로에는 상시 전력망이 없었다. 대학에서 전기를 전공한 김철곤 주무관은 “등산로 주변 공원등(가로등)에 들어오는 전기가 있지만 낮에는 자동으로 차단돼 쓸 수 없었다”며 “전기·통신선로 등을 새롭게 까는 공사 비용을 합치면 시시티브이 1대 설치에 최소 3000만원 이상 필요했다”고 말했다. 많은 예산뿐 아니라 비탈진 등산로라 공사 자체가 쉽지 않아 설치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공원녹지과는 대안을 찾기 위해 회의에 들어갔다. 모형 시시티브이나 비상벨을 설치하자는 제안이 나왔지만 주민의 불안을 잠재우는 데 충분한 대안이 되지 못했다. 고민에 빠진 김 주무관은 수사에 나선 경찰이 공원 주변에 주차된 차들의 블랙박스 영상을 수소문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자동차에는 배터리가 있어 블랙박스가 24시간 녹화할 수 있거든요. 등산로 주변에 블랙박스가 설치된 차량을 둔다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데, 산속에 차량을 갖다놓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고민하다가 밤에 전기가 들어오는 공원등이 떠올랐어요.” 대용량 배터리라면 밤에만 충전해도 24시간 녹화가 가능하다는 계산이 섰다. 블랙박스의 저장장치는 주기적으로 포맷(초기화)을 해야 하므로 자동 포맷 기능도 필요했는데, 순찰차에 설치된 블랙박스가 자동 포맷 기능과 대용량 저장장치를 갖고 있었다. 밤에 충전하면 24시간 문제없는 80Ah짜리 대용량 배터리, 자동 포맷 기능을 가진 블랙박스, 한 달치 영상을 저장할 수 있는 500GB짜리 대용량 저장장치, 거기에 112상황실로 위치를 전송하는 무선통신 비상벨까지 모든 게 맞아떨어지자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시중 제품들을 조합했기 때문에 불과 두달 만에 16곳의 공원등에 블랙박스와 비상벨을 달 수 있었다. 1대당 설치 비용은 약 300만원으로 시시티브이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블랙박스마다 내장된 카메라 2대는 산책로 양쪽을 비추고, 야간에도 현장을 선명하게 촬영한다. 성능과 화소에서 시시티브이와 차이가 없어 범죄가 일어나면 결정적 증거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런데 설치 뒤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인적이 드문 곳에 설치된 비상벨을 실수나 장난으로 누르는 경우가 잦았다. 심지어 비상벨로 신고가 들어온 여자 화장실에 급히 출동한 경찰에게 휴지가 없어 비상벨을 눌렀다는 등산객도 있었다. 불필요한 경찰 출동이 잦아지자 김 주무관은 유심(USIM)을 넣어 112상황실과 통화가 가능한 스마트 비상벨로 바꿨다. 이 비상벨을 누르면 경광등과 사이렌이 작동하며 ‘긴급상황 발생. 112경찰서 상황실로 전화가 연결되며 경찰관이 출동했습니다’라는 음성 안내가 나온다. 새 비상벨로 교체한 뒤 허위 신고가 줄었고, 경찰의 요청으로 김 주무관은 업체와 함께 스마트 비상벨 시연을 하기도 했다. 아차산에 블랙박스가 설치된 뒤 강력 범죄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의외의 사건에서 블랙박스가 결정적 몫을 했다. 지난 4월 아차산 명물 ‘용틀임 소나무’가 갑자기 사라졌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이 적송은 높이 60~70㎝로 크지 않지만, 줄기가 용틀임하듯 꼬여 있어 주민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경찰은 블랙박스와 시시티브이 영상을 분석하고 탐문 수사 끝에 지난 6월 일당 4명을 검거하고 소나무도 되찾을 수 있었다. 광진구는 올해 들어 아차산 등산로, 쉼터, 도시 텃밭에도 블랙박스를 설치했고 학교 1곳에도 설치할 예정이다. 김 주무관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공원등이 없는 산속에도 설치할 수 있는 태양광 충전형 블랙박스를 구상하고 있다. “현재 블랙박스에 100만~200만원만 더 들여 태양광 패널(전지판)과 인버터(변환기) 정도 추가하면 전기가 아예 공급되지 않는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산만 확보되면 내년에 설치할 계획입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