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저출산, 곧 서울형 종합대책 마련

기고ㅣ엄규숙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

등록 : 2018-01-0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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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에 입학하면서 자립하려고 마음먹었지만 이 한 몸 누일 곳을 마련하자니 벌써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했다. 보증금 2000만원은 부모님께 도움받고 월세 30만원은 스스로 해결하려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월 60만~70만원 받아 월세와 공과금 내고 나면 용돈도 빠듯하다.

# 사랑했는데 이제 배 속의 아이와 나 단둘이 남았다. 소중한 인연을 놓을 수 없어 출산을 결심했지만, 주위의 차가운 시선과 아이를 낳은 뒤 현실적 문제에 눈물이 먼저 난다. 공공의 지원도 단발적이다. 저출산 시대, 아이를 기꺼이 낳는다고 하면 박수 쳐줘야 할 일 아닌가?

# 고민고민하다 육아휴직을 신청했는데 바로 다시 고민해보란다. 그래도 육아휴직을 해, 아이와 유대관계가 좋아졌으나 그만큼 멀어진 회사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벌써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 제발 ‘잘 쉬었다 왔냐’는 소리만 안 들었으면 좋겠다.

서울시가 지난달 9일 열었던 저출산 위기 대응을 위한 시민 대토론 ‘이래가지고 살겠냐! 정책장터’에서 나온 시민들의 실제 목소리다. 단순하게 보면 청년의 문제, 미혼모의 문제, 기업문화의 문제로 보일 수 있지만 이 문제들이 공통으로 맞닿아 있는 것이 바로 ‘저출산’이라는 낱말이다.

연애가 어려운데 어찌 결혼하며, 결혼해도 서울 하늘 아래 몸 누일 곳이 없고, 당장 내 일자리가 불안한데 어찌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겠는가? 또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치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홀로 감당하게 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어찌 기꺼이 출산한단 말인가? 이처럼 사회 전반적으로 복잡하게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가 저출산 문제다. 어느 한 분야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극복될 문제가 아니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해 4월 민관 합동 ‘저출산 종합대책 마련 태스크포스팀(TF)’을 구성하면서 임신·출산, 자녀 양육, 일·가정 양립뿐 아니라 일자리, 주거, 외국인 다문화 등 전 분야로 확대해 정책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분과회의를 거쳐 발굴된 정책들을 분과별 시민토론회에서 수정 보완하고, 시민대토론회를 거쳐 올해 가장 먼저 추진되었으면 하는 정책 10개를 직접 투표하도록 했다. 그 결과, 10개 과제 중 1, 2위가 ‘주거’와 관련된 정책이었다. 또 10위 안에는 ‘10대 미혼모 양육비용 지원’과 같은 미혼모를 대상으로 한 정책, ‘육아휴직 활성화 참여 기업 대상 청년인턴 지원’과 같은 일자리 정책들이 시민들의 선택을 받았다.

2005년 6월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된 이래, 10년이 넘는 동안 우리는 저출산 극복을 위한 방향을 너무 좁게 보던 것은 아닐까? 생애주기별 문제, 세대별 문제, 인식의 전환, 이 모든 것들이 해결돼야 저출산 문제가 풀린다. 그동안 서울시는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도시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국공립어린이집으로 대변되는 보육시설은 세계 어느 도시에 뒤지지 않을 인프라를 구축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국 꼴찌 합계 출산율이 보여주듯이 그 결실은 아직 초라하다.


이는 결국 저출산은 하나의 정책으로 완화될 문제가 아니며, 우리가 아직 찾지 못한 사각지대가 있다는 의미이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 토론회에서 선정된 10개의 정책 외에 그간 발굴한 100여 개의 과제를 다시 검토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분석해 올해 초 종합대책을 세울 예정이다. 중앙정부가 하지 못한 일을 지방자치단체가 할 수 있을까? 많은 분이 우려의 눈길을 보내는 것이 사실이지만, 중앙정부보다 지자체가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 반드시 있으리라 믿는다.

엉킨 실타래를 풀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저출산 문제는 사회 전반에 걸친 모든 분야가 합심해야 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다 함께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나간다면 아주 못 풀 문제도 아니잖겠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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