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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물건 5천 개 들고나
아이들 장난감에서 골동품까지
서로 아끼는 마음 담은 메모 눈길
이 회장 “공간에 대한 주민 신뢰 느껴”
지난 19일 도봉구 방학3동 신동아1단지아파트 들머리에 있는 ‘나눔충전소’ 앞에 충전소 지킴이 이수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 회장(맨 오른쪽)과 박정순 아파트 봉사단장(가 운데), 그리고 나눔충전소를 기획한 이기성 구 자치행정과 주무관이 함께 섰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한 달 만에 5000여 점의 물건들이 들고나면서 아파트 주민들이 서로 정을 느끼게 됐습니다.”
지난 19일 도봉구 방학3동 신동아1단지아파트에서 만난 이수열(66) 입주자대표회 회장은 아파트 한켠에 자리잡은 ‘나눔충전소’를 신기한 듯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나눔충전소는 도봉구 자치행정과가 딱 한 달 전인 지난해 12월19일 설치한 ‘쓰던 물건 나눔 공간’이다. 지키는 사람도 없고 크지도 않다. 빨간색으로 칠한 이 공간은 마치 조금 큰 공중전화 부스 같다. 이 회장은 박정순(66) 아파트 봉사단장과 함께 이 무인 나눔충전소의 관리인을 자처한다.
이곳에 아파트 주민 누구나 자기가 쓰던 물건을 가져다놓을 수 있고, 또 누구나 여기 물건을 가져갈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가 계속 가져가려면 누군가는 계속 갖다놓아야 한다. 이 회장이 말한 ‘한 달 만에 5000여 점’은 지난 한 달 동안 아파트 주민 누군가가 5000여 점의 물건을 계속 이곳에 가져다놓았다는 뜻이다. “여러 물건이 나왔습니다. 아이들 장난감, 좌변기도 있었고, 책도 동화를 비롯해 일반 소설까지 다양했습니다. 또 미역 등 먹을거리와 의류도 많이 나왔습니다. 심지어 150년은 넘었을 법한 떡살(떡의 문양을 내는 틀)도 나왔어요. 골동품에 해당할 만한 것까지 내놓는다는 것은 그만큼 이 공간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지요”라고 평가했다. 주민들이 가져다놓은 것은 물건만이 아니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도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날마다 서너 차례 나눔충전소를 살피러 온다는 박정순 봉사단장은 한 아기엄마가 예쁘게 빨아서 비닐에 넣어 갖다둔 옷가지에서 그런 마음을 느꼈다고 한다. ‘남편과 이혼은 아니지만 경제적 도움 없이 6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이렇게 나눌 수 있어서) 누군가에게 참 감사하고 좋은 연말이 될 것 같습니다. 사용 감은 있지만 이쁘게 잘 사용해주세요. 해피뉴이어♥.’ 옷가지에 놓인 것은 이 메모만이 아니다. 나눔충전소에 들어오는 물품들에는 저마다 사연이 적힌 쪽지가 함께 있을 때가 많다. 가져가는 사람들도 고마운 마음을 메모해놓는다. ‘감사합니다. 주먹밥 만들기 가져가요.’ ‘딱지 좋은데요!’ ‘책 감사합니다.’ 나눔충전소 한켠에 있는 메모판에는 이런 감사함을 담은 쪽지가 가득하다. 그리고 쪽지들은 으레 ‘나도 나눔할게요’로 끝을 맺는다. 하나의 따뜻한 마음이 또 다른 따뜻한 마음을 부르는 것이다. 나눔충전소를 처음 기획한 이기성(34) 도봉구 자치행정과 주무관은 “삭막해져가는 아파트에 공동체 의식을 되살리기 위해 내놓은 아이디어인데, 이렇게 반응이 뜨거울지 몰랐다”고 한다. 사실 이런 ‘성공’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신동아1단지아파트에서도 입주자대표회의 때 설치를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 이수열 회장은 “대표회의 때 ‘무인으로 운영되면 쓰레기처리장처럼 되지 않겠느냐’ ‘가져가기는 쉬워도 갖다놓는 사람이 많겠느냐’는 우려가 컸어요. 아파트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자며 설득했어요” 한다. 그나마 ‘만일 호응이 없으면 구청에 다시 철거를 요청한다’는 조건부였다. 이 회장은 “하지만 이제 아파트 주민들도 서로를 그저 익명의 이웃으로만 보지는 않는 분위기”라며 한 달 만에 일기 시작한 변화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그 이웃이 어쩌면 ‘예쁘게 빨아놓은 그 옷’의 주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눔충전소를 찾는 할머니나 엄마 아빠도 많아졌습니다. 나눔충전소가 아이들의 나눔 교육 구실도 하고 있습니다.” 7년 경력의 박재석 아파트관리소장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한다. “예상치 못한 물품들이 많이 나오더군요. 30만원짜리 고가의 유아용 카시트가 나온 것도 봤습니다. 나눔충전소가 활성화되면 아파트 주민 간 소통도 늘어나면서 민원도 줄어들 수 있겠지요?”라며 희망을 나타냈다. 이 회장은 “몸이 불편해서 나눔충전소에 나오기 어려운 어르신 중에 봄이 되면 나눔충전소에 나가보겠다고 하는 분들이 많아요. 나눔충전소가 시간이 갈수록 아파트 공동체 형성에 크게 기여할 것 같아요”라며 기대감을 보였다. 이 주무관은 “현재 나눔충전소는 신동아1단지 외에도 쌍문동 성원아파트와 창동 주공19단지아파트, 그리고 쌍문1동주민센터 외부 휴식공간 등에 설치돼 있다”며 “이곳들이 모두 주민공동체 복원에 기여하고 있다고 판단돼 올해 안에 더욱 많은 곳에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주무관은 나눔충전소가 정착되면 다음 단계로 음식을 나누는 나눔냉장고도 운영해보고 싶다 한다. 작은 나눔충전소가 큰 아파트 공동체를 만드는 날을 함께 기대해본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이곳에 아파트 주민 누구나 자기가 쓰던 물건을 가져다놓을 수 있고, 또 누구나 여기 물건을 가져갈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가 계속 가져가려면 누군가는 계속 갖다놓아야 한다. 이 회장이 말한 ‘한 달 만에 5000여 점’은 지난 한 달 동안 아파트 주민 누군가가 5000여 점의 물건을 계속 이곳에 가져다놓았다는 뜻이다. “여러 물건이 나왔습니다. 아이들 장난감, 좌변기도 있었고, 책도 동화를 비롯해 일반 소설까지 다양했습니다. 또 미역 등 먹을거리와 의류도 많이 나왔습니다. 심지어 150년은 넘었을 법한 떡살(떡의 문양을 내는 틀)도 나왔어요. 골동품에 해당할 만한 것까지 내놓는다는 것은 그만큼 이 공간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지요”라고 평가했다. 주민들이 가져다놓은 것은 물건만이 아니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도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날마다 서너 차례 나눔충전소를 살피러 온다는 박정순 봉사단장은 한 아기엄마가 예쁘게 빨아서 비닐에 넣어 갖다둔 옷가지에서 그런 마음을 느꼈다고 한다. ‘남편과 이혼은 아니지만 경제적 도움 없이 6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이렇게 나눌 수 있어서) 누군가에게 참 감사하고 좋은 연말이 될 것 같습니다. 사용 감은 있지만 이쁘게 잘 사용해주세요. 해피뉴이어♥.’ 옷가지에 놓인 것은 이 메모만이 아니다. 나눔충전소에 들어오는 물품들에는 저마다 사연이 적힌 쪽지가 함께 있을 때가 많다. 가져가는 사람들도 고마운 마음을 메모해놓는다. ‘감사합니다. 주먹밥 만들기 가져가요.’ ‘딱지 좋은데요!’ ‘책 감사합니다.’ 나눔충전소 한켠에 있는 메모판에는 이런 감사함을 담은 쪽지가 가득하다. 그리고 쪽지들은 으레 ‘나도 나눔할게요’로 끝을 맺는다. 하나의 따뜻한 마음이 또 다른 따뜻한 마음을 부르는 것이다. 나눔충전소를 처음 기획한 이기성(34) 도봉구 자치행정과 주무관은 “삭막해져가는 아파트에 공동체 의식을 되살리기 위해 내놓은 아이디어인데, 이렇게 반응이 뜨거울지 몰랐다”고 한다. 사실 이런 ‘성공’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신동아1단지아파트에서도 입주자대표회의 때 설치를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 이수열 회장은 “대표회의 때 ‘무인으로 운영되면 쓰레기처리장처럼 되지 않겠느냐’ ‘가져가기는 쉬워도 갖다놓는 사람이 많겠느냐’는 우려가 컸어요. 아파트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자며 설득했어요” 한다. 그나마 ‘만일 호응이 없으면 구청에 다시 철거를 요청한다’는 조건부였다. 이 회장은 “하지만 이제 아파트 주민들도 서로를 그저 익명의 이웃으로만 보지는 않는 분위기”라며 한 달 만에 일기 시작한 변화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그 이웃이 어쩌면 ‘예쁘게 빨아놓은 그 옷’의 주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눔충전소를 찾는 할머니나 엄마 아빠도 많아졌습니다. 나눔충전소가 아이들의 나눔 교육 구실도 하고 있습니다.” 7년 경력의 박재석 아파트관리소장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한다. “예상치 못한 물품들이 많이 나오더군요. 30만원짜리 고가의 유아용 카시트가 나온 것도 봤습니다. 나눔충전소가 활성화되면 아파트 주민 간 소통도 늘어나면서 민원도 줄어들 수 있겠지요?”라며 희망을 나타냈다. 이 회장은 “몸이 불편해서 나눔충전소에 나오기 어려운 어르신 중에 봄이 되면 나눔충전소에 나가보겠다고 하는 분들이 많아요. 나눔충전소가 시간이 갈수록 아파트 공동체 형성에 크게 기여할 것 같아요”라며 기대감을 보였다. 이 주무관은 “현재 나눔충전소는 신동아1단지 외에도 쌍문동 성원아파트와 창동 주공19단지아파트, 그리고 쌍문1동주민센터 외부 휴식공간 등에 설치돼 있다”며 “이곳들이 모두 주민공동체 복원에 기여하고 있다고 판단돼 올해 안에 더욱 많은 곳에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주무관은 나눔충전소가 정착되면 다음 단계로 음식을 나누는 나눔냉장고도 운영해보고 싶다 한다. 작은 나눔충전소가 큰 아파트 공동체를 만드는 날을 함께 기대해본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