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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주민·경비원의 ‘사회적 우정’ 시대 열자”

서울시 ‘고용안정 설명회’ 자치구마다 개최…성북동아에코빌 등 모범 사례 발표

등록 : 2018-02-2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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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 전환에도 ‘고용·급여 유지’ 명시

법적 의무 아닌 1년 미만 퇴직금 지급

관리비 부담 줄이며 쉴 권리 보장

퇴근제·정기휴무일 등 대안 제시

박원순 서울시장(맨 오른쪽)과 김영주 노동부 장관(오른쪽 둘째)이 지난 5일 성북구청에서 열린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용안정 및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 설명회’에서 모범사례 발표를 마친 김서현 성북동아에코빌 경비원(맨 왼쪽) 등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10년 전만 해도 아파트에서 자정이 넘어도 불을 끄지 못하게 했어요. 24시간 깨어 있는 상태로 근무하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최저임금 인상뿐 아니라 복지 조건도 많이 좋아졌어요.” (김서현 성북동아에코빌 경비원)

지난 5일 성북구청 아트홀에서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용안정 및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 설명회’가 열렸다. 서울시와 고용노동부, 성북구가 함께 연 이날 설명회에서 아파트 입주민과 경비노동자가 힘을 합쳐 ‘해고 없는 아파트’를 만든 성북동아에코빌 아파트가 소개됐다. 2002년부터 현재까지 경비원 17명의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이 아파트는 2015년 전국 최초로 경비원과 계약서에 ‘갑·을’(甲·乙) 대신 ‘동·행’(同·幸)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최저임금 인상을 앞둔 지난해 말, 퇴직적립금 등 관리비 부담이 늘어날까 우려한 입주자대표회의는 10년 넘게 유지해온 경비원 직접 고용을 위탁관리 방식으로 바꿨다. 대신 입주민, 경비원, 용역업체 3자 합의에 기반을 둬 용역업체와의 계약서에 △경비원 17명 모두 고용해야 한다 △급여를 기존과 동일하게 지급해야 한다 △급여를 1개월 이상 연체하면 용역업체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입주자대표회의 승인 없이 무단으로 경비원을 교체해서는 안 된다 △경비원이 쉬는 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휴게 장소를 제공해야 한다 등의 조항을 포함시켰다.


서성학 관리소장은 “동대표들이 ‘만약 우리 가족과 자녀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면 어떻겠느냐’며 오랫동안 경비원과 함께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심지어 1년 미만 근무한 경비원의 퇴직금과 연차수당 지급 안건도 격론 끝에 통과시켰다. 서 소장은 “피해를 볼 경비원들이 있어 관리소장으로서 안건을 상정했지만, 법적으로는 지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통과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경비원의 자의가 아니라 주민의 필요에 따라 용역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보상해줘야 한다는 동대표들이 더 많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경비원 직접 고용에서 위탁관리 방식으로 전환한 아파트를 모범 사례로 뽑은 데 대해 서울시는 “2015년 서울노동권익센터의 연구 결과, 서울지역 아파트 2035단지 가운데 82.2%가 위탁관리 방식을 택하고 있다. 자치관리를 시행하는 단지 상당수도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원과 직접 근로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용역회사를 통해 경비원을 고용하고 있다”며 “이런 현실을 고려해 대다수 아파트에 확산 가능한 사례로 성북동아에코빌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설명회에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과 함께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고용안정을 위협받고 최저임금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경비노동자를 위해 오는 27일까지 자치구마다 돌아가며 설명회를 열고 있다. 입주민과 경비원, 용역업체가 함께 일자리안정자금 등 지원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공동체적 삶이 기반이 되는 ‘사회적 우정’의 시대를 열자”고 말했다.

또 에너지를 절약·생산해 경비원 인건비를 보전한 석관동 두산아파트를 모범 사례로 소개했다. 2천 세대 규모의 이 아파트는 서울시 지원금과 주민 부담금을 합쳐 각 세대와 지하주차장의 형광등을 발광다이오드(LED)로 교체했다. 발코니에는 미니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했다. 새는 에너지를 막고 태양광 에너지를 생산한 결과 2016년 공용 전기 사용량을 2010년과 견줘 45%나 줄일 수 있었다. 세대별 전기 사용량은 12% 절감했다. 이렇게 아낀 돈은 경비원의 인건비 인상분을 보전하는 데 썼다. 용역업체에 요구해 ‘주민의 동의 없이는 경비원을 해고할 수 없다’는 규정을 만들고, 경비원이 여름철 불볕더위에도 전기료 걱정 없이 에어컨을 켤 수 있도록 경비실 외벽에는 소형 태양광 발전기를 활용한 냉방시설을 설치했다.

이날 설명회에선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입주민의 관리비 상승 부담과 경비노동자의 고용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근무 형태를 조정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안성식 노원노동복지센터장은 “해고 대신 퇴근제나 정기휴무일을 도입하는 식으로 근무 방식을 바꿔 근무시간을 줄이면, 임금 인상분을 적절히 조절하고 경비노동자의 노동 환경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대로 쉴 수 없는 무급 휴게 시간을 마구 늘리는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업무량이 적을 때 실제 근무시간을 줄여서 경비노동자들의 휴식권과 휴일권 등 쉴 권리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아파트 경비원은 24시간 격일제로 일하고 있다. ‘퇴근제’(당직주간교대)는 아침 6시부터 근무를 시작한 경비원 10명 가운데 절반인 5명은 밤 10시에 퇴근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경비원들은 24시간 근무와 16시간 근무를 번갈아 하게 된다.

‘정기휴무일제’는 경비원 10명에게 한 달에 하루 의무 휴무일을 지정해 연휴 없이 일하는 경비원들의 휴식권을 보장하는 방안이다. 정기휴무일을 적용하면 경비원은 한 달에 한 번 3일 연휴로 쉴 수 있다. 안 센터장은 “택배나 재활용 분리수거가 없어 상대적으로 업무량이 적은 날에 정기휴무일을 도입한 아파트가 이미 있다”고 소개했다.

한편 서울시는 서울노동권익센터와 8개 자치구 노동복지센터를 통해 무료 노무 상담·컨설팅을 하고 있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위탁관리업체에도 맞춤형 노무관리 방안을 컨설팅한다. 경비원은 부당노동행위 구제 상담을 받고, 실제로 부당해고를 당했을 때는 기초·심층 상담을 거쳐 소송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지난달 24일 서울시는 노무사·변호사·공무원·입주민 단체 관계자 등으로 이뤄진 ‘아파트 경비원 고용안정 특별대책반’을 서울노동권익센터에 꾸려 경비원 근로 실태를 전수조사하고 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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