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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작은 단위의 선출직인 구의원 선거에 출마해 우리 동네부터 바꿔보자고 모인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 20여 명의 참가자 가운데 출마를 결정한 예비후보들이 각자의 개성을 살려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 (윗줄 왼쪽부터) 이주명씨는 동네 카페 ‘다용도실’ 주인에게 인사를 건네고, 김정은씨는 망원동 월드컵시장 앞에서 팻말을 목에 걸고 자신을 알린다. 차윤주씨는 초등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바래다주는 주민들에게 명함을 나눠주고, 곽승희씨는 동네 바둑모임에 나가 주민들과 바둑을 두며 얘기를 나눈다. 류우종 정용일 기자 wjryu@hani.co.kr
“출마는 뭐고 정치는 뭐고/ 감시 견제 잘하는 기초 의회 설립/ 내가 한번 해보겠다”
지난 1일 만우절에 마포구 연남동의 경의선숲길에서 뮤지션 김제형씨가 ‘출마다운 출마’ 노래를 불렀다. 자신의 노래 ‘직업다운 직업’을 개사한 곡이다. ‘듣보(듣도 보도 못한)인 보통 사람들의 구의원 출마’를 응원하기 위해 만들었다. 공원을 거닐던 시민들은 신기한 듯 바라본다. 몇몇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이들 ‘듣보’ 지방선거 예비후보자들의 ‘출마의 변’에 귀를 기울였다.
올해 6월의 지방선거를 앞두고 투표 참여에 머무르지 않고 더 적극적 의미의 참여자, 즉 출마하는 주체가 되어보자고 생각한 시민 몇몇이 지난해 11월에 모였다. 가장 작은 단위 선출직인 구의원(기초의원) 선거에 출마해 우리 동네부터 바꿔보자고 다짐했다. 구의회는 생활정치의 장이고, 주민 참여의 문턱도 높지 않다. 해당 지역에 60일 이상 거주한 25살 이상 국민은 누구나 기탁금 200만원을 내면 구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 있고 겸직도 할 수 있다.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구프)의 시작이었다.
마포구 독립서점 ‘퇴근길 책한잔’ 대표인 김종현(35)씨가 앞장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20여 명이 모였다. 대부분 30대로 회사원, 학원 강사, 전직 기자, 독립 출판제작자, 주부 등 하는 일도 다양했다. 출마하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열심히 응원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3명은 지난 3월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이달 중 두어 명이 더 등록할 예정이다.
이날 출마 선언을 한 네 사람은 모두 30대 젊은이다. 곽승희(31)씨는 금천구 다선거구에서, 김정은(38)씨는 마포구 사선거구, 차윤주(36)씨는 마포구 나선거구, 이주명(36)씨는 은평구 아선거구에서 구의원에 출마한다.
이들에게 촛불시위는 혁명적 경험이었다. “2016년 겨울, 우리는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서 망가진 민주주의를 바로 세웠다. 정치는 더 이상 거창한 담론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정치가 우리 생활을 바꿀 것이란 믿음을 갖고 우리 동네에서 이를 실천하고자 한다.” 이들은 시민이 생활정치에 더욱더 참여해야만 대한민국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무소속 구의원 출마는 무모한 도전일지 모르지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임을 확신한다. 모두 “꼭 완주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구프 제안자인 김종현씨는 기존 선거운동 방식을 바꾸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예비후보 등록부터 선거운동을 해가는 모든 과정을 보여주고 공유할 생각이다. 동네 카페나 공원에서 작은 모임을 열고 온라인 중계도 생각하고 있다. 김씨는 “나이·직업·경험·경력 등과 무관하게 시민이면 누구나 동네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선거 방식도 바꿔가는 프로젝트로 발전했으면 한다”고 했다. 예비후보 곽씨, 김씨, 차씨는 지난달부터 제한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각자 처한 여건에 따라 선거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구프 멤버들은 선거준비 과정은 함께했지만 본격적인 선거운동에서는 각자의 의사를 존중하기로 했다. 예비후보자 3명은 많은 고민 끝에 기존 선거운동 방식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정해진 시간에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알려야 하는데, 시간과 돈이 부족하니보니 검증된 기존 방식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구프 제안자인 김종현씨는 기존 선거운동 방식을 바꾸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예비후보 등록부터 선거운동을 해가는 모든 과정을 보여주고 공유할 생각이다. 동네 카페나 공원에서 작은 모임을 열고 온라인 중계도 생각하고 있다. 김씨는 “나이·직업·경험·경력 등과 무관하게 시민이면 누구나 동네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선거 방식도 바꿔가는 프로젝트로 발전했으면 한다”고 했다. 예비후보 곽씨, 김씨, 차씨는 지난달부터 제한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각자 처한 여건에 따라 선거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구프 멤버들은 선거준비 과정은 함께했지만 본격적인 선거운동에서는 각자의 의사를 존중하기로 했다. 예비후보자 3명은 많은 고민 끝에 기존 선거운동 방식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정해진 시간에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알려야 하는데, 시간과 돈이 부족하니보니 검증된 기존 방식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무소속 구의원 예비후보들이 지난 1일 오후 마포구 경의선숲길 연남 구간에서 6·13지방선거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이들은 출판제작자, 학원 강사, 전직 기자, 회사원 등으로 구성된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를 통해 서울지역 구의원 선거에 도전한다. 왼쪽부터 곽승희 금천구 다선거구, 김정은 마포구 나선거구, 차윤주 마포구 사선거구, 이주명 은평구 아선거구 구의원 예비후보.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일찌감치 출마를 결심하고 지난 3월8일에 등록을 마친 곽승희씨는 자신의 장점을 살려 온라인에서 선거운동을 한다. 그는 온라인 언론사 기자였고, 지금은 퇴사 전문 무크지를 만들고 있다. 동네 주민 500여 명이 가입한 네이버 밴드에 예비후보들의 인사글은 조회수가 한 자릿수에 머물 정도로 환영받지 못했다. 그는 카드뉴스를 만들어 구체적인 공약을 올려 주민들의 반응을 들었다. 세계 강아지의 날을 맞아 금천구에 반려견 공원을 만드는 게 어떤지 의견을 물었더니 반응이 좋았다. 조회수도 꽤 되고 댓글도 달렸다. 앞으로 영상도 만들어 페이스북과 유튜브에도 올리려 한다.
곽씨는 “처음엔 유권자들을 만나 프로젝트의 의미와 진정성을 전하면 표를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주어진 조건에서 최대한 창의력을 발휘해 선거운동을 하려 한다.
곽씨는 바둑 아마추어 3단이다. 선거운동에 나서면서 동네 주민들 바둑모임에 나가기도 했다. 바둑을 둘 때 그는 상대방이 허점을 보이면 적극 공세를 펼쳐 승부를 본다. 아직 자기 이름이 적힌 점퍼를 입고, 자기 사진이 박힌 명함을 나눠주는 일이 어색하고 부담스럽지만, 곽씨는 승부를 피하진 않는다. 곽씨와 바둑을 뒀던 주민 안희찬씨는 “우리 동네에서 30대 여성 후보가 나오는 건 신선하고 좋다”고 격려했다.
김정은씨의 어깨띠에는 ‘저도 퇴근했습니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다. 김씨는 밤 10시께 동네 지하철역 출구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주민들에게 인사를 한다. 김씨는 지금 초·중·고 학원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다. 김씨가 꿈꾸는 기초의원은 평소에는 생업에서 열심히 일하다 회기에는 의회로 달려가는 북유럽형 의원이다. 그런 뜻에서 선거운동은 일하러 가기 전 오전 시간과 일을 마친 저녁 시간에 한다.
김씨는 기존 정당의 싸우고 강한 정치인이 아니라, 무소속으로 봄날처럼 가볍고 산뜻하고 발랄한 선거운동을 하려 한다. “선거 끝난 뒤에도 살 동네잖아요. 재미있고 따뜻하게 선거운동을 한 후보자로 남고 싶어요.” 친구의 조언으로 홍보물 디자인 콘셉트를 ‘슈팅 스타’로 잡았다. 명함, 어깨띠, 티셔츠 등 홍보물에 적용했다. 민트, 핫핑크, 노랑 등 눈에 띄고 밝은 이미지를 전하는 색을 썼다.
그는 자기 명함에 라벤더 오일을 살짝 발라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명함에 불필요하게 돈을 쓰냐고 지청구를 듣기도 했지만, 제 명함을 받는 사람들이 잠시라도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걸로 충분히 투자할 만하다고 생각해요.” 사회적으로 남북 교류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배 안 나온 김정은, 핵 없는 김정은’이라고, 유권자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게 슬로건도 만들었다.
차윤주씨는 아마추어 사이클 대회에 참여할 만큼 자전거 마니아다. 차씨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 골목을 돌아다닌다. 3월22일 아침 마포구 창천초 앞에서 배낭을 메고 청바지와 가죽 재킷을 입은 차씨가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젊은 부모들에게 명함을 건넨다.
바쁜 걸음으로 명함을 받지 않는 사람도 있다. 차씨는 이들에게는 “죄송합니다” 하고 인사한다. 유권자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싶지 않아서다. 선거 경험이 많은 학교보안관이 “쭈뼛거리지 말고 명함을 주면서 확실한 한 표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고민 끝에 차씨는 선거사무실을 열고 건물 외벽에 대형 펼침막도 내걸었다. ‘12년차 기자 차윤주, 내 세금 좀 감시해 줄래요’라는 글씨와 커다란 얼굴 사진이 박혀 있다. 애초 선거사무소를 만들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펼침막을 걸어 이름을 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남들과 다르게 선거운동을 하려 했지만, 세상에 쉬운 일이 없네요.”
몇몇 주민은 “당선되어야 뜻을 이룰 수 있으니 무슨 정당이든 들어가라”고 권하기도 한다. 차씨는 평범한 시민의 무소속 출마라는 구프의 취지를 간곡히 설명한다. ‘반 보만 앞서가겠다’는 생각으로 유권자의 인식 수준에 맞춰 선거운동을 하려 한다.
30대 무소속 후보자가 왜 나왔는지, 뭘 할 건지 궁금해하는 동네 주민들이 명함에 적힌 연락처를 보고 전화를 주기도 한다. 동네에서 오래 살며 활동하는 주민들이 경의선 숲길 청소 봉사활동에도 불러 같이 했다.
이주명씨는 출마를 결심했지만 후보 등록은 아직 하지 않았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이씨는 일하면서 혼자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 여건에 맞춰 자신만의 선거 전략을 세웠다. 주민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주는 방식으로 자신을 알리려 한다. 은평구 대조동의 맛집과 ‘힙한’ 카페 등을 구글 맵에 담아 온라인에 올리고, 엽서(큐아르 코드, 웹 주소)로 만들어 가게에 비치할 계획이다.
영상도 만들려 한다. 뮤직비디오를 찍는 후배들의 지원을 받아 연신내 동네 골목을 영화 느낌 나는 영상으로 만들어 페이스북과 유튜브에서 배포할 예정이다. 4월 중 예비후보 등록을 한 뒤 퇴근 시간과 주말에 동네 유권자들에게 명함을 나눠주려 한다.
지난 3월23일 저녁 은평구 대조동 카페 ‘다용도실’에서 이씨는 카페 주인에게 인사를 건네고 자신의 계획을 얘기했다. 음악 강사였던 30대 카페 주인은 두 달 전 가게를 열었다며 “6년째 살고 있는 동네에서 이웃사촌을 만들고 싶어 알음알음으로 모임을 만들고 있는데, 비슷한 생각을 하는 또래 구의원 후보를 만났다”며 반겼다.
이씨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막상 저 자신을 홍보하려니 어색하다”며 “책자와 온라인 홍보에 주력하고 누구든 생활정치인이 될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두고 싶다”고 말했다.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