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시각장애 딛고 장애인 학대·차별 피해자 공익 소송 앞장

인터뷰ㅣ장애인의 날 맞아 서울시 복지상 대상 받은 시각장애인 변호사 김동현씨

등록 : 2019-04-18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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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인권 분야 기여한 공로로 대상

의료사고로 시력 잃고도 변호사 자격

장애인인권센터 소속으로 공익소송

“피해장애인 보호 시설·쉼터 부족”

로스쿨 재학 중이던 30살 무렵에 의료사고를 당해 시력을 잃은 김동현 변호사가 강남구 도곡동 서울시장애인인권센터 앞에서 학대·차별에 처한 장애인을 구조하는 인권센터 업무를 설명하고 있다. 앞이 안 보여 카메라를 제대로 응시하지 못한 그는 “사고를 당한 뒤 절에 가서 눈을 뜨게 해달라고 3천배를 하는 동안 마음의 눈을 떴다”며 장 애인이 되면서 겪은 개인적 일화도 무겁지 않게 들려줬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20일은 제39회 장애인의 날. 서울시는 시각장애를 딛고 장애인 학대와 차별 피해자를 위한 공익 소송 등 법률구조 활동을 해온 서울특별시 장애인인권센터 차별·학대사건 전문 변호사 김동현(37)씨를 제15회 서울시 복지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지난 17일 서울무역전시장(SETEC)에서 열린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 ‘함께서울 누리축제’에서 시상식을 열었다.

시각장애 1급 장애인 당사자로서 장애인 인권 분야에 기여한 공로로 대상을 받은 김 변호사는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장애인 피해 구제 활동을 해온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이하 인권센터)가 상을 받는 것이 마땅한데, 직원 15명 중 현재 유일한 장애인 근무자이다보니 대표로 받게 된 것 같습니다. 함께 일하고 있는 센터 식구들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공대(카이스트)를 졸업하고 IT전문 법률가를 꿈꾸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판사의 꿈을 키우던 중 의료사고로 시력을 잃는 비운을 겪었으나, 불굴의 의지로 학업을 계속해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2015년 한 해 100여 명 정도 선발하는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에 시각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뽑혀 2년간 근무하기도 했다. 서울시장애인인권센터에서는 2017년 3월부터 일했다.


김 변호사는 인권센터에서 주로 휴대폰 명의도용 피해 구제 소송 노동력 착취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보험 가입 거부로 인한 장애인 차별 금지 소송 등 여러 건의 공익 소송을 했다.

휴대폰 사기나 노동력 착취 등은 장애인에게 물질적 피해는 물론 정신적 좌절을 안기는 반사회적 악질 범죄에 가깝다. “읽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이름 쓰기도 어려운 장애인에게 휴대폰을 5~6대나 가입시킨 뒤 수백만원의 통화료를 뒤집어씌운 ‘악당’이 있었어요. 끝내 범인을 찾지 못해 통신사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소송을 내서 승소했는데, 이겨도 씁쓸한 사건이었죠.” 양어머니를 자처한 여성이 수년 동안 장애인 젊은이를 취업시키고 임금을 대신 받아 갔던 노동력 착취 사건도 기억에 남는 소송이다. 현재는 장애를 이유로 생명보험 가입을 거부한 보험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지원하고 있다.

“주로 고발장을 쓰고 소송을 지원하고 있지만, 사건을 직접 조사하고 소송을 제기할 권한은 없어요. 그러다보니 많은 지원 활동에 한계를 느끼기도 합니다.”

그는 장애인 학대나 차별 구제를 위한 활동의 어려움으로 피해 장애인을 보호하고 재활을 돕는 시설이나 쉼터의 부족을 꼽는다. “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초반 조처는 어느 정도 되지만, 문제는 학대에서 격리된 장애인들이 갈 곳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어떨 땐 구출 필요성을 생각하기에 앞서 이들을 보호할 공간을 먼저 찾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하고 걱정한다.

장애인 당사자이자 법률가로서 현장에서 느낀 장애인 정책의 문제점으로, “예산 부족도 틀린 말이 아니지만 핵심은 예산이 사용되는 전달체계의 비효율성입니다. 요건이 돼도 지원을 못 받는 장애인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데도 지원이 몰립니다. 장애인 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공유할 지휘센터 기능이 필요해 보입니다”라고 짚었다.

김 변호사는 30살 때인 2012년, 간단한 안과 시술을 받은 것이 불행하게도 의료사고로 이어지며 시력을 잃었다고 한다. 그러나 낙천적인 성품의 김 변호사는 시력이 없다고 공부를 못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선 시각장애를 극복한 선배 법조인들이 닦아놓은 길이 있었고, 동료와 학교, 복지재단 등이 많은 도움을 준 것이 큰 힘이 됐습니다.” 그를 정작 힘들게 한 것은 좌절감. “한 달간 절에 들어가 3천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3천배에 도전하는 동안 조금씩 마음의 눈을 뜨게 된 것 같습니다”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그는 요즘 동료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전자회사를 상대로 한 장애인차별금지 집단 소송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많은 전자제품이 터치패드로 작동하게 되면서 시각장애인들이 첨단 기술을 사용할 수 없는 현실을 개선해보려는 것이다.

아직 미혼인 그는 “사고 후 소개팅이 끊어졌다”면서 “한 번도 이상형 배우자를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이제는 좀 생각해봐야겠다”며 웃는다. 그의 현실적인 목표는 판사 임용. 애초 로스쿨에 갈 때의 목표였는데, 장애를 겪으며 미뤄졌다. “변호사 일을 좀더 열심히 하고 내년에는 판사 임용에 지원해볼 생각입니다.”

서울시 복지상(장애인 인권 분야)은 장애인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사회통합에 이바지한 시민에게 주는 상으로, 2005년부터 시작됐으며 장애인 당사자 분야는 장애를 딛고 자립해 우리 사회에서 전문성을 발휘한 사람에게 준다.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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