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동장실 없애고, 벽 허물고, 24시간 문 열어놓고

복지는 늘리고 공동체 키우는 주민의 공간…찾아가는 동주민센터로 변신한 3개 동

등록 : 2016-06-02 14:39 수정 : 2016-06-02 14:49

크게 작게

동주민센터는 공무원이 주민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대면해 행정업무를 하는 최일선 행정기관이다. ‘동회’라고 했다가 ‘동사무소’로 이름을 바꾼 것이 1955년이고, 행정 기능에 시골의 마을회관 기능을 더해 ‘주민센터’로 이름을 바꾼 것이 2007년이다. 공공서비스 영역이 확대되면서 주민의 행정 수요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졌고, 주민자치 역량도 확대하고자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주민센터로 바뀐 지 10년이 다 됐지만 여전히 시민들은 ‘동사무소’라고 한다. 시민들의 인식을 바꿔놓기에는 그동안의 기능 변화가 미미했던 탓이다.  

서울시는 주민센터를 ‘시민들의 복지와 건강을 살피고 지역의 공동체를 지원’하는 기관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이하 찾동) 사업을 시작했다. 찾동 사업의 목표는 복지의 패러다임을 ‘기다리던 복지’에서 ‘찾아가는 복지’로 전환해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동주민센터에 사회복지직 공무원과 방문간호사를 늘려서 배치하고 있다. 또한 어렵고 힘든 이웃이 어디에 있는지, 이웃끼리 알리고 함께 돌볼수 있도록 마을에 복지생태계를 조성한다는 목표도 세우고 있다.  

주민센터 공간 개선도, 동주민센터 직원들의 업무 효율화와 함께 주민들이 주민센터를 즐겨 찾을 수 있도록 소통의 공간을 확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는 무엇보다 주민의 의견을 반영해 동주민센터에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반 주민들에게는 부족할 수밖에 없는 건축 전문 지식은 건축가들이 보완할 수 있도록 74명의 건축가가 참여하는 공간개선단도 꾸렸다. 이들은 주민센터를 찾아가 주민들에게 공간 개선의 취지를 설명하고, 공청회를 열어 주민의 의견도 수렴해 설계와 시공 과정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서울시는 424개 동주민센터 가운데 지난해 74곳의 공간을 바꿨다. 공무원들도 동장실을 폐쇄하고 업무 공간을 줄이는 등 적극 나서고 있다. 달라진 동주민센터에서는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지역을 위한 의견을 펼치며 주민센터의 기능 변화 가능성을 확인해 주고 있다.  


동주민센터 공간 개선 사업은 행정의 일이기 전에 공동체를 회복하는 시민의 일이기도 하다. 아직도 ‘동사무소’에 머무르고 있는 우리 동네 주민센터를 달라지게 하기 위해 시민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지난해 사업을 마친 74개 동 가운데 확 달라진 동주민센터 세곳을 참고해 보자. 박용태 기자 gangto@hani.co.kr

비탈길의 경사를 완만하게 해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도 이용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도록 바꾼 마장동주민센터 입구.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마을을 끌어 들인 유리문

마장동주민센터

마장동주민센터는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2015년 제8회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주민센터에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미끄럼틀 같은 작은 놀이기구를 놓고, 장애인들이 보조 인력의 도움 없이도 방문할 수 있도록 완만한 비탈길을 만들었다. 공무원과 방문 민원인의 거리를 좁혀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한 공간 개선 노력이 평가를 받은 것이다.  

공공건축가로서 마장동주민센터 공간 개선 작업에 참여한 정이삭 에이코랩 소장은 공간 개선 백서에서 “주민센터 앞쪽으로는 다양한 장면이 펼쳐진다. 주민센터를 둘러싼 환경을 주민들이 자신의 영역처럼 편안하게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며 마장동주민센터의 공간 개선 사업의 방향을 설명했다.  

주민의 의견을 반영해 만든 마장동주민센터 실내는 여느 카페 못지않은 분위기를 자랑한다. 1층 들머리에 설치한 긴 테이블은 머무는 사람에 따라 때로는 북카페로, 때로는 사랑방이나 회의실로 바뀐다. 건강을 간단히 점검할 수 있도록 한 ‘건강이음터’도 마장동주민센터의 새로운 자랑이다. 뒤쪽에는 간단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주민과 직원 사이의 민원 창구대도 폭을 1m에서 50㎝로 줄여 주민과 직원 간의 친밀감을 높였다. 제법 크게 꾸민 아이들 놀이 공간도 아이가 민원 업무를 보는 부모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배려했다. 직원들에게 업무 공간은 줄어들었지만 기분 좋은 변화가 일어났다. “변화는 공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직원들의 인식까지 변화하고 있다. 공유 공간에 대한 긍정적 반응은 동주민센터를 모두의 공간으로 만드는 데 한몫을 할 것이다.” 마장동주민센터 남강우(53)동장의 말에는 공동체를 복원하는 데 동주민센터가 확실한 디딤돌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복지플래너를 비롯해 20명의 인원이 충원되는 시흥1동주민센터는 부족한 공간을 재배치하고 사무용 책상 디자인을 유선형으로 변경해 업무 공간을 확보했다. 서울시 제공

주민을 포옹하는 복지 공간

시흥1동주민센터

시흥1동 주민센터는 복지 패러다임 전환을 목표로 하는 ‘찾동’ 사업의 전형이다. 찾아가는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복지플래너, 방문간호사 등 직원이 20명이나 충원된 상황에서 기존 공간을 합리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동주민센터의 업무는 민원 행정과 주민복지 비율이 기존 7:3에서 3:7 정도로 변화를 앞두고 있었다.

“민원인의 종류를 세분화해서, 업무 처리에 걸리는 시간과 업무의 성격을 따져 보았다.” 공공건축가로 참여한 전진홍 B.A.R.E 소장의 첫걸음은 업무의 밀도를 따져, 출입구 쪽은 많은 사람이 간단한 민원 업무를 보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하고,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올수록 적은 사람이 오래 상담을 받아야 하는 업무를 배치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일반행정 업무와 복지 업무로 일을 나눠 공간을 설계했다. 원스톱 민원창구를 설계해 기존 행정 업무를 간소화할 수 있는 기반도 만들었다.  

업무에 필요 없는 회의실이나 문서함 등은 업무 공간과 분리해서 2층에 배치해 최대한 업무 공간을 확보했다. 기존 가구도 공간 확보를 위해 폭은 줄이고 길이는 유지할 수 있는 유선형 책상으로 바꾸었다. 주민 수요가 높은 복지 상담을 위해 간이탁자부터 동주민센터 중앙에 독립형 상담실까지 다양한 상담 공간을 두었다.  

복지 수요가 높은 지역인 만큼 프라이버시가 유지되는 독립형 상담실은 이용이 활발하다 한다. 이러한 변화는 동장실 철거, 책상 축소 등을 받아들인 공무원들의 의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동장은 사무실 앞쪽에 책상을 두고 업무를 본다.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동장과 만날 수 있어 업무 효율성이 높아졌다. 시흥1동주민센터는 주민들을 감싸안는 복지 공간으로 이렇게 다시 태어났다.

시멘트 벽 대신에 유리벽을 설치한 뒤 실내가 한층 밝아진 송정동주민센터 모습. 민원대 위의 셔터가 내려오면 다른 공간으로 변신한다. 장철규 기자

문화와 행정이 손을 잡다

송정동주민센터

50여명의 관객을 모신 작은 음악회. 경찰서와 성수종합복지관, 동주민센터가 함께 만든 음악회는 송정동주민센터가 변신한 탓에 열릴 수 있었다.  

골목 한쪽 비탈에 자리잡은 송정동주민센터의 건물 외관은 마을사랑방인 듯 여유로웠지만 내부는 폐쇄적이어서 갑갑했다. 송정동주민센터 공간 개선 사업에 참여한 이선영 서울시립대학교 교수는 서울에서 드물게 마을 분위기를 간직한 송정동의 특색을 살리고자 길과 주민센터를 연결하는 ‘실내 공공가로’ 개념을 도입했다. “정보와 생각이 교류하는 길처럼 개방적인 내부 공간”을 만들기 위해 업무 공간을 나누고 유휴 공간을 확보했다. 이 교수는 “대민 업무가 끝나고 셔터만 내리면 분리되는 공유 공간인 실내 공공가로에서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길 기대했다”고 한다.  

주민센터 업무 공간을 양쪽으로 나누고 4개의 셔터를 설치하니 문 앞부터 테라스로 이어지는 실내 공공가로가 만들어졌다. 거리의 다양한 풍경을 끌어들이려고 벽을 헐고 유리문을 설치했다. 벽 뒤의 사용하지 않던 자투리 공간은 테라스로 꾸며 주민센터 공간을 외부로까지 확장했다. 유리문 앞으로 전동스크린과 빔프로젝트까지 설치하니 실내가로 공간은 모두의 극장이자 회의실이기도 한, 공동체의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작은 음악회가 가능했던 건 이런 공간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황순선 동장은 “실내 공공가로에 폐회로티브이(CCTV)만 설치되면 24시간 열어놓을 계획이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지구대와 연계해 순찰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송정동 주민센터는 문화와 행정, 공무원과 직원이 함께하는 마을의 공간으로 변화한 것이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