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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50만원 싣고 온 채소상인 잊지 못해

<서울&> 긴급 설문조사에 나타난 악전고투 2개월의 생각│이성 구로구청장

등록 : 2020-04-02 16:22 수정 : 2020-04-02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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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두 달 넘게 ‘코로나19’ 방역 행정의 최일선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서울 25개 자치구 구청장을 상대로 긴급 설문조사를 했다.

일반 주민들에게 전염병 방역을 통해 자치구의 중요성이 여느 때보다 부각됐다는 점에서 구청장들이 방역 현장에서 느꼈던 생각을 원문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해 온라인에서는 축약없이 전재한다.

이성 구로구청장. 구로구청 제공

1. 코로나사태를 통해 방역 최일선에서 뛰는 자치구의 중요성이 높아졌습니다. 구청장으로서 가장 위기를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으며, 어떻게 대처했는지요.

3월 8일 오후 노원구 확진자가 코리아빌딩의 11층 콜센터 직원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콜센터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느낌이 안 좋았다. 즉시 현장을 조사해보니 밀집한 근무 환경으로 집단감염의 우려가 높아 보였다.

지침대로라면 해당 층을 방역 소독하고 접촉자를 자가격리 조치하는 정도에서 끝났겠지만 구로구는 즉각 해당 건물 11층을 폐쇄하고 이와 동시에 11층 근무자 209명의 명단을 확보해 서울·경기·인천 자치단체에 알렸다.


그리고 11층 근무자 전원 검체 검사를 지시했습니다. 3월 9일 하루 동안 11층 콜센터 직원 54명이 검사를 받았고 13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몇 명이 감염자일지, 원인이 누구일지, 2차 감염은 어느 정도일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구로구는 확산을 막기 위해 즉시 1층부터 12층까지 전면 폐쇄를 결정하고 건물 옆에 긴급하게 임시 선별진료소를 설치한 후 10일부터 3일간 검사를 진행했다. 하루 574명을 검사한 날도 있었습니다. 타 자치단체에도 빌딩 근로자들 명단을 확보해 보내주고 검사 받게 했다. 이를 통해 해당 건물 거주자와 근로자 등 1,115명 전원에 대한 검체 검사를 실시했다. 신속한 대응으로 최단 시간 내 확진자를 가려내어 격리 이송함으로써 지역사회로 2차, 3차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가 있었고, 집단 감염의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생각한다.

2. 방역대책을 펴면서 가장 보람찬 순간과 아쉬운 장면을 꼽아주세요.

선제적 조치로 제대로 된 예방이 이뤄질 때 보람을 느낀다. 우리구는 지난달 21일 긴급 종교단체 간담회를 마련해 집회를 자제해 주실 것을 부탁드렸다. 종교단체가 집회를 포기한다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관내 많은 종교단체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셨다. 요양병원, 요양원 등에도 2월 초 가족과 외부인의 면회를 막아 달라는 부탁을 드렸고 잘 지켜주고 계신다.

수많은 주민들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전달해 달라며 성금 성품을 주실 때도 보람이 크다. 아직은 살아있는 대한민국의 정을 느낀다. 이 분들 중에는 전 재산 56만원을 들고 온 기초수급자, 50만원 동전꾸러미를 손수레에 끌고 오신 허름한 야채가게 사장님도 있다.

콜센터의 열악한 환경을 미리 파악하지 못해 예방하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아쉽다.

3. 큰 틀에서 앞으로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집단 전염병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서 일선 행정기관에서 보완해야 할 시스템이 있다면? 마스크를 일선 통반장을 통해 일괄 배포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감염병 관리 일선 기관인 기초자치단체의 권한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 기초자치단체가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대응 매뉴얼도 구체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감염병 관리 조직과 시설, 시스템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 평상 시 신종 감염병을 대비해 의료기관, 보건소, 경찰서 등 유관기관의 협조 체계를 긴밀히 유지하고 회의, 모의훈련 등을 통해 대응력도 높여야 한다.

마스크는 한 번 지급하고 끝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전 주민들에게 2~3장씩 일괄 배포하면 하루에 1장을 사용한다고 가정할 때 2, 3일 만에 효과가 사라진다. 전 주민 일괄 배포보다는 마스크를 확보하기 어려운 분들에게 꾸준한 공급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 구로구는 취약계층에게 꾸준한 마스크 보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4. 코로나사태로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이 독거 어르신이나 기초 수급자 등 취약계층인 것 같습니다. 각 구청에서 지원책을 펴고 있지만 충분치 않은 듯합니다. 이에 대한 보완책은?

기초수급자, 독거어르신, 장애인 등 사회 취약계층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구로구는 이들에게 마스크를 배부하고 주 2회 이상 전화로 건강상태를 살피고 있다.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 직접 집으로 찾아가 확인한다. 복지시설의 경우 코로나19 전파 우려가 있어 전면 개방은 어렵지만 필수적인 돌봄서비스 기능은 유지하고 있다. 또한 관내 복지관과 어르신돌봄통합센터에서는 저소득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대체식을 비롯해 밑반찬, 도시락 등을 제공한다. 지역사랑상품권 또는 선불카드 등을 통한 생활비지원도 실시한다.

5. 불철주야 최일선 방역전선에서 진두지휘하면서 여러 감회를 느꼈을 줄 압니다. 소회가 있으면 어떤 것이든 써주세요.

코로나19로 인한 국가 비상사태를 맞아 구청의 방역 행정을 신뢰하고 자발적으로 개인위생 실천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해 주신 주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또한 한 달 넘게 비상근무를 지속하며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하고 있는 구청과 보건소, 여러 기관 관계자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코로나19의 위협으로부터 주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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