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이 간다

‘책 읽는 송파’는 ‘행복한 도시, 송파’의 디딤돌

박춘희 송파구청장 “북카페 인증 제도, 신생아에 책 선물하는 북스타트데이 등 독서 부흥 위해 최선”

등록 : 2016-06-23 15:31 수정 : 2016-06-2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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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공원 안 지샘터 도서관에서 박춘희 송파구청장은 인터뷰를 하면서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장수선 인턴기자 grimlike@hani.co.kr

‘책 읽는 송파’. 서울의 25개 자치구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은 자치구 송파의 꿈이다. 언제 어디서든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시, 책으로 여는 행복도시 송파는 최근 호주 시드니에서 개최된 세계적인 프리미엄 비즈니스 혁신상인 ‘2016 아시아·태평양 스티비 어워즈’ 시상식에서 금상 2개, 은상 1개를 받았다.  

‘스티비 어워즈’는 아시아·태평양 22개국 기업·단체·공공기관의 경영 성과 등을 평가해 시상한다. 책과 비즈니스는 어떤 상관관계일까? ‘송파 산모건강증진센터’를 세워 출산 친화적 환경을 만들고, 영·유아 양육에 필요한 다양한 복지 정책을 효율적으로 펼쳐 저출산 극복을 위한 행정을 추진한 점(서비스 혁신 부문 금상). 송파구 구정 발전 중장기 종합계획서 <송파 비전 2020>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소비자 중심의 전략적 접근(출판물 혁신 부문 금상). 러버덕과 1600만 마리 팬더를 활용한 ‘석촌호수 관광명소화 사업’(이벤트 활용 혁신 부문 은상)이 주최 측이 밝힌 시상 이유다. “우리는 직원들이 다 했어요. 국제적인 상을 받기 위해서는 제안서 등이 필요하잖아요. 보통은 대행사에 맡기는데, 우리는 직원들이 다 했어요.” 인터뷰가 끝날 즈음 찾아낸 책과 국제적인 상 수상의 상관관계였다. 업무에 필요한 역량을 갖게 한 데에는 책의 힘이 있었다.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지샘터 도서관’에서 박춘희 구청장(61)을 만났다.    

공중전화 부스를 활용한 거리 도서관  

박 구청장은 분식집을 운영하다 39살에 사법시험에 도전해 10년만에 합격했다. 왜 사시를 쳤느냐는 질문에 “아이들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박 구청장이 살아온 인고의 세월을 염두에 두고 행복의 기준을 물었다.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배려하며 함께 사는 게 행복 아닐까요?” 이어지는 답변은 길었다. 무상복지 논란에 대한 박 구청장의 생각이 행복론과 함께 설명됐기 때문이었다. “무상복지는 가진 자도 더 달라는 의미로 비춰질 수 있어요.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한 배려 없이 더 가진 자도 똑같이 받겠다는 건 문제가 있어요.” 박 구청장이 말한 배려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인정을 의미한다. “쌓아올린 것들에 대해 존중과 인정이 있어야 함께 행복할 수 있습니다. 가진 자 역시 자기가 이룬 것이 혼자가 아니라, 모두의 도움으로 가능했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하고요.”  

박 구청장은 배려와 존중이 함께하는 사회가 되려면 지식과 함께 지혜를 키울 필요가 있다고 믿기에 책 읽는 송파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박 구청장은 요즈음의 세태를 “검색만 있고 사색이 없다”는 말로 대신했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지식은 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은 지식만으로는 안 돼요. 지혜가 필요하지요. 지혜를 얻는 것이 과연 검색만으로 가능할까요? 지혜는 사색을 통해 만들어지고, 사색은 경험에서 나옵니다. 직접 경험인 여행, 체험이 어렵다면 차선책이 바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구청장의 바람은 송파구를 11개의 구립 도서관을 가진 도시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도서관만 늘린 게 아니다. 책과 주민의 접점을 넓히려는 노력도 돋보인다. 버스정류장 인근의 공중전화 부스를 활용한 책꽂이는 도서관을 찾기 힘든 구민들을 위한 배려다. 누구나 책을 빌려 갈 수 있고 반납할 수 있다.  

“책은 가까이 두면 언젠가는 읽게 돼요. 저도 자동차 안, 식탁, 잠자리 머리맡 등에 늘 책을 두어요. 시간이 부족해 책 한 권을 모두 읽기 힘들지만 몇 쪽이라도 중요한 이야기들을 찾아 읽는 거지요.” 박 구청장의 이런 생각은 버스정류장의 간이 도서관뿐 아니라 새마을문고와 동네 카페까지 바꾸고 있다. “동마다 있는 새마을문고의 장점은 개방성과 가까움인데, 시설이 낡아 주민들이 발길을 끊었어요. 이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려고 주민친화형 작은도서관으로 새로 단장했습니다. 시설을 개선하니 가끔 책을 빌리던 주민들이 이제는 문고 안에 앉아 책을 읽고 있습니다.” 송파구는 관내 22개 새마을문고 가운데 12군데를 개방형 작은도서관으로 꾸몄다. 올해 두 군데를 추가할 예정이다. 늘어나고 있는 북카페도 책 읽는 송파를 만들어 가는 작은 디딤돌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약간의 소음과 커피 향이 있는 카페에서 책 읽고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런 변화에 맞춰 관내 북카페 가운데 10곳에는 인증표도 붙였습니다.” 송파구가 관내의 북카페 가운데 일정한 시설을 갖춘 곳을 선정해 인증도 해 주고 홍보도 돕고 있다. 이러한 일은 어려운 동네 상권을 돕는 일이기도 하다. 송파구는 인증 사업을 지속해 기존 카페의 시설 개선까지도 도모할 계획을 갖고 있다.  


송파구는 도서관을 특성화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이용률을 높이고 있다. 2014년 문을 연 어린이를 위한 ‘돌마루 도서관’은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관내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도서관 이용 방법과 예절 교육을 가르치고, 도서 대출 회원증도 발급했다. 또한 동화책도 읽어 보게 해 어릴 때부터 올바른 독서 습관을 갖도록 돕는다. 도서관 태교인 ‘아가 마중’ 사업도, 출생 후 6개월이 되면 구청이 무료로 책꾸러미를 선물하는 ‘북스타트데이’ 사업도 영·유아기에 책 읽는 습관을 갖게 하려고 시작한 것들이다. 빗물 펌프장을 고쳐 문을 연 송파 어린이영어도서관은 2013년부터 ‘세계 도서관 만나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뉴질랜드, 영국, 미국, 캐나다 등 영어권 국가의 도서관을 소개해 세계 각국의 독서 문화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가락시장에 식문화 전문 도서관도 개설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도서관 운영도 돋보인다. 다문화 가정이 많이 사는 마천동의 ‘소나무언덕 3호 작은도서관’은 중국 출신 다문화 강사가 중국 동요를 가르친다. 중국어를 배우며 다문화에 대한 이해를 도와 지역의 화합을 이끌려는 시도다.  

“도서관에 웬 쿠킹 스튜디오냐고 놀라실 테지만, 가락시장 시설현대화사업에 따라 만들어진 만큼 가락시장이라는 특수성을 반영해, 식문화 특성화 도서관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보유 장서 중 상당수가 식문화 자료예요.” 올 3월 문을 연 ‘가락몰 도서관’에 대한 박 구청장의 자랑이다. 805㎡(약 240평) 규모의 도서관에는 어린이자료실, 일반자료실, 유아자료실은 물론 쿠킹 스튜디오도 마련돼 있다. 박 구청장은 가락몰 도서관을 우리나라 최고의 식문화 도서관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주민들에게 지혜를 선물하기 위해 시작한 ‘책 읽는 송파’ 사업은 결실을 맺어 가고 있다. ‘나는 한 번도 내가 노력한 것 이상의 것을 바란 적이 없다’고 자서전에 쓴 박 구청장은 ‘책 읽는 송파’를 얻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피하지 않는다.  

“지식정보 인프라 구축과 구민 문화복지 시설 확충의 필요성을 앞세워 국민체육진흥공단과 꾸준히 대화했어요. 그 결과 경륜장 폐쇄로 생긴 유휴 공간인 이곳에 지샘터 도서관이 문을 열게 된 거지요.” 박 구청장이 인터뷰 장소로 지샘터 도서관을 선택한 이유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핑계 대신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책 읽는 송파를 만들어 가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행복 도시, 송파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글 정고운 기자 nimok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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