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공유
꿈꾸는 마을은 주민들이 사소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며 시작된다. 창2동 주민센터의 벽면에 설치된 희망나무에는 주민들이 바라는 마을이 적혀 있다. 장수선 인턴기자 grimlike@hani.co.kr
지난달 11일 서울 도봉구 창2동 주민센터 뒤 분수공원. 오전 10시가 넘자 공원 광장 그늘막 아래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10살 남짓한 어린이부터 10대 중·고생, 30~40대 아저씨 아줌마, 70~80대 어르신까지 그야말로 ‘무지개’ 빛깔이다. 금세 100여 명이 된 주민들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인사를 나누며 마을신문을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오전 11시, 에어로빅 공연 등 축하 무대가 끝나자 창2동 마을계획단의 김미선 단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창2동 마을총회를 시작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함께 발굴한 의제를 좀 더 많은 주민과 공유하고, 투표를 통해 실행 순서를 결정하는 자리입니다. 오늘 결정에 따라 순차적으로 마을 문제 해결에 나서려면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더 필요합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는 서울살이에서, 이름마저 낯선 ‘마을총회’는 이렇게 시작됐다. 250개 의자가 꽉 찼고, 서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김 단장은 지난 5개월 동안 마을계획단이 한 일들을 소상하게 소개했다. 지난해 12월 주민 130여 명으로 구성된 마을계획단은 청소년·문화·나눔·환경·동아리의 5개 분과로 나뉘어 창2동의 문제가 무엇인지 살폈다. 그리고 지난 5월 △창림초등학교 안전한 통학길 만들기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깨끗한 우리 동네 △창2동 추억창고 만들기 △다문화가정 좋은 이웃 되기 △주민이 운영하는 마을회관 확보 △청소년 진학·진로 학부모 코치단 구성 △우산이 있는 버스 정류장 등 7개의 마을 의제를 추려냈다.
각 분과의 단원들은 직접 무대에 올라 각각의 의제를 설명하고 지지를 당부했다. 의제 설명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주민들은 줄을 지어 광장에 마련된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었다. 주민마다 3가지 의제를 고르는 방식이다. 이날 현장에서 투표한 420명과는 별개로 302명이 미리 온라인 투표를 했다. 모두 722명의 창2동 주민이 마을의 미래와 변화를 위해 2166표를 행사했다. 투표가 끝나고 개표가 진행되는 동안 음악으로 소통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기타등등’이 합주 공연을 했다. 앙코르곡 <내 나이가 어때서>의 연주가 끝나고 다시 김 단장이 무대에 올랐다. 마을총회의 하이라이트인 개표 결과를 발표하는 순간이다.
“창림초 안전한 통학길 만들기 676표!”
전체 투표자의 90% 이상이 통학길 위험을 창2동에서 해결돼야 할 주요한 과제로 꼽은 셈이다. 그다음은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깨끗한 우리 동네(545표) △주민이 운영하는 마을회관 확보(258표) △우산이 있는 버스 정류장(202표) 순이었다. 창2동 주민센터 강귀웅 마을담당 주무관은 “창림초등학교 앞 삼거리는 차량 통행이 많은 데 비해 차로가 좁아 아이들이 위험을 많이 느낀다. 오래된 사안이라 주민 공감대는 있는데, 차로 확장에 드는 비용 말고도 준공업 지역 등의 법적 문제도 풀려야 한다”고 말했다.
도봉구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추진지원단’의 김은희 마을총괄 팀장은 “마을총회는 동 전체 주민의 1%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야 의미가 있는데, 창2동은 그 이상의 참여율을 보여 줘 좋은 모범이 됐다”고 평가했다. 창2동은 전체 인구 3만944명 가운데 722명이 투표해 2.3%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날 마을총회에서는 구청장, 주민자치위원장, 마을계획단장이 함께 마을 의제 실행을 약속하는 협약식도 했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사전 온라인 투표와 현장 투표의 1~3위가 일치합니다. 한결같은 주민의 바람을 잊지 않고, 앞으로 의제 실행을 마을계획단과 깊이 있게 협의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이 구청장의 말처럼 마을총회는 결승선이 아니라 출발선이다. 이제 주민들은 스스로 발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와 지혜를 모으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창2동 마을계획단은 서울시 지원금 750만 원 등을 바탕으로 먼저 할 수 있는 마을 사업부터 진행할 예정이다. 우산이 있는 버스 정류장과 추억창고 만들기, 청소년 진학·진로 부모 코치단 등이 그것이다. 가장 많은 주민들이 원했던 창림초등학교 안전한 통학길 만들기 사업은 중장기 과제로 정리됐다.
이날 자원봉사활동을 한 정의여고 2학년 조유정 양은 “마을총회에서 어르신들을 도울 수 있어 마을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함을 느꼈어요. 제가 창림초등학교를 졸업해 학교 앞 도로가 좁아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아요”라며 웃었다.
오후 2시, 마을총회는 막을 내렸다. 주민들은 창림초등학교 늘예솔합창단의 노래 <마을이 희망이다>를 들으며 얼굴 가득 웃음을 지었다.
“주위를 둘러봐요. 서로를 아시나요. 우리는 어느샌가 혼자만 살고 있죠. 어디서 본 적 있죠. 인사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순간에 지나쳐 버리지요. 친해지고 싶어도 함께하고 싶어도 알지 못하고 어색해서 어려울 때가 있죠. 그럴 필요가 없죠. 먼저 시작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저는 이웃입니다. 함께해요. 당신이 필요해요. 우리 생각을 모아 문제를 해결해요. 나보다는 우리라는 말이 가득한 이곳 마을이 희망이다.”
박용태 기자 gangto@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