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이 간다

“교육은 함께 잘사는 양천으로 가는 징검다리”

김수영 양천구청장 ‘진학교육에서 진로교육’으로 지역 간 격차 줄인다

등록 : 2016-07-07 15:14 수정 : 2016-07-0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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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그림센터 북카페에서 학생에게 커피 받는 법을 배우는 김수영 양천구청장. 사교육 1번지 양천을 진로체험 1번지 양천으로 바꾸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 장수선 인턴기자 grimlike@hani.co.kr

“양천구는 서울의 축소판이에요. 목동과 신월동의 격차는 강남과 강북의 격차와 같아요. 양천이 고르게 발전하려면 가장 먼저 교육이 변해야 합니다.” 질문마다 기다렸다는 듯 답변을 내놓던 김수영(52) 양천구청장의 말이 끊겼다. “청장님, 제가 만든 커피인데, 드셔 보세요.” 수줍음과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탁자에 머그잔을 내려놓는 황현빈(15·신남중 2) 군 때문이었다. “어머, 정말 현빈이가 만들었어? 고마워.” 김 구청장은 망설임 없이 머그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정말 맛있다!” 김 구청장의 칭찬에 황군의 얼굴이 환해졌다.

 

 진로체험센터 열고 혁신교육 실현

 인터뷰 장소인 내일그림 진로직업체험지원센터(이하 내일그림센터)는 지역 청소년들에게 진로를 고민하고 직업 체험을 해 볼 수 있는 공간이자, 청소년들 스스로 운영하는 자치 공간이기도 하다. “형식적인 진로체험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센터 안에 북카페도 만들었어요. 아이들이 바리스타도 되어 보고 카페 경영도 해 볼 수 있도록 돕자는 거지요.” 김 구청장은 센터 안 카페에 청소년들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어른들의 출입까지 금지시켜 놓았다. 황군은 센터 내 카페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청소년운영단으로 활동할 정도로 열심이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달려와 처음 내린 커피를 김 구청장에게 대접한 경험은 10년 뒤쯤 황군을 최고의 바리스타로 만들어 줄 소중한 경험이 될지도 모른다.

 내일그림센터는 “진학교육을 진로교육으로 바꿔야 한다”는 김 구청장의 생각을 구현한 공간이다. 임기 시작과 함께 준비해 지난해 10월 문을 연 내일그림센터의 이름에는 “내일을 그린다”는 뜻이 담겨 있다. ‘청소년이 스스로 자기 변화를 이끌어내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공간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이름이다.

 내일그림센터는 학교와 지역사회 간 네트워크를 활용한 학생들의 진로교육 지원, 학교에 직업 멘토가 가는 ‘찾아가는 진로 콘서트’, 체험으로 진로 설계를 돕는 ‘인생설계학교’ 등 청소년들에게 꿈을 찾아주는 다양한 사업들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사설 학원이 2015년 기준으로 1031개소에 이르는 양천구는 강남 대치동, 노원구 중계동과 함께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로 꼽히는 곳이다. 교육으로 어떻게 지역의 균형 발전을 꾀할 수 있을까? 김 구청장은 예스, 노 대답 대신 현재진행 중인 양천구의 변화들을 소개했다.

 공교육 강화를 위한 혁신교육지구 지정 유치, 진로직업체험지원센터 개관과 프로그램 확대, 1동 1도서관 만들기,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방과 후 학교 강사 양성…. 김 구청장이 임기 절반 동안 해낸 교육 관련 일들은 “대한민국에서 으뜸가는 교육특구, 강남4구란 말을 다시 듣게 하겠다”던 전임 구청장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나 ‘명품도시 양천, 특목고 진학률 1위’를 치적으로 내세운 전임 구청장을 김 구청장은 “모든 주민이 다함께 잘사는 양천”이라는 목표를 내세워 이겼다. 김 구청장의 당선은 사교육 1번지 양천구 주민들도 ‘한 사람의 앞선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함께 걷는 한걸음’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 양천구가 실시한 행정수요조사에서도 구민들은 지역 발전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공교육 활성화 등 교육 여건 개선을 꼽았다. 이런 여론은 양천구가 혁신교육지구 지정을 받는 데 큰 힘이 되기도 했다.

 “양천구가 교육열이 많이 높은 건 맞아요. 그러나 사교육 열풍일 뿐이지 공교육 여건은 그렇게 좋지 않아요.” 김 구청장은 혁신교육지구 지정을 계기로 공교육 강화를 시도하고 있다. 강화된 공교육은 지역 간 교육 격차 해소에 도움을 줘 교육 격차가 생활의 격차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중·고등학생의 1인당 사교육비는 월평균 24만4000원이에요. 우리나라가 사교육 시장에 퍼붓는 돈이 한 해 17조 8천억 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진학만을 위해 이렇게 많은 사회적 자원을 쏟아붓는 게 과연 옳을까요? 게다가 입시 중심 교육이 아이들의 미래에 도움이 될까요?” 공교육 강화는 사교육비 부담 덜기로 이어져 지역 간 소득 격차로 인한 불평등 해소에도 도움을 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인터뷰에 이어 양천구 학생 기자단의 인터뷰에 응한 김 구청장. 소소한 질문에도 진지하게 응했다. 사진 장수선 인턴기자 grimlike@hani.co.kr
 

 교육 품앗이로 공동체 복원

 김 구청장은 대학생 때 양천구로 이사와 결혼하고 자녀를 기르며 30년 가까이 양천구 사람으로 살고 있다. 김 구청장도 ‘일하는 엄마’로 살아오면서 아이들 공부를 제대로 돌봐 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으로 자녀를 학원돌림 한 경험을 갖고 있다. “30년 가까이 목동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뼈저리게 느낀 점이 있어요. 다들 좋은 학교 진학에만 관심을 두다 보니 학부모는 학부모끼리, 아이들은 또 아이들끼리 우열과 위계가 생겼어요. 지난번 구청장 선거 때 ‘아들 서울대도 못 보낸 사람이 무슨 양천구청장에 나오냐’는 말까지 들었는데,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김 구청장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공동체도 복원하고 사교육 열풍도 잠재울 수 있는 마을방과후학교 교사 양성 과정을 만들었다. 목동의 엄마들이 신월동, 신정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신월동의 엄마들이 목동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마을 교류로써 지역 교육 격차를 해소해 보자는 취지였다. “엄마들이 얼마나 신청할까 싶었어요. 40명 모집하는 데 100명 가까이 신청해서 깜짝 놀랐지요. 그만큼 학부모들의 의식이 많이 바뀐 겁니다.”

 신청자들은 유명 학원 강사 출신부터 연극연출가, 목공예가, 애널리스트 등으로 다양했다. “우수한 자원들인데 결혼 후 아이를 낳고 경력이 단절된 분들이 많아요. 아이들도 가르치고 경력단절여성들의 일자리도 만들어지고, 일석이조였어요. 이분들을 활용해 지역 도서관, 동 주민센터 등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해누리마을방과후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 구청장은 이렇게 형성된 지역 엄마들의 네트워크가 교육뿐 아니라 지역 간 갈등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어른들뿐 아니라 아이들도 교육자가 되기도 한다. “목동에는 어렸을 때 외국 연수를 갔다 오거나 살다 온 친구들이 꽤 많습니다. 영어를 현지인처럼 쓰는 아이들에게 영어로 책을 읽어 주는 자원봉사를 제안했어요. 80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영어특성화도서관에서 영어책을 읽어 주는데, 발음이 좋으니까 어른들이 아이들을 많이 데리고 와요. 자원봉사하는 학생의 부모도 외국어를 잊어버리지 않고 계속 활용할 수 있어서 매우 반기지요.” 김 구청장은 이러한 교류와 체험이 지역 간 벽을 허물고 아이들에게는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혀 주기를 희망한다.

글 윤지혜 기자 wisdom@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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