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횟집과 공방의 이색결합, 시장이 살아났다

신당 중앙시장 지하 창작아케이드, 빈 공간 예술가 입주 뒤 ‘활기’ 넘쳐

등록 : 2016-08-11 14:01 수정 : 2016-08-1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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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창작아케이드는 예술가와 상인이 공존하는 곳이다. 지난 2일 저녁 공예작가와 상인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렌티큘러 필름을 붙인 기둥과 공예작가들이 꾸민 횟집의 간판과 벽화가 이채롭다. 장수선 인턴기자 grimlike@hani.co.kr
“손님들이 회 먹다 말고 사진 찍어 달라고 해. 가게가 예쁘다며 들어오기도 하고.” 중구 신당동 중앙시장 지하상가의 ‘동해횟집’을 찾는 손님들은 회도 회지만 사진 찍기가 우선이다. 파란 파도 위에 물고기, 갈매기가 그려진 유리문 바깥에서 식당 안을 찍으면 바다 위에서 회를 먹는 듯 재미난 사진이 나오기 때문이다. 주인 노정선(56) 씨는 “손님들 부탁에 한두 장 찍어 주다 보니 어느새 사진 실력도 늘었다”며 웃는다.

노 씨 가게뿐이 아니다. 맞은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물고기 모양의 간판과 마주친다. 그 옆은 유리병으로 가게를 장식한 횟집이다. 물감으로 메뉴를 적어 놓은 횟집들도 있다. ‘횟집 골목’이 맞나 싶다.

신당 중앙시장은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전통시장이다.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과 함께 ‘서울 3대 시장’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지상은 전통시장이, 지하는 횟집과 이불가게 등이 자리하고 있다. 1960년대까지 서울에서 소비되는 양곡의 70%가 이곳 전통시장에서 거래됐을 정도였다. 현대그룹을 창업한 고 정주영 회장의 쌀가게도 중앙시장에 있었다. 지하는 방공호로 쓰이다 1971년에 쇼핑센터로 바뀌었다. 이불, 한복, 식당용품, 회센터가 성업했다.

하지만 중앙시장도 재래시장의 쇠퇴 추세를 피할 수는 없었다. 1997년 외환위기를 시작으로 손님들의 발길이 눈에 띄게 줄었다. 경기가 회복세에 접어든 뒤로는 주변 대형 쇼핑몰과 마트에 손님을 뺏겼다. 결국 많은 상인이 가게를 접고 시장을 떠났다. 99개 점포 중 절반 이상이 빈 가게가 됐다.

생기를 잃은 시장에 변화가 생긴 건 2009년 가을 빈 지하상가에 공예작가들이 둥지를 틀면서부터다.

서울시는 ‘문화가 경제 경쟁력이 된다'는 컬처노믹스 정책 아래, 2008년 도심 재생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중앙시장의 빈 공간에 주목했다. 프로젝트를 담당한 서울문화재단은 빈 점포 57개를 리모델링해 공예 중심 예술가들에게 작업 공간으로 내줬다. 시장과 공방의 협업, 신당창작아케이드의 출발이다.

예술가들이 모이자 시장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 젊은 사람들이 돌아다니잖아. 조금 지나니까 공방 유리창 너머로 조각이니 모형이니 이런 게 보이데. 예쁘더라고.” ‘샘터수산’ 함형수(70) 사장은 중앙시장과 역사를 함께한 터줏대감이다. 예술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공방들을 지나며 본 작품들이 맘에 들었다고 했다.

횟집과 공방이 붙어 있으니 횟집 여기저기에 예술가의 손길이 닿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재능기부 형태로 횟집 골목을 꾸며 달라는 서울문화재단의 제안을 받은 작가들은 지하상가를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어두운 지하상가 외벽에 페인트칠을 시작으로, 횟집 분위기에 맞는 조개나 물고기, 바다를 그려 넣었다. 상가 들머리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커다란 은빛 물고기 모빌을 달았다. 삭막한 기둥에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사진이 보이는 렌티큘러 필름을 붙이고, 가게 앞에 어지럽게 쌓여 있던 물품들을 보관하는 수납장도 만들었다. 횟집이 늘어선 상가지만 바닥에 고인 물이나 음식물 쓰레기를 찾아볼 수 없는, 청결한 거리가 된 이유다.


수강생들이 만든 칠보공예 작품들. 예술가들이 바꾼 횟집의 메뉴판과 점점 떠오르는 물고기로 꾸민 창문, 공중에 매달린 은빛 물고기 등이 횟집 골목에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장수선 인턴기자
“저 메뉴판, 시계, 연필꽂이도 전부 작가들이 만들어 준 거야. 먼지 안 쌓이게 매일 닦아.” 함 씨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유리병 연필꽂이나 모자이크 시계, 물고기 모양 메뉴판은 작가들의 솜씨다. 유리공예 작가는 유리로, 한지공예 작가는 한지로 자신들의 재능을 살려 횟집을 꾸몄다. 가게를 찾는 손님마다 독특한 소품이나 간판에 관심을 쏟고 사진에 담으니 상인들도 만족했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니 손님들도 젊어졌어. 가게가 예뻐져서 그런지 장사가 잘돼.”

욕심을 부려 예술을 시작한 상인들도 생겨났다. “시장 한켠에 쉼터가 있는데, 거기에 작가들 작품이 진열돼 있어요. 오가다 보면서 ‘나도 저런 거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벽에 칠보공예 수업 포스터가 붙어 있더라고.”

지상 전통시장에서 식당 ‘순대명가’를 운영하는 박은실(54) 씨는 매주 화요일 지하 신당창작아케이드 다목적실에서 칠보공예 수업을 듣고 있다. 서울시민예술대학의 수업 가운데 하나인 칠보공예는 창작아케이드 입주 작가가 진행하고 있어서, 수업이 창작아케이드 커뮤니티실에서 열린다. “가까이에서 배울 수 있으니 좋지. 멀면 엄두도 못 내. 일주일 동안 이 수업만 기다려.” 박 씨는 지금까지 있었던 13번의 수업을 한 번도 빠지지 않은 모범 학생이다.

이제 중앙시장은 상인들이 삶의 자리에서 예술을 만드는 ‘실험실'이 되었다. 지상·지하 상인 모두가 참여하는 ‘황학동 별곡’은 예술 교육을 받은 상인들의 작품발표회로, 2012년부터 해마다 열리고 있다. 작품 전시부터 합창 행진까지 수준 높은 공연으로 인기가 높다. 작가가 직접 상인들을 찾아 차를 마시는 ‘마음차 프로젝트’, 마을지도를 그리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 입주 작가와 상인, 시장을 오가는 지역 주민까지 함께하는 여러 프로그램도 있다.

“회를 뜨는 것도 손으로 하는 예술이라 생각해요. 저기까지 횟집, 여기부터는 공방이라고요? 전부 예술가의 공간입니다.” 상가 15호에 입주해 있는 ‘마흐’ 허정민(39) 작가의 말이다.

정고운 기자 nimok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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