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겨울 북한산 외로울라’…바람은 쉬지 않고 숲 흔든다

(64) 종로구 평창동과 구기동 일대 북한산 숲과 계곡

등록 : 2022-12-1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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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봉에서 본 문수봉 바로 전 솔숲.

평창계곡 찬 바람, 고드름과 인사하자

골바람 반기는 계곡물, 소리 더욱 ‘영롱’

물 알갱이 흩어져 ‘바람의 길목’ 알릴 때

하늘엔 흰 구름 흘러 빛깔 더 파랗다

보현봉에서 흘러내린 산줄기와 형제봉 산줄기 사이, 평창계곡을 거슬러 올랐다. 한파의 흔적이 계곡 바위에 얼어붙은 고드름으로 남았다. 녹아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골짜기에 영롱하게 퍼진다. 영상의 기온에도 골바람에 서리가 박혔다. 바람은 숲을 뒤흔들었다. 하얀 구름 흐르는 하늘은 더 파랬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역사가 남아 있는 북한산성은 이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다. 몸을 흔드는 칼바람을 문수봉에서 맞이하고 대남문으로 내려와 구기계곡으로 향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발걸음을 보현봉과 문수봉이 굽어보고 있었다.

솔숲에 있는 평창동 보현산신각

보현봉 산신을 모신 보현산신각에 먼저 들르다


북한산 남단 보현봉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산줄기 기슭에 있는 보현산신각에는 호랑이와 산신을 그린 산신도가 있다. 문화재청 기록에 따르면 고대 산신 개념을 가진 민속자료로서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산신을 섬기던 옛사람들의 전통과 동제의 전통이 결합한 좋은 예다. 서울시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보현봉 산신령을 모신 이곳은 수백 년 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매년 음력 3월1일에 마을제사인 동제를 지내던 곳이기도 하다.

북한산 보현봉 아래 평창계곡으로 들어가기 전에 보현산 산신령을 모셨다는 보현산신각을 먼저 찾았다. 산기슭 마을길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산신각은 소나무숲에 있었다. 소나무숲 여기저기에 산신각보다 큰 바위들이 보였다. 평창동 보현산신각을 알리는 길가 안내판 뒤 커다란 바위는 지금도 기도처로 사용하는 곳이다. 아궁이 위에 가마솥이 걸렸고 부뚜막에는 제주로 쓴 막걸리병이 놓였다. 그 앞 커다란 바위 아래 소박한 제단에는 누군가 밝힌 촛불이 빛나고 있었다.

평창동 보현산신각은 남산신각이라고 한다. 이 주변에 여산신각과 마을 수호신을 모신 부군당도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평창동 보현산신각만 남았다고 한다.

보현산신각과 커다란 바위 기도처를 뒤로하고 평창길을 따라 동쪽으로 걸었다. 산기슭 마을 위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다. 북한산둘레길도 이 길을 지난다.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평창공원지킴터까지 1.3㎞ 남았다는 이정표 쪽으로 걸었다.

평창공원지킴터 앞 이정표에 대성문까지 2.3㎞ 남았다고 적혔다. 숲으로 들어갔다. 길 양쪽에 선 소나무 두 그루가 공중에서 가지를 모아 문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그 아래를 지난다.

기후변화가 세상의 근심거리가 된 지금이지만 예로부터 내려오는 우리나라 겨울 기후의 특징 중 하나인 삼한사온의 내력은 지켜지고 있는 듯, 한파 끝 영상의 날씨에 하늘도 쾌청했다.

특별할 것 없는 숲길에 등장한 풍경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앞서가던 아저씨 한 분이 멈추어 바라본 하늘 아래에는 동령폭포가 있었다.

동령폭포.

동령폭포와 평창계곡을 보다

동령폭포 윗부분은 비스듬히 누운 와폭이다. 폭포 위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비스듬히 누운 바위를 타고 흐른다. 그 물줄기는 바위 중간에 파인 홈에 고였다 넘쳐흐른다. 그러다 폭포 아랫부분에서 낙차가 있는 폭포를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동령폭포를 향림폭포라고도 부른다. 향림(香林), 숲의 향기. 폭포에서 숲의 향기를 찾았던 것일까? 추사 김정희는 향림폭포에서 돈과 명예를 다 던져버리고 즐거움도 슬픔도 없는 마음을 구했다. 하늘 아래 산봉우리, 그 숲속 계곡과 폭포가 향기처럼 추사의 마음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폭포에 꽂혔던 눈길을 들어 먼 데를 본다. 백악산(북악산) 산등성이에 세운 북악팔각정이 보이고 그 뒤로 남산 꼭대기도 보인다. 큰 바위를 끼고 돌아 걷는 숲길 앞에 평창계곡이 나타났다. 한파의 흔적이 계곡 바위에 얼어붙은 고드름으로 남았다. 작은 물줄기지만 크고 작은 바위와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겨울 계곡에 영롱하다. 작은 웅덩이에 떨어지는 물줄기가 파문을 일으킨다. 물 알갱이가 바람에 흩날려 공중에서 흩어진다. 바람의 길목에 들어선 것이다. 바람은 숲 전체를 흔든다. 훙훙 거리는 소리로 다가온 바람은 숲길에 떨어진 마른 낙엽을 공중으로 밀어올린다. 낙엽은 공중에서 나부낀다.

형제봉 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를 지나 일선사 앞 삼거리에서 대성문 방향으로 걷는다. 나뭇가지 사이로 시야가 트인다. 북한산성 성곽과 산 아래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잔설 남은 산굽이를 돌아 기암괴석에 뿌리 내린 소나무가 제멋대로 가지를 뻗은 풍경을 지난다.

숲속 너른 마당 쉼터를 지나 데크 계단을 오르면 빈 가지 사이로 멀리 문루가 보인다. 북한산성 대성문이다.

북한산성 대성문.

대성문, 대남문, 문수봉, 그리고 구기계곡

북한산성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오른다. 백제시대 한강 유역에 들어선 백제의 수도 하남위례성을 지키던 성이었다. 고려시대에는 몽골군과 싸운 곳이다. 지금처럼 돌로 성을 쌓은 때는 조선시대 숙종 임금 때였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북한산성에는 13개의 성문과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가 있었고 12개의 절과 99개의 우물, 26개의 작은 저수지가 있었다. 그중 한 곳인 북한산성 대성문에 도착했다.

북한산 남단에 있는 대성문은 서울의 북쪽 평창동과 정릉동으로 연결되는 길목이다. 조선시대에는 수도 한양을 지키는 주요 길목이었다.

대성문을 통과하면 대남문, 대동문,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방향으로 길이 갈라진다. 산속 네거리에서 대남문 방향으로 간다. 대남문까지 300m다. 눈 쌓인 오솔길을 지나 겨울나무 사이로 길이 난 너덜지대 오르막길에 올라서면 대남문이다. 비봉 능선길과 탕춘대성으로 연결되는 길목의 중요한 성문이었다. 대남문 문루에 서서 바라보는 눈길에 우뚝 솟은 보현봉이 박힌다. 저 멀리 서울 도심이 아득하다. 동령폭포가 움직인 추사의 마음을 이곳에서 헤아려본다.

대남문을 뒤로하고 문수봉 쪽으로 걸었다. 문수봉 꼭대기 바로 전 소나무숲은 바람이 지나는 길이다. 바람은 솔숲을 흔든다. 한겨울 솔숲의 향기가 알싸하다. 나무들도 높게 자라지 못하고 가지도 제멋대로 구불거린다. 숱한 세월 문수봉을 지나는 바람을 견딘 흔적이다. 솔숲을 나서면 바로 문수봉이다. 시야를 가릴 것 하나 없는 바위봉우리 꼭대기다. 사모바위, 비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풍경, 백운대와 인수봉이 하얗게 빛나는 풍경, 평창동과 구기동 쪽으로 펼쳐진 산자락까지 하나하나 짚어가며 바라본다.

바람은 쉬지 않는다. 옷자락이 찢어질 듯 펄럭인다. 긴장을 놓으면 몸이 휘청거린다. 영상의 기온이지만 바람에 서릿발이 박혔다. 먼저 올라온 사람들이 서둘러 내려가는데, 어디서 왔는지 누렁개 한 마리가 곁을 지킨다.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개와 함께 구름 아래 서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기계곡에 얼어붙은 작은 폭포.

정릉계곡. 한파에 계곡물이 얼었다.

왔던 길을 되짚어 대남문으로 내려갔다. 대남문에서 구기계곡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보현봉과 문수봉이 감싼 숲은 아늑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고 햇살은 가득했다. 돌투성이 내리막길을 한 발 한 발 내딛는 모습을 보현봉과 문수봉이 굽어보고 있었다. 구기계곡 물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듯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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