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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도시의 만추, 그 절정을 걷다

전현주작가 도성길 18.6㎞ 답사기, 경치 빼어난 인왕산 구간서 출발

등록 : 2016-11-24 13:56 수정 : 2016-11-2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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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범바위 부근에서 바라본 한양도성길 풍경. 남산으로 시원하게 뻗는 도성길을 기준으로 왼편에는 경복궁과 광화문이, 오른편에는 무악동이 펼쳐진다. 전현주 문화창작자
18세기 조선 과거시험장. 정조가 ‘한양’을 과제로 작문을 명한다. 한 선비 수험생이 ‘도성이 가운데 자리하고 사방에서 감싸니 둥근 모양 한 떨기 꽃잎 같다’며 한양도성을 읊어 장원을 차지했다고 한다. 당시 서울 인구 20만 명. 도성은 서울의 자랑이자 서울 그 자체였다. 오늘날 서울도 꽃잎 같을까. 토요일마다 풍요롭게 익은 한양도성길에 맑은 바람이 불고 있다. 21세기 인구 천만 명인 서울, 만추에 이끼옷 차려입은 성곽길이 600년 도시의 절경을 안내한다.

인왕산 구간(돈의문 터)

*돈의문 터(강북삼성병원)~인왕산 정상~윤동주문학관~창의문(월 휴관)

*약 4㎞, 2시간 30분 걸림

둘레 약 18.6㎞, 높이 5~8m가량 되는 한양 도성은 1396년에 쌓은 것이다. 태조 5년에 백악산에서 타락산(낙산), 목멱산(남산), 인왕산 능선을 이어 성곽을 쌓고, 동서남북에 사대문을 냈다. 서울시는 내사산(서울 4대문 안 4개 산)을 기준 삼은 4구간 길과 거리별로 나눈 6구간 길을 추천한다. 그중 인왕산 구간은 까다로운 편이지만, 정상에서 보는 서울 풍경이 빼어나다. 험한 산세 덕에 성벽도 그대로 보존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헐린 돈의문 터에서 출발해 인왕산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청와대와 경복궁, 광화문 광장까지 시야가 트이고 멀리 남산 자락까지 이어진 성벽길이 가르마처럼 하얗게 보인다. 눈앞에 수성동 계곡은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의 소재가 된 곳이다.

인왕산 성곽길에 동행한 전재봉(32)씨는 보스턴에서 건축사로 일한다. 서울 출신이다. “외국에서 볼수록 한양도성이 한국의 상징적 건축물이라는 실감이 나요. 외국인들을 서울에 부른다면 먼저 이곳을 보여줄 것 같아요” 한다. 서울시는 2017년 한양도성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올리는 것을 목표로, 올해 세계유산센터에 등재 신청서를 냈다. 서울시 한양도성도감은 성곽을 활용해 시민들을 위한 강좌와 학술대회, 문화행사를 해마다 열어 관심을 높이고 있다.

지난 9월 동대문역사공원에 ‘한양도성박물관’도 증축했다. 한양도성도감의 심말숙 과장은 “한양도성은 미적인 가치를 넘어 남아 있는 도심 성곽으로서 흔치 않은 사례입니다. 세계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문화유산입니다”라며 성곽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치를 강조했다.

600년 도읍의 기록이란 곧 임금의 역사라서, 실제 돌을 깎고 올린 백성들은 잊기 쉽다. 도성길을 걷다 보면 이마에 흐르는 땀으로 그들의 수고를 헤아리게 된다. 그런 백성을 닮은 답사객들이 성실하게 인왕산을 오르고 내린다.


돈의문 터에서 시작한 성곽길은 두 시간 걸어 윤동주 문학관에 닿았고,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다가, 창씨 개명한 시인이 자필로 남긴 ‘부끄럽다’는 고백에 동요했다. 백성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는데, 개명이 쉬웠던 그들은 누구며, 통치자는 지금 어디 있는가. 어쩌면 윤동주 시인도 이 길을 지났을지 모른다. 문학관을 나와 ‘시인의 언덕’에 오르니 사대문 안의 동네가 단풍으로 붉게 익었다. 일렁이는 불꽃마다 꽃잎이다.

전현주 문화창작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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