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

“양조장 출근, 주점 퇴근”…인생 3막서 ‘술꾼 로망’ 이뤄

‘다시, 시작’ ㉔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과천시의원 거쳐 주류업 하는 서형원씨

등록 : 2024-08-15 16:35 수정 : 2024-08-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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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주막의 서형원 대표

민주화운동 뒤 1994년 ‘환경연합’ 입사

2006년 지방선거 때 과천시의원 당선

2014년 과천시장에 도전했으나 낙선

히말라야 여행 뒤 2016년 별주막 개업


‘경기도 프랜차이즈 육성 사업’에 선정


2020년 직영점 계획 코로나로 중단 뒤

양조장 등록하고 ‘과천미주’ 등 빚으며

막걸리에 ‘인문학적 스토리’ 입혀 나가

별주막입구

양조장으로 출근한 뒤 주점에서 퇴근하는이가 있다. 바로 양조장 ‘과천도가’와 막걸리 주점 ‘별주막’을 운영하는 서형원(55) 대표다. 서씨가 운영하는 ‘과천도가’(경기도 과천시 남태령옛길 65 1층)와 ‘별주막’(과천시 별양상가1로 37 B1)은 차로 8분 거리다.이쯤 되면 서씨를 ‘술꾼들의 로망을 이룬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그가 양조장과 주점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서씨가 주류업에 뛰어든 건 2014년 과천시장 선거에서 낙선하고 2년 뒤인 2016년 별주막을 열면서부터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 서씨는 술과 인연이 없는 삶을 살았다.

어릴 적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서 자란 그는 온종일 뛰어다니던 천진난만한 아이였다. 달력을 찢어 로봇을 그리며 만화가를 꿈꿨고 자라면서는 배우나 목사가 되고 싶었다. 대학에 입학해 민주화운동도 했다. 1994년 환경운동연합(이후 환경연합)에 들어가서 핵폐기장 후보지인 굴업도와 화력발전소 예정지인 영흥도에 파견되기도 했다. 5년 뒤 환경연합에 적을 두고 대학원에 입학해 책도 번역하고 교육방송(EBS) 라디오에서 ‘서형원의 환경 칼럼’ 꼭지도 담당했다.

그사이 정치 환경이 변화했다. 이미 1991년 지방자치제도의 부활로 기초의원과 광역의원 선거가 실시된 상황에서, 1995년 이후부터는 4년마다 지방의회 의원과 자치단체장을 함께 뽑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행됐다. 이에 따라 기존 정당 소속이 아닌 활동가들이 지방의원에 도전했다.

그 결과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때는 풀뿌리 인재 10여 명이 당선된다. 이들을 중심으로 녹색당을 만들자는 의견이 모이면서 서씨가 환경연합에서 나오고 다음해 ‘녹색정치 준비모임’을 만들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1년 앞둔 2005년 정당공천제가 기초의원 선거에까지 확대되면서 그가 준비하던 활동이 큰 타격을 받았다. 무소속 후보는 아무리 훌륭해도 기호 8번 이후의 번호를 받게 되는 구조였다. 출마를 준비하던 이들이 대거 출마를 포기하거나 민주당에 들어갔다. 후보가 부족해 그도 차출됐다. 30명의 후보를 냈는데, 그를 포함해 2명이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당선된다. 녹색당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도 멈췄다.

시의원이 된 그는 화재 사건이 많이 나는 비닐하우스촌에 화재경보기와 소화기를 지급하는 예산을 통과시켰다. 안전한 보행로를 만들고 불필요한 예산을 연간 30억원 삭감했다. 그런 노력으로 2010년 선거에서 과천시 사상 가장 높은 득표율로 시의원에 당선됐다. 그리고 과천시의회 의장으로 선출된다. 2014년 선거 때는 서씨가 녹색당 후보로 과천시장에 출마했다. 그가 주민 친화적 정치를 한 덕에 주민들의 호응이 높았고 매스컴에도 그를 다루는 기사가 쏟아졌다. 그는 과천을 대한민국의 녹색 심장으로 만들겠다며 차별적 공약을 발표했다. 결과는 3등. 그가 얻은 득표는 돈과 조직이 없는 후보치고 꽤 높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결과였다.

“저는 정치 낭인이 될 생각은 없었어요.” 그는 선거가 끝나자, 히말라야로 여행을 떠났다. 3주 여행 중 2주간 트레킹하는 것으로 일정을 짰다. 이 여행기를 묶어 2년 뒤 ‘멀고 낯설고 긴, 여행이 필요해’(텍스트 펴냄)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2015년에 서씨는 비투비(BtoB) 쇼핑몰회사에 입사해 5개월을 다니고 비전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퇴사했다.

“중년 남자가 실직하면 보통 치킨집을 내는데 제가 기름기 있는 음식을 좋아하지도않고 환경운동을 했다 보니 다른 구상을 했어요. ‘지역특산물로 음식을 만들어 팔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다 ‘우리 술이 비전이 있을 거 같다’는 판단에 따라 막걸리 파는 주점을 생각했어요.”

과천도가가 생산하는 막걸리들.

그길로 ‘막걸리학교’에 등록해 전통주에 대해 공부했다. 양조장을 탐방하며 막걸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배우고 이름난 주점도 방문했다. 그 가운데 특히 ㄱ동에 있는 허름한 주점이 좋은 재료로 음식을 신선하게 만들어 팔아 가장 마음에 들었다. 사장님도 그를 좋게 보아 노하우를 알려주었다.

별주막은 권리금 없이 창업해서 상대적으로 창업비용이 적게 들었다. 처음 오픈하고 장사는 어땠을까? “떼돈을 버나 했는데 월말이면 돈이 모자라는 거예요.” 처음엔 경험이 없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데 시행착오를 거치며 매출이 안정권에 들어섰다.

2018년에는 ‘경기도 착한 프랜차이즈 육성 사업’에 응모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정돼 6천만원의 지원을 받게 됐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야 하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주주 모집 글을 올렸다. 주막을 영국의 ‘펍’이나 일본의 ‘이자카야’와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드는 데 투자자를 모집한다는 글이었다. “글을 올린 지 채 48시간이 되기 전에 2억4천만원이 모여서 너무 놀라 급히 모금을 중단했죠.” 2020년 경복궁역 근처에 직영점 오픈 계획을 세웠다.

임대계약서를 쓰려는데, 주인이 지하의 조그마한 공간 사용료로 월세를 더 달라고 요구했다. 그것 때문에 계약이 늦춰졌는데 그사이 코로나19 전염병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력하게 시행됐다. 그는 광화문점 오픈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별주막도 매달 월세와 인건비를 까먹는 상황에서 돌파구가 필요했다. 서씨는 나중에 하려고 생각했던 양조장을 이참에 차려야겠다 마음먹고 실행에 옮겼다.

막걸리를 최종 생산하는 병입실의 라벨링 기계

2020년 말 양조장 사업자등록을 내고 2021년 6월 첫 상품인 ‘과천미주’와 ‘관악산생막걸리’를 내놨다. 경기미를 원료로 하고 인공감미료를 넣지 않아 시장 반응이 좋았다.

“고려 문인이자 술꾼인 이규보(1168~1241)가 한직으로 밀려난 뒤, 값싼 탁주를 마시며 청주 먹던 시절을 그리워해요. 청주는 15도 탁주는 5도 정도 됐을 거예요. 이규보는 워낙 술꾼이니 과천도가의 ‘경기백주’를 마셨다면 탁주라도 좋아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경기백주는 원주를 그대로 담아 도수가 14도로 높고 유통기한도 150일로 길다. “과천도가 앞길이 남태령 옛길인데, 이 길은 선비들이 과거 보러 올라올 때 목을 축이던 주막이 있던 거리였어요.” 그는 막걸리에 인문학적 스토리를 입혔다.

인생 2막으로 창업하거나 주류 관련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웬만하면 창업하지 마세요. 한다면 주변의 조언을 잘 듣고요. 3년 쓸 돈을 1년 안에 다 쓰게 되죠. 건강도 버리고요. 술 만들긴 쉽고 파는 건 어려워요. 전문주점도 술보다는 음식이 중요하고요.”

과천도가 2층 마루에서 술 익는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다.

그의 회사는 ‘별주막’과 ‘과천도가’ 그리고 자회사로 전통주 판매플랫폼인 ‘술별닷컴’(soolbyeol.com) 이렇게 3개가 있다. 사업체 3개를 운영하는데 힘들지 않을까? “주 7일을 일해도 회사원이 아니라 할 만해요. 제 직관력이 사업하는 데 큰 도움을 줬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 “이 회사를 키우는 게 절실하고 이 일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에요. 경기미 햅쌀로 좋은 술을 만들어 지역 주민들이 일상에서 즐길 수 있게 하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의 소망대로 서형원씨의 ‘인생 3막 주류(酒類)인생’이 활짝 피길 응원한다. <끝>

글·사진 강정민 작가 ho089@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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