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작은 숲, ‘큰 빌딩의 뜨거움’에 찌든 도시 숨통 틔워주다

(51) 서초구와 강남구의 숲

등록 : 2022-06-09 17:34 수정 : 2022-06-0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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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도곡동 도곡근린공원(매봉산) 숲. 하늘이 열린 곳으로 도심의 빌딩 꼭대기가 보인다.

숲속 산신제당이 500년째 살아 있는

높이 100m인 도곡동 매봉산의 공원

큰 나무, 그늘 만들어 ‘숲다움’ 갖추고

도시 열기 숨 죽여 다시 도시로 보낸다

서울 강남 도심에도 숲이 있다. 작은 숲이지만 공해와 열기에 찌든 도심의 숨통을 틔운다. 숲 아랫마을 사람들에게는 푸른 쉼터다. 그 숲에 옛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 숲을 깊게 한다. 강남구 도곡동의 도곡근린공원(매봉산)과 싸리고개 마을마당 뒷동산이 그렇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인 청계산 서울 구간에도 옛이야기가 푸르게 이어지고 있다.

청계산 원터골에서 진달래 능선을 지나 옥녀봉에 오르다

원터마을 사람들은 미륵불이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미륵불 앞 삼층석탑도 그 믿음에 한몫했다. 매년 날을 정해 미륵불과 석탑 앞에서 마을 제사를 지냈다. 미륵불 코앞에서 20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는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온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지, 푸른 잎을 무성하게 피워 그 그늘 아래서 사람들을 쉬게 한다.


청계산 원터골 등산로 초입에 있는 원지동 석불입상과 삼층석탑.

청계산 등산로 입구 중 한 곳인 원터골은 산을 오가는 사람들로 왁자지껄했다. 느티나무 고목 그늘은 사람들의 약속 장소다. 몇 무리의 사람이 아직 오지 않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막 산으로 출발하는 사람들은 미륵불과 삼층석탑 옆을 그냥 스치고 지나간다.

상가단지를 지나 숲으로 들어가기 전에 275년 된 굴참나무를 보았다. 굴참나무 주변에 산신제를 지내던 도당이 있었다고 한다. 도당도 산신제도 사라진 지금, 굴참나무 고목이 청계산 산신 같아 보인다. 오래된 것들은 그 자체로 신령하다.

청계산은 서울시와 경기도의 경계를 나누고 있다. 그중 원터골, 진달래능선, 옥녀봉을 지나 양재동 양곡도매시장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은 서울시 서초구다. 그 길을 걷기로 하고 숲으로 들어섰다.

청계산 옥녀봉 가는 길에 있는 산림욕장.

계곡을 거슬러 걷는 길은 나무 그늘이 드리워 선선했다. 매봉 방향과 옥녀봉 방향으로 길이 갈라지는 곳 계곡에는 커다란 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숲속의 푸른 장막이었다. 그 푸르름이 계곡 물에 비쳐 물도 초록빛이다. 진달래 능선으로 가는 오르막길에서 산림욕장을 만났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침엽수 줄기가 숲에 빽빽하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숲 안으로 들어갔다. 숲의 향기가 진하다.

900m 정도 되는 진달래 능선 길에 봄이면 진달래가 만발한다. 초록 잎 무성한 그 길을 걸으며 배고픈 날 꽃 꺾어 먹고 넘었다던 강원도 정선의 화절령 이야기를 생각했다. 진달래꽃은 먹을 수 있어 ‘참꽃’이라 했고 철쭉꽃은 먹을 수 없어 ‘개꽃’이라 했다는 이야기에 미소 짓는다.

옥녀봉이 850m 남았다는 이정표를 따른다. 옥녀봉이 점점 가까워진다. 굵은 줄기 뒤틀며 자라는 커다란 소나무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옥녀봉이다. 옥녀봉 마당 한쪽 전망대에서 관악산과 우면산 줄기, 여의도 쪽 도심이 한눈에 보인다.

싸리고개 마을마당 뒷동산 사람들

옥녀봉에서 화물터미널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이정표에 옥녀봉에서 화물터미널까지 2640m라고 적혀 있었다. 서두를 것 없어 천천히 걸었다.

지나치는 이정표에 적힌 ‘개나리골’ ‘바람골’이라는 이름이 정겹다. 다음 일정만 아니면 ‘개나리골’도 ‘바람골’도 다 들러보고 싶었다. 서초구청 자료에 따르면 청계산에 이색, 길재, 추사 등이 은거했다. 망국의 한을 품은 고려 말 학자 이색과 길재, 조선시대 말기에 유배지에서 돌아온 추사 김정희도 ‘개나리골’ ‘바람골’ 혹은 그 언저리 어느 숲길을 휘휘 돌아보지 않았을까? 이곳과 가까운 옥녀봉에서 화물터미널 쪽으로 내려가는 길 서쪽 산 아래, 경기도 과천시 주암동에는 추사박물관이 있다.

숲에서 벗어나 마을버스를 타고 양재역에 도착했다. 조선시대에 제주에서 보낸 말을 먹이던 곳이며, 인조 임금이 이괄의 난을 피해 몽진할 때 말 위에서 팥죽을 먹었던 곳이라는 옛이야기가 전해지는 말죽거리 푯돌 부근 식당에서 시장기를 속였다. 그리고 찾은 곳이 싸리고개 마을마당이었다.

양재역에서 북쪽으로 직선거리 약 600m 되는 곳에 싸리고개가 있었다. 강남구 도곡동 은광여고 옆 고갯마루가 옛 싸리고개다. 조선시대에 싸리나무 숲이 있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옛 싸리고개 고갯마루는 고개를 넘나들던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장소였다. 은광여고 북쪽 싸리고개 마을마당 비석에 그 이야기가 새겨졌다.

강남구 도곡동 싸리고개 마을마당 뒷동산 숲. 숲은 작지만 곳곳에 정자가 있다. 마을 사람들의 쉼터다.

싸리고개 마을마당에서 계단으로 올라가 숲으로 들어갔다. 강남 도심의 빌딩과 아파트에 둘러싸인 아주 작은 숲이었다. 숲은 작지만 숲으로 드나드는 입구는 여러 곳이다. 길도 여러 갈래다. 그 길목마다 정자가 있다. 운동기구가 설치된 마당도 있다. 이리저리 난 길을 걷는 사람들, 땀을 흘리며 운동기구를 이용하는 사람들, 정자에 앉아 쉬는 사람들, 숲은 숲 아랫마을 사람들의 뒷동산 앞동산이다.

강남 도심의 산신제당과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살던 곳

옛 싸리고개였던 은광여고 부근에서 동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도곡근린공원(매봉산)도 강남 도심의 빌딩과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였다. 공해와 열기에 찌든 도심의 숨통을 틔워주는 숲이자 산 아랫마을 사람들의 쉼터다.

도곡근린공원 둘레를 한 바퀴 도는 2.5㎞ 숲길을 ‘걷고 싶은 매봉길’이라고 부른다. 양재전화국교차로 북서쪽에 도곡근린공원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걷고 싶은 매봉길’을 걷기 전에 정상을 다녀오기로 했다. 도심의 낮은 산이지만 제법 숲답다. 키 큰 나무들은 그늘을 만들고 오솔길 밖 숲은 우거졌다. 매봉산 꼭대기는 100m가 채 안 된다. 숲이 시야를 가렸다. 꼭대기에 있는 돌탑 두 개를 보고 올라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서 ‘걷고 싶은 매봉길’을 따라 산 둘레를 걷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뜻밖의 것을 보았다.

도곡근린공원(매봉산) 숲에 있는 산신제당.

숲에 산신제당이 있었다. 산신제당의 옛 이름은 ‘독구리 산제당’이었다. 강남구청 자료에 따르면 독구리는 매봉산에 돌이 많이 박혀 있어서 생긴 이름인 독부리가 변한 것이다. 훗날 독구리가 독골이 됐고, 독골이 도곡이 됐다. 현재 마을 이름인 도곡동의 유래이기도 하다. 도자기를 굽는 마을이라는 뜻의 독골이 독구리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서울 강남 도심 숲에 산신제당이 있을 줄 몰랐다.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산신제당 앞 비석에 ‘독구리 산제당’은 500여 년 전부터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10월 초순에 특정한 날을 잡아 토착민을 중심으로 제수를 마련하고 마을의 풍요와 번영,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산제를 올린다는 내용이 새겨졌다.

산신제당 주변을 살펴보는데, 제당 앞에 서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아주머니는 짧게 기도하고 다시 숲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주머니가 간 길을 따라가다가 또 하나 뜻밖의 것을 보았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살던 주거지 터를 알리는 안내판이었다. 안내판에 기원전 7~4세기께 청동기시대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너비 3m, 길이 16m, 깊이 50~60㎝의 장방형 터를 찾았다고 적혀 있었다. 무문토기, 돌도끼, 반월형 돌칼 등의 유물도 출토됐단다. 아주 오래전 사람이 살았다던 터 언저리 숲을 어슬렁거렸다.

도곡약수터 앞을 지나 푸른 숲길을 계속 걸었다. ‘걷고 싶은 매봉길’ 이정표를 따르다 보면 출발했던 곳이 가까워진다. 초록이 빛나는 숲은 길이 끝나기 전에 마지막 풍경을 남겨놓았다. 하늘을 덮은 숲이 하늘을 향해 빼꼼 열렸다. 숲 안과 밖을 연결하는 무슨 통로 같았다. 도심의 공해와 열기가 그 통로로 들어와 숲에서 정화된 뒤 다시 그 통로를 통해 숲 밖으로 분출될 것 같았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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