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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 정책 목표는 삶의 질 개선

등록 : 2016-10-27 12:29 수정 : 2016-10-3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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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는 맨해턴 브로드웨이의 다지교차로 지점에 차량진입로 수를 줄이고 도로다이어트를 실시하여 조성된 공간을 보행자 쉼터로 조성하였다.
1811년 뉴욕시 도시계획안에 따라 조성된 맨해튼 지역은 직사각형의 격자형 가로(차도와 보도로 이루어진 시가지의 넓은 도로)망으로 구성됐다. 맨해튼 남단 배터리 공원에서 북쪽으로 통하는 대로인 브로드웨이는 맨해튼의 미드타운 구간에서 격자형 가로망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른다.

이 탓에 5개 이상의 차도가 교차하는 혼잡 교차로가 여러 곳에 만들어진다. 이 혼잡 교차로 때문에 교통체증과 교통사고도 빈발했고, 보행자들은 보행신호를 여러 번 받고 건너야 하는가 하면 먼 거리를 돌아서 횡단해야 했다.

2007년 뉴욕시 교통국은 브로드웨이와 격자형 도로와 만나는 교차로에서 발생하는 교통체증, 교통사고, 보행자의 불편 등을 해결하기 위해, 교차로에 만들어진 삼각형의 땅을 보행자를 위한 장소로 꾸몄다. 차선도 줄여 해당 교차로의 차량 통행을 단순화시켰다.

사업 시행 후 보행자 교통사고로 다치는 사람 수는 35%가 줄고, 보행 공간을 벗어나는 사람 수도 80%나 줄었다. 보행자 공간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보행자의 교차로 횡단 거리는 42%, 횡단 시간은 45% 줄었다. 타임광장과 유니언광장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74%의 시민들도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시 브로드웨이의 성공적인 사례는 도로 다이어트가 단순히 차선을 줄이고 보도를 넓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도로 다이어트가 가장 효과적일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이며, 도로 다이어트로 확보된 공간으로 보행자의 안전과 편의, 그리고 매력적인 도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먼저여야 한다는 것이다. 브로드웨이의 경우 기존과 다르게 값비싼 재료로 도로를 포장하거나 디자인이 좋은 가로시설물을 설치하지 않고, 부분적인 바닥 도색이나, 단순한 이동형 화단, 접을 수 있는 간편한 의자와 테이블로 비용과 기간을 최소화했다. 좋은 품질의 시설보다 보행자의 공간과 활동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데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길을 걷는 사람들의 연속적인 경험을 고려하지 않는 도시는 매력적인 도시가 될 수 없다. 미국 포틀랜드 시의 중심가를 따라 걸으면 교차로에 도달할 때마다 보행신호가 들어와 걷는 사람이 배려받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도시의 활성화, 지역의 재생과 같은 공간적 과제의 성패는 시민들의 심리적 선호에 크게 좌우된다. 많은 도시 정부들은 보행 환경을 개선하면서, 보행자의 안전과 편의뿐만 아니라, 매력적인 도시 공간, 의미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을 함께 고려하고 있으며, 이는 도시에 대한 시민들의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경제적인 활성화 효과까지 염두에 둔 정책으로 보아야 한다.

덴마크 코펜하겐 시는 이미 1964년에 3.2㎞에 이르는 자동차 없는 보행자 전용도로를 도심에 만들었는데, 단순히 보행자의 안전과 이동의 편의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실현되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의 보행환경 개선 정책도 개별적인 지점의 시설물 미관보다 연속적이며 일상적인 거리 체계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 한 지점, 또는 거리 일부의 보행환경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걷기 좋은 길로 확 바뀌지는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물리적인 설계나 공사보다는 사람이 걷기 편한 공간을 확보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한 통행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며, 공간 이용 행태의 근본적인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보행 사업들은 기존의 승용차 교통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눈치를 보며 이루어져온 것 같다. 걷기가 하나의 박제된 상품처럼 차를 타고 가서 즐기고 돌아오는 테마 가로, 쇼핑몰, 올레길 같은 것에 국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몇 천 킬로미터씩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가고 싶어하는 도시들은 도시 내 고속도로와 차량 정체로 인한 소음과 매연이 가득한 도시가 아니라, 활기찬 상점과 공원, 쾌적한 보행 네트워크와 의미 있는 장소들이 유기적으로 엮여 있는 도시다. 보행 정책은 보도 정책이나 교통 정책이기보다는 우리가 사는 곳을 어떻게 가꾸어갈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시선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글·사진 오성훈 건축도시공간연구소 공간문화연구본부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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