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위기의 임산부 지키는 ‘마천동 할머니’

불교계 유일 미혼모자시설 ‘도담하우스’ 운영하는 이매옥 ㈔깨달음과나눔 이사장

등록 : 2023-03-3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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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옥 ㈔깨달음과나눔 이사장이 지난 16일 송파구 마천동 법인 사무실에서 ‘도담새싹들’ 122명 숫자판에서 끝 숫자 ‘2’를 들어 보이고 있다. 도담새싹들은 법인이 운영하는 위기 임산부 지원시설 ‘도담하우스'에서 지난 7년 동안 태어난 아이들을 일컫는다.

‘사각지대 위기 임산부’ 지원 시설 운영

7년 동안 122명 새 생명 태어나 보람

이혼 뒤 수행, ‘건축업 15년’ 돈 모아

“그룹홈 등 아이들 키우는 일 넓혀갈 것

“첫아이가 태어난 뒤 7년 동안 122명의 귀한 생명을 살려내 뿌듯해요.”

‘도담하우스’ 이매옥(67) ㈔깨달음과나눔 이사장의 말이다. 도담하우스는 위기 한부모 임산부를 돕는 미혼모자가족 복지시설로 불교계에서 운영하는 유일한 곳이다. 지난 16일 오후 송파구 마천동에 있는 법인 사무실에서 만난 이 이사장은 ‘도담의 새싹들’ 게시판부터 보여줬다. 122개의 태극 문양 스티커마다 생일, 이름, 성별이 적혀 있다. 그의 도움이 없었으면 이들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이 이사장은 “이렇게 태어나 나라의 기둥으로 커갈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담하우스에는 현재 아이와 엄마 12명과 임신부 1명이 생활하고 있다. 다세대 주택 1~3층 234.3㎡에 생활실, 양육실, 프로그램실, 사무실 등을 갖춰 숙식, 출산, 산후 몸조리 등 기본 생활과 정서를 지원한다. 생활인 연령대는 10~40대로 점점 넓어지고 있다. 대상자도 초기엔 미혼모였는데 지금은 이혼 등으로 혼자인 위기 임산부로 확대됐다. 그는 “의지할 곳 없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줘야 하기에 10~20대 미혼모를 우선으로 받는다”고 했다.


현재 서울에는 도담하우스와 같은 기본생활지원형 미혼모자가족 복지시설이 6곳 있다. 그 가운데 규모가 가장 작고 외곽에 있어 찾기 어렵지만, 도담하우스는 늘 대기자가 있을 만큼 인기가 있다. 각자 독방을 쓸 수 있고 생활인 우선의 운영방식에 대한 입소문도 나 있다.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혼·사실혼·새터민 등의 위기 임산부도 도움이 필요하면 법인전입금 등의 자체 운영비나 후원금으로 지원한다. 직원들은 그를 “베푸는 사람, 나누는 것이 먼저인 사람”이라고 부른다.

도담하우스 건물 외관.

이 이사장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경제적인 문제로 이혼한 뒤 그는 홀로서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 밑바닥 일도 마다치 않았다. 이후 15년 동안 건축업을 하며 재산을 모았다. 수중에 돈이 생기니 복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1년 마천동에서 어려운 이웃에게 무료 급식을 시작했다. 그때 그가 평생의 스승으로 모신 정오 스님(1958~2020)을 만났다. ‘야전수좌’ 정오 스님은 “세월은 변해도 부처님 수행 방법은 변함없다”는 가르침을 펼치며 대중처소에서 수행 중에도 야외 바위나 나무 밑에서 수행해 ‘야전수좌’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이 이사장은 “깨달은 자는 나누는 자다. 나누지 않는 자는 깨달은 자가 아니다”라는 스승의 말씀에 따라 2009년 사단법인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나눔 실천에 나섰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그의 나눔 실천에 새로운 계기가 됐다. 수백 명의 귀중한 어린 생명이 허망하게 사라지는 걸 보며 아이들을 살리는 일에 마음을 두게 됐다. 보육시설은 여건상 쉽지 않고 때마침 법 개정으로 부족해진 미혼모자 시설을 만들기로 했다. 그가 출연한 다세대 주택을 리모델링해 2015년 공간을 마련했다. 개인 출연으로 시작한 사업이라 진행이 순탄하지 않았지만 1년 정도 운영 뒤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의 뜻에 함께한 법인 회원들의 도움도 컸다.

퇴소한 생활인이 아이를 데리고 인사하러 올 때 그는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이 이사장의 설득으로 입양 대신 양육을 선택해 키운 아이들에게는 더 애착이 간다. 아이가 ‘마천동 할머니’라고 부르며 달려와 품에 안길 때 너무 행복하다. 돌봐줬던 생활인이 검정고시를 거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줬을 때 느낀 기쁨도 오래오래 그의 마음에 남아 있다. 그는 “스승은 세상을 떠났지만, 스승의 가르침으로 태어난 122명의 생명을 통해 영원히 산다”고 했다.

태극문양 스티커에 도담새싹들의 이름과 생년월일, 성별을 기록한 게시판.

나눔 실천은 그에게는 수행의 길이다. 베풀면서 되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알음알음 그의 나눔 실천이 알려지면서 송파구청 봉사상, 이어 서울시 봉사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도담하우스에서 아이를 낳고 잘 키워 퇴소한 생활인의 절절한 편지로 보건복지부 장관상도 받았다. 그는 “베푼 걸 입 밖에 내면 복이 아니다”라며 “베푸는 걸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데 제 뜻과 다르게 드러나는 것 같아 부담감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이 이사장은 요즘 시설들의 지속적인 운영을 위한 기반 마련과 개인 생활에서 비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올해 거처를 도담하우스 건물 5층으로 옮겼다. “언제든 세상을 떠날 수 있기에 누군가가 이어서 할 수 있게 기반을 닦아놓으려 한다”고 했다.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왔지만 ‘나는 건강하다’는 자기 암시로 견뎌내며, 이 이사장은 앞으로도 아이들 키우는 일을 계속 넓혀가고 싶어 한다. ㈔깨달음과나눔은 도담하우스 개소 뒤 ‘누리미 지역아동센터’를 법인화(2020년)했고, 국공립어린이집 2곳(방이, 위례푸른숲)과 거여2동 송파키움센터를 위탁 운영하고 있다.

입양되는 아이들을 보며 늘 안타까웠던 이 이사장은 도담하우스 옆 다세대 주택에 아동 공동생활가정(그룹홈)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온전히 자립할 수 있도록 아이들이 원할 때까지 지낼 수 있게 운영해볼 계획이다. 그는 “시작하기는 힘들지만 공간을 마련해두면 누군가가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제 발자취를 따라 걸어오는 이들이 있을 거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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