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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장애·비장애인, ‘양손에 폴 잡고’ 건강 향해 뚜벅뚜벅!

등록 : 2023-04-1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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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세곡보건지소가 지난해 주민참여 사업으로 노르딕워킹 교실을 운영했다. 참여 주민 9명이 건강지도자 양성 과정을 거쳐 민간 자격증 따 수업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3월30일 율현동 성모자애복지관 운동장에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찾아가는 노르딕워킹 교실’ 세 번째 수업이 있었다. 양승화씨가 주강사로 수업을 진행하고 김종훈·박영미·이옥희씨가 보조강사로 참여자들의 활동을 돕고 있다.

강남구가 지난해 양성한 첫 노르딕워킹 건강지도자 9명

발달장애인 시설 2곳·정규 프로그램에서 봉사활동 펼쳐

지난 3월30일 오전 강남구 율현동 성모자애복지관 운동장. 발달장애인 9명이 따스한 봄 햇볕을 쬐며 양손에 폴(스틱)을 잡고 일렬로 서 있다. 단기 거주시설 ‘미리암의 집’ 이용인으로 평소 외부 신체활동이 적은 20~50대 여성들이다. 이들은 강남구 세곡보건지소의 ‘발달장애인을 위한 찾아가는 노르딕워킹 교실’ 세 번째 수업에 참여했다. 이 교실은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60분씩, 12회 진행된다.

노르딕워킹은 양손에 폴을 잡고 땅을 짚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걷기 운동이다. 폴로 체중이 분산돼 쉽고 비교적 안전하며, 상·하체를 모두 써 운동 효과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가슴을 펴고 자세를 바로잡아주는 효과도 있어 발달장애인에게도 적합한 운동으로 추천된다.

참여자들은 먼저 폴을 사용해 준비운동을 한 뒤 ‘기차놀이’를 하며 노르딕워킹 기본 동작을 익혔다. 앞뒤로 선 두 사람이 폴의 양 끝을 잡고 양팔을 흔들며 앞으로 걸어가 반환점을 돌아 출발선으로 오는 활동이다. 신체 움직임이 원활하지 못한 발달장애인 곁에는 4명의 자원봉사자(김종훈·박영미·양승화·이옥희)가 함께했다. 가슴에 ‘자원봉사 건강지도자’라는 타이틀과 한글과 영문 이름이 적힌 금빛 명찰을 달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세곡보건지소에서 진행한 노르딕워킹 프로그램에 참여해 양성과정을 거쳐 11월 민간 자격증을 딴 주민 9명 가운데 일부다.

이옥희(왼쪽)씨가 한 참여자의 손을 폴에 끼워주고 있다.

이날 건강지도자 4명은 수업 30분 전에 모여 안전을 위해 수업시간에 진행할 동선을 미리 살피고 각자의 역할도 점검했다. 수업 직전에는 발달장애인들이 폴을 손에 끼우는 것도 돕고 폴 높이가 맞는지도 확인해줬다. 양승화(52)씨가 앞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다른 봉사자들은 발달장애인들이 동작을 따라 할 수 있게 도왔다. 시범 동작을 보여주고 가슴을 펴고 걸을 수 있게 뒤에서 폴을 당겨주기도 했다.


기차놀이에선 출발선으로 돌아온 팀에 양팔의 폴을 땅에 콕콕 찍는 ‘노르딕워킹 박수’를 치며 응원도 해줬다. 이옥희(60)씨는 발달장애인 이지은(35)씨와 한 팀이 되어 출발했다. 이옥희씨는 뒤에서 폴의 끝을 잡고 당기며 “고개 들고 가슴 펴고 걸어 보세요~”라고 친절하게 말했다. 이지은씨의 굳었던 표정도 조금씩 풀어지고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건강지도자들이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발달장애인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해 활동에 반영하는 일이다. 몸 한쪽이 굳는 편마비가 있는 이, 언어장애로 의사표현이 어려운 이, 몸에 다른 사람 손이 닿는 걸 싫어하는 이 등 저마다 장애 형태나 성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박영미(맨 오른쪽)씨가 이지은(오른쪽 두번째)씨의 자세를 바로잡아주고 있다.

이날 수업에서 편마비로 혼자 걷기가 불편한 장은화씨는 만나는 사람마다 손을 잡고 ‘아파?’ 하고 말을 걸었다. 자신이 자주 아프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아프냐고 묻는단다. 박영미(50)씨가 그의 손에 폴을 쥐여주고 걸을 수 있게 도왔다. 박씨는 “관계 맺기가 어려운 친구들도 있어 천천히 다가가려 한다”고 했다. 청일점인 김종훈(50)씨는 “장애인에게 노르딕워킹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 강사의 특강에서 들은 대로 실천하려 노력한다”며 “신체 접촉을 꺼리는 장애인이 불편을 느끼지 않게 조심한다”고 했다.

장애인 프로그램에서는 발달장애인의 인지능력 등을 고려해 쉽고 구체적인 단어 사용도 중요하다. 양승화씨는 “‘폈다’고 할까 ‘놓았다’고 할까 등 지난밤 늦게까지 수업 때 쓸 용어들을 고민했다”며 웃었다. 이옥희씨 역시 “친절하고 다정하게 표현하고 싶은데 어떨 땐 너무 아이 대하듯 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며 “용어 선택이 정말 어렵다”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양씨는 “수업 준비와 진행에 약간의 스트레스는 있지만, 배운 것을 즐겁고 재밌게 나눌 수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개별 지도로 운동 효과 좋고, 참여자들도 흥미 느껴”

김종훈(맨 오른쪽)씨가 준비운동으로 운동장 돌기를 하는 참여자들 옆에서 바른 자세를 알려주고 있다.

장애 특성 이해하며 천천히 다가가

표정 밝아지는 등 변화 조금씩 생겨

구, 내년 양성과정 확대 운영할 계획

현재 9명의 노르딕워킹 자원봉사 건강지도자들은 발달장애인 시설 2곳과 일반인 교실에서 수업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시간을 나눠 매주 월·목엔 발달장애인, 화·목은 일반 구민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 운영을 돕는다. 수요일에는 강사 역량강화를 위해 심화 과정 수업도 듣고 있다. 주민참여 건강사업을 맡은 세곡보건지소 이승철 주무관은 “자원봉사 인력풀 구축은 쉬운 일이 아닌데, 이번 지도자들이 열의와 관심이 높아 잘 진행되고 있다”며 “올해 수업 봉사활동이 100회를 넘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지금까지 노르딕워킹 프로그램에 참여한 발달장애인들의 반응과 효과는 기대 이상으로 좋다. 이날 정원 10명 가운데 9명이 출석했다. 며칠 전 넘어져 수업에 못 올 거라 걱정했던 이지은씨도 나왔다. 이씨는 “폴 잡는 게 아직 어렵지만 재밌다”며 “좀 더 자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평소 치마만 고집하던 이가 처음 바지를 입기도 하고, 수족냉증으로 고생하는 이가 손발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자폐 성향이 강해 야외활동을 꺼렸던 이도 자연스럽게 나와 활동한다. 편마비로 잘 못 걷는 장은화씨는 수업 20여분이 지나자 폴을 잡고 혼자 걷기도 했다. 무표정했던 김지우씨는 표정이 밝아졌다. 담당 사회복지사 전상연씨는 “(건강지도자들이) 열린 마음으로 활동을 함께해주니 한 명 한 명에게 의미 있는 변화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고 했다.

건강지도자들은 발달장애인의 변화에 보람을 느끼면서 자신감도 붙고 활동 폭을 넓히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처음엔 동네 공원에서 노르딕워킹을 하며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받는 것에 부담을 느꼈는데 이제는 양재천에서 함께 걸으며 더 많은 사람에게 노르딕워킹을 알리려 한다.

강남구 노르딕워킹 자원봉사 건강지도자들은 모임 ‘머그씨’를 만들어 주 1회 함께 걷기를 한다. 3월30일 발달장애인 단기거주시설 ‘미리암의 집’ 이용인 대상 수업이 끝난 뒤 자원봉사 건강지도자 4명이 탄천에서 노르딕워킹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종훈·박영미·양승화·이옥희씨.

‘살던 곳에서 나이 들기’(aging in place)에 관심이 많은 김종훈씨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노르딕워킹을 알리고 싶어 한다. 김씨는 “집 주변에서 산책하듯 쉽게 하며 운동 효과도 높일 수 있다”며 “우리 아파트 단지부터 해볼 생각이다”라고 했다. 자원봉사 건강지도자들은 모임 ‘머그씨’도 만들었다. 양승화씨는 “손잡이가 달린 컵처럼 우리의 재능을 누군가가 편하게 잡고 이용했으면 하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항상 열려 있는 ‘머그씨’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찾아가는 노르딕워킹 교실’ 시범사업 참여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김진영 ‘미리암의 집’ 관장은 기대 이상의 좋은 반응에 기뻐했다. 김 관장은 “개별 지도가 이뤄져 운동 효과도 좋고, 무엇보다 이용인들이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 다행이다”라고 했다. 그는 “질 좋은 프로그램과 시설기능 보강에 강남구가 지금처럼 잘 지원해주길 바란다”며 이용인에게 꼭 필요한 맞춤형 신체활동 방문 프로그램이 계속되길 기대했다.

강남구는 내년에 건강지도자 양성과정을 확대해 더 많은 주민이 참여할 수 있게 진행할 계획이다. 올해 첫 정규 프로그램에 신청자가 몰려 25명씩 2개 반을 운영하고 있다. 2회차 접수 일정 문의가 이어질 정도로 관심도가 높다.

프로그램 참여 주민 대상 소모임도 운영해 일상 운동으로 이어지게 할 예정이다. 이승철 세곡보건지소 주무관은 “혼자 폴을 잡고 걷기엔 쑥스러울 수 있기에 건강지도자들과 월 1회 모여 같이 꾸준히 운동했으면 한다”고 했다.

한편, 강남구는 노르딕워킹 외에도 장애인의 신체활동을 지원하는 ‘스페셜 헬스케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발달장애인 시설 18곳, 250여 명의 신체활동을 위한 단계별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교구(용품)와 신체활동 지도서를 보내준다. 시설 담당자가 교구를 활용할 수 있게 신체활동 역량 강화교육도 한다.

장애인 복지 활성화를 위해 구는 올해 조직도 개편했다. 기존 사회복지과의 장애인지원팀과 장애인시설팀 2개 팀을 떼내어 장애인복지과를 새로 만들었다. 조성명 강남구청장은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 더 세심하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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