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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살 통장, ‘청년-구정 연결’ 구심 노릇

노원구 ‘하계1동 42통’ 첫 청년 통장 우선주씨

등록 : 2023-07-1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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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 1호 청년 통장’ 우선주씨가 6월20일 서울과학기술대 생활관 ‘누리학사’ 1층 게시판에 구청 홍보물을 붙 이고 있다. 박사과정생인 우씨는 지난 4월 하계1동 42통 통장으로 위촉돼 활동하고 있다.

서울과기대 박사과정, 생활관 조교

‘기숙사 주민등록 1500가구’ 통장 돼

문화생활비 등 구청 지원사업 홍보

청년 목소리 모으는 방법 모색 중

노원구 하계1동에 있는 서울과학기술대(서울과기대) 기숙사는 5곳이다. 이곳에는 2천여 명의 청년이 거주하고 있다. 그 가운데 1500여 명은 하계1동에 주민등록을 둔 1인가구다. 기숙사는 학부모조차도 관리자와 동행해야 들어갈 수 있기에 외부인은 출입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노원구나 동 주민센터가 이들 주민과 소통하는 건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지난 4월 노원구가 별도로 통(42통)을 신설하고, 기숙사 거주 청년을 대상으로 통장을 공개 모집한 이유이기도 하다.

기숙사를 관할하는 42통의 첫 번째 통장으로 서울과기대 산업디자인 전공 박사과정생인 우선주(27)씨가 뽑혔다. 지원자가 1명뿐이라 경쟁 없이 면접을 거쳐 위촉돼 3개월째 활동하고 있다. 지난 6월20일 오후 서울과기대 생활관 누리학사 옆 카페에서 만난 우씨는 “공고에 적힌 통장 업무를 보니 그간의 경험을 살려 할 수 있을 것 같아 지원했다”고 말했다.

우씨는 학부 4학년 때부터 4년 넘게 기숙사 생활을 해왔다. 지난해 8월부터 누리학사의 생활지도조교를 맡고 있다. “구청, 동 주민센터와 기숙사 주민들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라며 노원구 1호 청년 통장으로 나선 동기를 차분하게 말했다.


용기를 내 지원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통장 대부분이 중장년층이기 때문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살짝 걱정도 했다. 이런 걱정은 첫 통장 월례회의 자리에서 따뜻한 환영 인사를 받으면서 사라졌다. “‘너무 잘 들어왔다, 반갑다’ ‘젊은 사람이 와서 좋다’ 등 환대에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우씨는 말했다.

지난 3개월 동안의 주요 활동은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을 기숙사 주민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동이나 자치구의 행사와 지원사업 포스터 등 홍보물을 기숙사 게시판에 붙이거나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처음 알게 된 지원사업도 있었다. 20대 청년 대상 문화생활 지원사업이다. 노원구가 올해 서울 자치구 가운데 처음 선보였다. 1인당 연 10만원 지원한다. 그 역시 대상자라 신청했다.

하계1동 통장들이 참여하는 네이버 밴드에서 정보를 얻고 주민들이 모여 하는 활동에도 함께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구민체육대회에 가서 퍼레이드 행사에도 참여했다. 최근엔 노원평생교육원에서 진행한 ‘탄소중립 정책 간담회’에 가봤다. 통장 회의겸 동네 청소를 하는 ‘클린데이’ 행사에 집게와 봉투를 들고 쓰레기를 치우는 일도 했다. 그는 “동네 축제나 행사에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클린데이 행사를 하고 나니 생각보다 동네가 깨끗해 스스로 뿌듯했다”고 했다.

우선주(오른쪽)씨가 기숙사 거주 주민에게 동 주민센터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통장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변화도 느낀다.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동네 행사나 소식을 알리는 펼침막이 눈에 자주 들어온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청년 대상 사업 내용과 방식에 어떤 변화가 있어야 참여율을 높일 수 있을지도 저절로 생각한다. 청년 문화생활 지원사업의 경우 거주 기간 2년 요건이 있다. 이를 맞추지 못하는 친구가 주위에 꽤 있다. 우씨는 “거주 기간을 1년 정도로 하면 더 많은 청년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청년 대상 토론 기반 강연회 행사도 온라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주민인 기숙사생들의 의견을 모으는 데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볼 계획이다. 기숙사생 대부분이 일정 기간만 살다 떠나기에 사는 곳에 대한 애정이 적어 의견 수렴이 쉽지 않은 것이 가장 큰 고민이다. “자치구의 정책, 사업에 대해 알리는 노력을 하면서 가까운 친구들의 의견이나 주위 생각을 통장 회의 등에 가서 전달해보려 한다”고 했다.

주거 환경 개선에도 힘을 보탤 생각이다. 기숙사는 캠퍼스에서 가장 안쪽에 있어 지하철 공릉역까지는 걸어 25분 정도 걸리다보니 마을버스가 기숙사 주민의 발이 돼준다. 문제는 마을버스를 2대 운행하는데 가끔은 1대만 운행해 배차 간격이 너무 긴 것이다. 그는 “42통 주민의 불편을 통장회의, 구청 담당 부서 등에 알려 개선 방안이 논의될 수 있게 노력할 생각이다”라고 했다.

우씨는 전공인 산업디자인을 통장 활동에 활용해볼까 한다. 주민자치 총회, 동 축제 등 홍보물 제작에 손을 보탤 수 있을 것 같다. “포스터 디자인, 인터넷 카드뉴스 디자인 등을 재밌게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8년 넘게 학교에 다니다보니 학교와 기숙사에 애정이 있어 도움이 되는 일을 많이 하고 싶다”고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앞으로 2년 동안 통장 활동을 이어간다. 그사이 또래 청년 통장이 더 생기길 기대한다. “다른 통장들과 나이 차이가 있어 혼자서 어색할 때가 있다”며 “비슷한 연령대의 통장이 있으면 편하게 의견도 나누고 같이 재밌게 활동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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